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21(토)
지난주에는 모든 게 마지막이라며 의미를 붙였는데 이번 주는 반대가 됐다. 출근 후 첫 주말. 애들이 평소보다 더 늦게까지 자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홀로 집을 떠나지 않고 함께 머물 수 있는 게 어딘가 싶었다.
이렇게 마음을 먹었는데 심지어 늦잠까지 잤다. 애들도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고 아내도 일어나서 애들 아침을 챙겨줬다. 아내는 어제 자기 전에
"여보. 내일 애들 아침 여보한테 부탁해도 될까?"
라고 물었다.
"어. 당연하지"
라고 대답했다. 구두 계약을 파기한 건 고의는 아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깨서 거실로 나가는 소리는 잠결에 듣기는 했다. 다만 너무 비몽사몽이라 바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다시 잠들었다가 깼을 때는 아내가 없었다. 물론 잠에서 깨고 꽤 한참을 누워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를 예의주시했지만 긴급한 상황은 없었다. 자발적 안방 감금을 만끽했다.
장인어른의 생신이 다음 주인데 오늘 미리 모여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형님(아내 오빠)네 집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형님네랑 나눠서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우리는 아구찜(사는 음식)과 월남쌈(만드는 음식)이었다. 월남쌈에 들어갈 재료는 아내가 어제 미리 다 썰어놨다. 아침에 라이스페이퍼를 적셔 내용물을 넣고 싸기만 하면 됐다. 애들도 싸게 하자고 어제 아내랑 미리 얘기를 마쳤다.
막상 싸려고 앉으니 소윤이와 시윤이의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았다. 마주 앉은 아내도 아마 그런 생각을 했을 거다. 마침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겠다며 분주했다. 아내와 내가 식탁에 월남쌈 쌀 준비하는 걸 본 소윤이는 부리나케 다가왔다.
"아빠. 우리도 같이 쌀 거져?"
"어. 그런데 일단 편지 다 쓰고 와. 엄마하고 아빠가 좀 싼 다음에 너희도 싸"
아내와 내가 적당한 양을 모두 싸고 난 뒤에 소윤이와 시윤이를 소환했다. 소윤이는 어떨 때는 나보다 야무지게 잘 쌌고, 시윤이는 아직 능력이 부족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는 했다.
아내는 사진 찍을 걸 대비해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꼬까옷을 입혔다. 별거 없다. 아내가 '뭔가 좀 예쁘게 입히고 싶은데?'라고 생각할 때마다 자주 꺼내는(거의 항상 비슷한) 옷이었다. 어쨌든 일주일 내내 제대로 된 외출 한 번 못하다가 오랜만에 나가는 거니까 기분을 내는데도 용이했다. 다만 목적지가 차로 10분도 안 걸리는 형님네 집이라는 게 조금 애석했다.
준비를 다 마치고 주차장에 내려가서 차를 타려고 하는데 소윤이가 말했다.
"아빠 차 이번 주에 처음 탄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네. 새삼 소중한 주말이라는 게 느껴졌다.
아내와 소윤이, 시윤이는 먼저 형님네 집에 내려줬다. 난 아구찜을 찾으러 가야 했다. 원래 소윤이와 시윤이도 데리고 가려고 했다. 이것저것 준비할 때 애들이 함께 있으면 성가셔서 방해가 될 거라며 아내가 그렇게 하자고 했다. 나야 뭐 어떻게 하든 상관없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가 삼촌, 숙모, 할아버지, 할머니와 조금이라도 더 놀려면 애들도 먼저 내리는 게 낫지 않나 싶었다. 다시 한번 슬쩍 아내에게 물어봤는데 역시나 답은 똑같았다.
'잠시나마 좀 떨어지고 싶구나'
주차장에 짐 들어주러 나온 형님이 그냥 애들도 같이 들어가자고 해서 나 혼자 아구찜 가게로 갔다. 차로 한 20분 거리였는데 갑자기 다행스러웠다.
'애들 있었으면 좀 귀찮긴 했겠네'
대신 심심하기도 했다. 형님네가 주문한 회도 찾아서 갔다.
장인어른의 생신 축하 모임이 시작됐다. 점심을 모두 먹고 나서 케이크 의식(?)을 거행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불을 끄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각자 쓴 편지를 드렸다. 시윤이의 편지에는 역시나 고대인의 상형 문자 같은, 아니 그냥 선 몇 개 정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래도 거기에 시윤이의 혼과 철학이 담겼을 거(..라고 믿어야 한다)다.
