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23(월)
오늘은 아침에 애들을 못 보고 출근했다. 출근할 시간까지 둘 다 깨지 않길래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깨우지 않고 나왔다. 아내도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가고 나면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깰 거라는걸. 그걸 알면서도 혹시 한 시간을 더 자는 흔치 않은 날이 오늘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다.
차의 히터 바람이 따뜻해지지 않아서 잔뜩 웅크린 채 운전을 하고 있었을 만큼 얼마 안 되었을 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윤이었다.
"아빠"
"응. 소윤아"
"어디에여?"
"아빠 회사 가고 있지"
소윤이의 목소리에는 짙은 슬픔이 깔려 있었다. 아내가 옆에서 전해주기를, 방에서 나오자마자 내가 없는걸 확인하고는 오열을 했다고 했다. 시윤이는 화들짝 놀라면서 아빠를 외쳤고.
"여보. 좋겠다. 없다고 슬퍼하는 애들 있어서"
맞다. 좋긴 좋다. 왜 가족한테 잘 해야 하냐면 하루에 10분을 보든 20분을 보든, 아니면 하루에 1분도 못 보든. 가족은 나의 부재를 언제나 아쉬워하고 나를 찾아준다. 하루에 몇 시간씩 붙어 있어도 언젠가 찾아올 나의 부재를 (아주 잠깐은 그리워하고 찾을지 몰라도) 당연하게 여길 누군가에게 모든 걸 쏟아부으면 안 된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다. 어딘가 적을 두고 다니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참 어려운 이야기다. 포기와 결단이 필요하겠지. 아무튼 감사하고 행복했다. 아빠를 좋아해 주는 소윤이와 시윤이가 있어서. 큰 이변이 없다면 언니, 오빠와 같을 롬이도 곧 태어나서.
그게 오늘 아이들과의 마지막 연락이었다. 중간에 아내가 카톡으로 사진 몇 장과 영상을 보내주기는 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시윤이가 또 울상이었다. 이 시간이 되면 너무 졸려서 자꾸 궤도에서 이탈한다. 오늘도 별 내용은 없었다. 내가 들어가기 전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밥 먹어야 하니 손 씻고 오라는 아내의 말에 심사가 뒤틀려 짜증을 내고 있었다. 아내는 매우 지쳐 보였다.
"시윤아. 그만 좀 해라"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의 발을 붙잡고 드러누워 우는 시윤이에게 아내는 푸념하듯 말했다.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서 시윤이를 안았다. 물론 바로 안긴 건 아니었다. 어르고 달래서 일단 안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빠아. 너무 졸리고 배가 고빠여엉"
"그랬어?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되는데. 밥 안 먹어?"
"아니여어엉. 머그꺼에여엉"
"그럼 손을 씻어야지"
"안 씨스고 디퍼여엉. 너무 졸려여엉"
"그럼 밥을 못 먹지. 시윤이가 선택해. 밥 안 먹고 지금 잘 건지 아니면 밥 먹고 아빠랑 조금 놀다가 잘 건지"
퇴근하자마자 무서운 아빠 되는 게 싫어서 이런 상황이 생기면 최대한 부드럽고 좋은 말로 타이르고 있는데 다행히 시윤이가 잘 받아준다. 시윤이는 내가 안고 손을 씻는다는 조건으로 울음과 짜증을 멈추기로 했다.
식탁에 앉았을 때도 눈은 꼭 자다 깬 사람처럼 졸음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상태로 저녁은 또 끝까지 잘 먹었고. 정확한 통계에 근거한 건 아니지만, 요 근래에는 졸려도 저녁을 잘 먹는 듯하다.
소윤이는 사실 크게 신경 쓸 게 없다. 아내도 그렇게 얘기한다.
"소윤이야 이제 뭐 크게 힘들게 하는 건 없지"
가끔 아니 자주 아니 가끔인가 아니 자주인가. 아무튼 집요한 구석 때문에 아내를 좀 피곤하게는 해도 시윤이처럼 맥락 없이 짜증을 낸다던가 배째라 식으로 말을 안 듣는 건 거의 없다. 뺀질거리고 깐족거리는 건 좀 있어도.
"아빠. 오늘도 밥 먹고 메모리 카드 해도 돼여?"
"어, 되지. 대신 엄마한테 물어보고. 엄마가 너무 피곤하시니까"
아내는 10분을 허락했다.
"아빠. 그럼 딱 두 판만 하자여"
메모리 게임 두 판, 10분은 너무 야박한 거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아내는 그 10분 이전의 13시간을 헌신하고 또 헌신하고 희생했다. 10초를 줬어도 야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메모리 게임을 하려고 앉았는데 역시나 하루의 피곤이 몰려왔다. 눈에 힘을 주고 잠을 떨쳐내는 나를 보더니 소윤이가 말했다.
"아빠. 왜 그래여?"
"그냥"
"아빠는 메모리 게임만 하면 졸리더라"
"소윤아. 피곤해서 그래.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다행히 오늘은 졸지 않았다. 그랬을 뿐만 아니라 격한 호응과 몸짓, 웃음도 함께 구사했다. 소윤이도 시윤이도 즐거워했다. 다만 이제 시윤이가 경험(?)을 좀 쌓더니 자기도 많이 맞추고 싶은 욕망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욕망에 비해 능력은 한참 뒤처지니 너무 큰 격차로 게임이 끝나면 서운해하기 시작했다. 지난주까지만 하더라도 그런 건 개의치 않고 그저 함께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던 녀석이었다.
메모리 게임 두 판은 순식간에 끝났다. 각각 고른 책 두 권도 짧은 편이었다. 나도 아쉽긴 했다. 밥 먹는 시간을 포함해서 1시간 정도 애들이랑 시간을 보낸 거였다. 아쉬워도, 터질듯한 배를 부여잡고 큰 숨을 자주 내뱉으며 힘겨워하는 아내를 생각하면 거기가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최선의 지점이었다. (그렇다고 아내가 아니었으면 얼마든지 애들을 더 데리고 놀았을 거라는 건 아니다.)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방 문을 닫고 나오자 나도 모르게 큰 한숨이 새어 나왔다.
"후아"
아내가 자주 하는 말처럼 한숨이라기보다는 큰 심호흡이었다. 그렇게 여유를 갖고 숨 좀 돌리고 나니 다시 애들 생각이 나서 아까 낮에 아내가 보내줬지만 대충 훑어본 사진을 자세히 봤다. 그러다 보니 자꾸 빨리 자러 들어가서 애들 손이랑 발 만지고 싶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은 안 재우고 더 오래 데리고 놀아야지' 따위의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가능한 빠르게 재우려고 하겠지. 그러고 나서는 다시 또 오늘의 순환을 반복하고.
미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