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22(주일)
오늘도 아내가 먼저 일어났다. 소윤이가 가장 먼저, 그다음 아내, 마지막으로 시윤이. 각각의 시차는 5분 정도씩. 나만 한 시간 정도 떨어져서 일어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침부터 거실을 어지르며 정신없이 놀고 있었고 아내는 거실 소파에 누워 있었다.
"여보. 들어가서 좀 더 자"
"아, 아니야"
"얼른. 들어가"
아내는 다시 방에 들어가서 누웠고 난 방문을 잠그고 나왔다.
"아빠. 배고파요"
소윤이와 시윤이는 날 보자마자 아침을 찾았다. 그럴만했다. 어제저녁도 내가 차려줬는데 계란밥이라 다른 반찬이 없었던 데다가 난 양도 적게 준다. 그러니 배가 고팠을 거다.
마땅한 반찬이 없으니 떠오르는 건 또 계란밥이었다. 두 끼를 연속으로 먹이려니 너무 미안해서 다른 방도를 찾았으나 여의치 않았다. 김치와 정성을 추가했다. 보통 계란밥은 밥에 계란 프라이 올리고 간장, 참기름 추가해서 비벼주는 건데 오늘은 볶음밥처럼 해줬다. 김치도 씻어 넣어서 식감도 살려주고. 맞다. 그래 봐야 계란밥이었다는 걸 돌려 돌려 포장하는 거다. 고맙고 미안하게도
"아빠. 진짜 맛있어여"
이러면서 엄청 잘 먹는다.
오늘도 예배는 집에서 드렸다. 어찌 됐든 집에서 예배를 드리면 시간이 많이 남는다. 시간은 많이 남는데 왜 그렇게 끼니 걱정을 많이 해야 하는지. 지난 한 주 나의 출근과 함께 홀로 육아를 오랜만에 경험한 아내의 가장 큰 고충 중에 하나가 '애들 뭐 먹일지'라는 게 결코 헛말이 아니다. 아내는 미리 일주일 치 식단을 짰고 그대로 실행했다.
"여보. 식단 짜 놓으니까 너무 좋아. 고민 안 해도 되고. 고민 안 하게 되니까 쓸데없는 거 안 사게 되고"
아내의 식단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주말에는 식단이 없었다.
"여보. 주말에는 식단이 없네?
"응. 주말에는 안 짰어"
"왜? 내가 식단이야?"
"응. 맞아"
점심에는 김에 밥을 싸서 줬다. 다른 반찬은 없었고 만두를 구워서 줬다.
야속하게 오늘도 날씨가 엄청 좋았다.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파래도 너무 파랬다. 미세 먼지 수치도 아주 좋다고 했고.
"아빠. 우리 오늘 무슨 일 있어여?"
"아니. 별일 없는데"
소윤이의 질문의 의도를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본능적으로 방어적 대답을 했다. 소윤이가 묻기 전부터 이미 단지 안에서만 머물더라도 잠깐 나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내와 의견 교환을 마친 것도 아니었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우울감의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자동차 장난감을 꺼내겠다는 시윤이를 보며 얘기했다.
"시윤아. 아니야. 우리 잠깐 나갔다 오자. 그러니까 장난감 꺼내지 말고 옷 갈아입자"
자전거와 킥보드를 모두 가지고 나갔다. 이 좋은 날씨에 그 무엇보다 마스크를 꼭 챙겨야 하고, 대부분의 사람이 마스크를 쓴 채 특히 소윤이, 시윤이처럼 어린아이들이 마스크를 쓴 채 뛰노는 모습이 무척 슬퍼 보였다. 난 태어나서 마스크를 몇 번이나 써 봤을까 헤아려봤다. 최면 기술을 동원해서 잊힌 기억까지 끄집어 낸다고 해도 평생 서른 번은 써 봤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마저도 최근 몇 년 동안 미세먼지 때문에 쓴 걸 빼면 더 줄어들 거고.
"시윤아. 뭐해. 문 열고 나가"
"엄마아. 마즈끄. 마즈끄 해야져엉. 코오나 일구 걸리믄 어떠께여엉"
이런 시대가 됐다. 슬프다.
어쨌든 소윤이와 시윤이는 신나게 놀았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놀이터에 생각보다 애들이 많아서 놀이터에서는 놀지 않고 공터에서 킥보드 타고, 자전거 타고 그랬다. 꽤 한참 동안.