소윤이의 편지는 마치, 어떤 행사에 초대는 받았지만 불가피하게 참석하지 못하는 VIP가 보내는 축전 같았다. 받는 이가 누구든 내용이 거의 같다는 말이다. 거기에 쓰는 과정도 늘 비슷하다.
"아빠. 뭐라고 써야 할지 생각이 안 나여"
"그래? 그냥 소윤이가 하고 싶은 말 써 봐"
그렇다고 소윤이가 진심을 담지 않는 건 아니다. 정말 정성스럽게 한 글자, 한 글자 쓰지만 아직 내용 창작이 벅찰 뿐이다. 덕분에 소윤이 편지에는 빈 공백마다 그림이 참 많다.
모든 의식을 마치고 케이크를 먹기 직전이었다. 아내가 얘기했다.
"이거 다 못 먹겠지? 일단 조금만 잘라서 먹고 남은 건 나중에 먹자"
소윤이와 시윤이를 너무 과소평가했다. 결과부터 얘기하면 케이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특히 강시윤은 머슴이 밥 먹는 것처럼 고개를 박고, 약간 무아지경에 빠진 것처럼 빵을 먹었다. 주변에서 잘 먹는다, 잘 먹는다 하니까 괜히 더 신이 나가지고는 일부러 익살을 떨며 먹었다.
소윤이는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삼촌, 숙모랑 보드게임도 해야 하고, 놀이터도 가야 하고, 카페도 가야 했다. 시간이 넉넉했으면 전부 다 하면 됐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형님이 갈 데가 있었고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태워다 주신다고 했다. 저 중에 한 가지만 골라서 해도 그리 넉넉하지 않을 시간이었다. 여러 가지 제안이 소윤이에게 들어갔고 소윤이는 그중 하나를 골랐다.
놀이터에서 아주 조금 놀다가 카페로 가기.
날씨가 너무 좋았다. 놀이터에는 두어 명 정도밖에 없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네부터 탔다. 소윤이에게 다시 제안했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카페에 갈 거냐고, 차라리 놀이터에서 계속 노는 게 어떻겠냐고, 카페에 가면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야 되는데 그래도 좋냐고. 결국 소윤이는 놀이터 몰빵(?) 제안을 받아들였다.
꽤 한참 놀았다고 생각했지만 소윤이의 성에 차지는 않았나 보다. 헤어질 시간이 되자 진한 아쉬움을 그대로 드러냈지만 이제 그런 일로 울고불고 난리 칠 군번이 아니다. 소윤이는.
대신 집에 가는 길에 잠시 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 잔씩 샀다. 근처에 아주 조그마한 공원(하천 산책로에 딸린 아주 조그마한 넓은 공간이라고 말하는 게 차라리 낫겠다)에 가서 킥보드를 꺼냈다. 비록 마스크를 쓴 채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주일간의 욕구를 어느 정도는 해소했을 거다.
집에 돌아와서는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물놀이도 시켜줬다. 그 사이 아내는 잠시 누워서 눈을 붙였고 난 소파에 앉아서 쉬었다. 물놀이를 꽤 오래 했지만 그래도 평일보다는 훨씬 진행이 빨랐다. 저녁은 간단하게 계란밥. 후식으로 딸기 네 알씩. 밥 먹고 나서는 머리 말리고 각각 책 한 권씩.
한 주 동안 배부른 엄마와 함께 지내느라 자기들 나름대로 많이 참고 견뎠을 애들을 위한 부지런한 움직임이랄까. 그렇게 바쁘게 움직였지만 피곤하지도 않았다. 이것도 저것도 감사했다. 출근하지 않고 애들이랑 보낼 수 있는 주말도 감사했고, 감사한 주말을 보내고 다시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도 감사했고. (더 정확히 말하면 출근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난 원래 출근 비판론자에 가까웠으니까.)
애들을 재우러 들어간 아내가 카톡을 보냈다.
[나 일찍 나갈 거임. 놀자 놀자]
별 건 없었다. 영화는 볼 게 없었고 야식도 딱히 당기는 게 없었다. 과자 몇 봉지 사서 까먹으며 수다나 떨었다.
여러모로 소중하다. 그냥 다 소중하다. 시답잖은 수다도, 바쁜 육아 일상도. 입금과 함께 흔적을 감추는 월급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주말의 시간도. 모두 소중하다. 뼈저리게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