9 to 6

20.03.19(목)

by 어깨아빠

가히 이등병 시절의 반응 속도를 보이고 있다. 내가 이등병이고 알람이 병장이다.


"야. 일어ㄴ.."

"이벼엉! 강지후운!"


알람의 ㅇ 자 정도 들렸을까. 급히 알람을 끄고 나가려는데 아내도 깨서 움직였다.


"여보. 더 자"

"아니야. 나 어차피 화장실 가야 돼"


애들은 깨는 기색이 없었다. 아내도 나왔으니 중간에 알람이 또 울릴 일도 없고. 잘 하면 조금이라도 더 자겠구나 싶었는데 애들도 많이 피곤했는지 출근하기 직전까지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제 자기 전에, 소윤이는 자기가 자고 있어도 꼭 깨워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래도 너무 잘 자고 있는 걸 깨우는 게 아쉬워서 그냥 나갈까 했다.


"여보. 애들 깨우지 마"

"그래도. 애들이 서운해할걸"

"어쩔 수 없지 뭐"

"아니야. 여보 나가고 5분 있다가 깰지도 몰라"

"그런가"


아내는 안방 문을 열어놨다. 아무도 기척이 없었다. 아내는 들어가서 소윤이를 깨웠다.


"소윤아. 이제 아빠 가신대. 더 잘래?"

"아니여. 일어날래여"


소윤이는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시윤이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소윤이와 인사를 나누고 난 회사로, 아내와 소윤이는 다시 안방에 들어갔다. 소윤이가 다시 자지는 않겠지만 밖에 나와서 활동을 개시하지 말고 조금 더 쉬라는 뜻이었다.


차를 타고 움직인 지 얼마 안 돼서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아"

"응. 시윤아"

"어디에여엉"

"아빠는 회사 가고 있지"

"어느쪽으로여엉?"

"어느쪽이냐고? 음, 회사 쪽?"

"왜여어엉"

"회사에 가야 되니까. 시윤이는 지금 일어났어?"

"네"


일하다 짬이 나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한참 전에 보낸 카톡에도 답이 없는 걸로 보아 휴대폰을 볼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지내고 있거나 밖에 나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505호 사모님 집에 놀러 갔는데 사모님의 친정어머니께서 팥칼국수도 해주셔서 먹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내는 간단히 전했지만 그걸로 아내와 아이들의 오늘 하루를 상상해 봤다. 확실하게 유추할 수 있는 건 어제 하람이(505호 사모님 딸)를 만나서 메모리 게임(하람이가 소윤이에게 메모리 게임을 최초 전파한 슈퍼 전파자다)을 하고 싶어 하던 소윤이가 매우 즐거워했을 거라는 정도. 나머지는 모르겠다. 아내는 이제 어디에 있어도 제 몸 하나 건사하기가 버거워졌으니 어디는 편하고, 어디는 덜 편하고 이런 게 무의미하다. 시윤이는 낮잠 고비를 넘겼다면 괜찮겠지만 한참 넘고 있는 중이라면 많이 힘들었을 거고.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기 20분 전쯤에 전화가 왔다. 아내의 목소리 주변으로 시윤이의 슬픈 목소리가 들렸다.


"시윤아. 얼른. 정신 좀 차려 봐"

"여보. 왜?"

"아, 시윤이가 또 졸려가지고 정신을 못 차리네"

"지금은 뭐 하는데?"

"아, 내가 힘들어서 잠깐 방에 누웠거든. 시윤이도 따라 들어오더니 살짝 잠들었나 봐"

"아. 그냥 재우면 안 되나? 어차피 팥칼국수 먹어서 저녁은 못 먹을 거 아니야"

"그래도. 아빠 얼굴은 봐야지"


한살림에 들러서 과자 한 개와 소보로 빵 하나를 샀다. 하람이네서 팥칼국수를 먹었을 때가 아주 늦은 오후라 저녁을 먹여도 잘 안 먹을 거 같았다. 퇴근하는 아빠가 들고 오는 선물의 기쁨도 주고 아예 건너뛰기는 좀 그러니까 저녁의 모양도 갖추고. 그런 의도였다.


막상 집에 도착하니 시윤이는 큰 고비를 넘겼는지 제법 쌩쌩했다. 아내는 또 불앞에서 뭔가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


"여보. 뭐해? 어차피 애들 저녁 안 먹인다며"

"아, 그런데 얘네가 배가 고프대. 먹을 거래"

"진짜? 많이 안 먹었어?"

"글쎄. 그래도 꽤 먹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밥과 돈까스, 아내와 나는 밥과 어제 먹고 남은 김치찜. 팥칼국수를 먹었다는 게 거짓말이었나 싶을 정도로 셋(아내도 포함) 모두 엄청 잘 먹었다.


밥 먹고 나서는 어제처럼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치실질하고. 대신 오늘은 메모리 게임을 비롯한 각종 놀이는 하지 못했다. 아내는 아주 좋은 명분을 들이밀었다.


"소윤이랑 시윤이가 벌써 4일째 엄청 일찍 일어났잖아. 그럼 피로가 누적돼서 소윤이, 시윤이가 아플지도 몰라. 그러니까 오늘은 좀 일찍 자야 돼"


좋겠다. 잠이 부족하다고 알아서 챙겨주고 자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서.


그렇게 부지런을 떨었지만 나를 빼고 모두 자리에 누웠을 때 이미 8시 30분이 넘었다.


"하악. 8시 30분이라니"


아내는 탄식했다.


이제 이게 우리의 삶인 걸 어쩌겠나. 아니, 6시에 퇴근이면 사실 굉장히 빠른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저녁이 부족하다니. 저녁이 있는 삶을 살려면 9 to 4 정도 해야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