아내는 저녁으로 새로 생긴 수제 버거를 먹자고 어제 미리 정해놨다. 애들이랑 밖에서 꽤 오래 놀았는데도 3시 30분이었다. 워낙 빨리 나온 탓이었다. 야외 자리가 있는 동네 카페에 가서 잠시 앉아 있다가 장을 보고 햄버거를 사서 집에 올 계획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가려던 카페는 휴무였다. 동네 이디야로 갔다. 야외 자리에 앉아 있어도 춥지 않은 날씨였다. 아내와 나는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애들은 한살림에서 산 과자 한 봉지를 나눠 먹었다.
한살림과 롯데 슈퍼에 들러서 장을 보고 햄버거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계속 킥보드를 타고 돌아다녔다. (자전거는 놀이터에서 카페로 갈 때 집에 갖다 놓고 왔다.) 거의 네 시간을 밖에 있다가 들어왔다.
아내와 나의 저녁 메뉴는 수제 버거. 애들 저녁은 불고기. 예전에 장인어른이 주신 돼지고기를 미리 냉동실에서 꺼내 놓고 나갔다. 그야말로 간단하게 양파랑 파, 버섯 정도만 넣고 초속성으로 양념을 해서 볶았다. 아내와 나의 수제 버거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서둘렀다. 뭐 애들한테 먹이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애들을 저녁 먹기 전에 미리 씻긴 덕분에 저녁 먹고 시간이 꽤 남았다.
"아빠. 우리 메모리 게임할까여?"
"메모리 게임? 으아. 그럴까아?"
"아빠. 귀찮아여?"
소윤이가 입을 삐죽거리며 물었다.
"아니야. 아니야. 귀찮긴. 하자. 하자"
깜짝 놀라서 괜히 호들갑을 더 떨었다.
"아빠. 몇 판 할 거에여?"
"글쎄. 시간 많이 남았으니까 시간 되는 대로 하지 뭐"
"그러자여"
너무 호기로웠나 보다. 첫판부터 졸기 시작했다. 진짜 안 졸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안 됐다. 어느 정도였냐면 나, 소윤이, 시윤이 이렇게 세 명이서 하니까 내가 두 장 뒤집고 짝이 안 맞으면 소윤이가 두 장 뒤집고 짝이 안 맞으면 시윤이가 뒤집고 짝이 안 맞으면 다시 내 차례. 이런 순서인데 고작해야 한 30초 걸릴 거다. 그걸 못 참고 계속 졸았다.
"아빠. 아빠 차례에여"
"아빠. 시윤이가 헬리콥터랑 자동차 뒤집었어여. 잘 봐여"
"아빠. 뒤집어야져"
"아빠. 시윤이가 뒤집은 거 봤어여?"
"아빠. 이 아저씨가 계속 조시네"
소윤이한테 정말 너무 미안했다. 진심으로 미안해서 소윤이한테도 실시간으로 사과했다.
"소윤아. 진짜 미안해. 아빠가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고 너무 졸려서 그래. 진짜 미안해"
그렇게 얘기하고 또 졸고. 보다 못한 아내가 구원자로 나섰다.
"소윤아, 시윤아. 메모리 게임은 두 판만 하자"
소윤이도 아빠의 상태를 직접 봐서 그런가 순순히 아내의 말을 따랐다. 메모리 게임을 마치고 나서는 숨바꼭질을 했다. 아내는 두 판만 하라고 했지만 나는 소윤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다섯 판을 제시했다. (사실 숨바꼭질은 메모리 게임에 비하면 한 판당 러닝 타임이 훨씬 짧다.) 소윤이는 다섯 판 중에 내가 한 번, 자기가 두 번, 시윤이가 두 번 술래를 하면 된다고 했다. 난 한 번은 찾고 네 번은 숨으면 되는 거였다. 네 번 중에 세 번을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은 취침 방이다. 이불 속에 한 번 숨고 바닥에 깔아놓은 두꺼운 매트리스 밑에 두 번 숨었다. 맞다. 잠시나마 눕고 싶었다.
숨바꼭질을 하고 났더니 잠이 좀 깼는지 다행히 책을 읽어줄 때는 졸지 않았다.
"소윤아"
"네?"
"벌써 주말이 갔네"
"말도 안 돼"
"그래도 좋았지? 주말이라?"
"그럼여"
"뭐가?"
"아빠랑 계속 노니까여"
네 달을 매일 같이 놀았는데 지난 한 주로 싹 다 새로고침이 되었나. 주말이 좋긴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