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금요일은 온다

20.03.20(금)

by 어깨아빠

오늘은 시윤이와 아침을 보냈다. 가장 먼저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는데 시윤이가 안방 문을 열고 나왔다. 거실 소파에 앉아서 한참 동안 시윤이를 안고 있었다. 한 10분 정도 그렇게 있었는데 꽤 매력적인 시간이다. 출근에 필요한 기력을 시윤이의 체온과 숨냄새로 충전하는 시간이랄까. 소윤이는 아내가 깨워서 겨우겨우 눈을 떴다. 너무 졸려서 몸을 일으키지도 못했다. 누워있는 소윤이에게 가서 인사를 나누고 집에서 나왔다.


오전에 음성 메시지가 하나 왔다. 음성 메시지는 보통 소윤이나 시윤이, 그중에서도 소윤이일 가능성이 컸다. 바빠서 바로 보지는 못하고 오후쯤 들어봤다. 예전에 내가 소윤이 장난감 휴대폰에 필름을 붙여준 적이 있었는데 열심히 했지만 결과물은 꾸깃꾸깃 영 형편없었다. 갑자기 그게 생각났는데 웃겼다면서 깔깔거리며 녹음해서 보낸 거였다. 내용은 시답잖았지만 티가 하나도 없이 청량한 소윤이 웃음소리가 듣기 좋았다. 마지막에는 마치 나와 대화하는 것처럼 얘기하길래 나도 몰래 대답할 뻔했다. 대표님과 이사님이 함께 계셨다.


우리의 변화된 일상에 처음 맞는 금요일이었다. 한동안 매일을 불금처럼 보냈다. 불월, 불화, 불수, 불목, 불금, 불토, 불주. 그러다 다시 육아와 노동의 현장으로 돌아간 한주였으니,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의미의 불금이 찾아온 거다. 불금이라고 불태울 건 없었다. 그저 다음 날 알람의 공포가 사라졌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아내는 하루하루 지날수록 피곤하고 고단한 게 눈에 보였다. 오늘의 동태는 어떤가 살피기 위해 퇴근하기 30분 전에 전화를 했다. 아내는 내일 장인어른 생신 준비에 필요한 것들을 사려고 밖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허어. 여보호"


거친 호흡이 가미된 목소리.


"시윤아아. 멈춰어. 엄마랑 같이 가야지"


분주하게 애들을 챙기는 소리.


난 또 세상 무의미한 질문을 던졌다.


"여보. 오늘 괜찮았어?"

"어. 이제 들어가려고"


적어도 감정이 바닥난 상태는 아닌 듯했다. 요즘 아내가 어떤 느낌이냐면 벤치 프레스를 12개씩 5세트를 할 때, 마지막 60개째를 들기 위해 온몸의 힘을 쥐어 짜내는 딱 그런 느낌이다. 감히 쉬엄쉬엄하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그럴 환경이 아니니까. 그냥 열심히 (아내의 육아의 현장을) 봐 주고, 격려해 주는 것 말고는 내가 더 나서서 뭘 해 줄 게 없으니까.


집에 도착해 문을 열었는데 시윤이가 거실에 앉아 오만상을 찌푸린 채 징징대고 있었다. 시윤이의 주변에는 블럭이 널브러져 있었고.


"브역(블럭) 하꺼야아아아앙"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됐으니 블럭을 치우라고 했는데 그게 싫다고 투정을 부리는 모양이었다. 근본의 원인은 피로였다. 나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한숨도 안 자고 13시간째였으니 당연하다. 아내는 더 이상 상대해 주기 힘든 표정이었다. 서둘러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사건에 투입됐다. 다만 13시간 만에 만나자마자 엄한 아빠가 되는 건 왠지 싫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주 내내 애들한테 한 번도 엄해지지 않은 거 같다. 하긴 그럴 시간도 없었다.


"시윤아. 이리 와 봐"

"시더여어어엉. 브역 하꺼에여어어엉"


사람을 경계하는 유기견처럼 접근하지 말라는 태도를 보였지만 시윤이는 유기견이 아니라 내 아들이니까. 살살 달랬더니 일단 와서 안기기는 했다.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어줬다. 졸려서 횡설수설하고 계속 블럭이 하고 싶다는 얘기만 했지만 그래도 절차의 준수를 위해서 성실하게 들었다. 어차피 논리의 접근으로는 설득이 불가능한, 어디든 눕혀 놓으면 3분 안에 잠들 만큼 졸린 상태였다. 그냥 시간을 조금 보내고 나도 맞불을 놨다. 친절히 듣고, 친절하게 같은 말을 했다.


"시윤아. 지금은 밥 먹는 시간이야. 블럭 그만하고 밥 먹어야 돼. 밥 먹기 싫으면 밥 먹지 말고 블럭 해도 돼"


시윤이는 결국 뜻을 굽히고 식탁에 앉았다. 진짜 진짜 졸려 보였다. 천년을 산 거북이처럼 모든 게 느릿느릿했는데 밥은 또 잘 먹었다. 끝까지 다 먹었다.


"아빠. 오늘도 밥 먹고 메모리 게임할 거에여?"

"그래"

"오늘은 몇 판?"

"글쎄"

"아빠. 그럼 메모리 게임 두 판이랑 숨바꼭질 두 판이랑 보물찾기 두 판하고 책은 각자 한 권씩 고르거나 아빠가 둘이 합쳐서 한 권이라고 하면 한 권 고를게요. 어때여?"

"그러면 일곱 개잖아. 우리 원래 다섯 개만 하잖아. 평소에"

"아이. 그래도여"


그래. 불금이니까. 기왕 태워온 거 마지막 연료도 여기에 쏟아붓자는 심정으로 소윤이의 모든 요구를 조건 없이 수용했다. 머지않아 나의 만용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메모리 게임 첫판부터 졸기 시작했다. 나를 깨우는 소윤이에게 많이 미안했다. 기를 쓰고 안 졸려고 했는데 안 됐다. 난 원래 잘 존다.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도 사장님이 앞에 서서 열변을 토하시는데 고작 신입사원 주제에도 잘 졸았다. 졸음은 나에게 불가항력의 영역이다.


아내가 개입했다.


"소윤아. 아무래도 너무 많아. 보물 찾기는 나중에 해"

"그럼 숨바꼭질 한 판, 보물찾기 한 판 할게여"


잠깐이라도 눕고 싶어서 안방 이불 속에 숨었는데 진짜 잠들 뻔했다. 나도 나지만 아내도 무척 힘들어 보였다. 비단 오늘 하루의 피로는 아닐 거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마찬가지일 테고. 빛보다 빠르게 지나갈 주말이지만 어쨌든 무사히 잘 보냈다.


피곤했지만 감사했던 한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