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없고 인사만 있네

20.03.24(화)

by 어깨아빠

소윤이와 시윤이는 어제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른 아침 아니 새벽부터 일어났다. 난 가장 먼저 일어나서 나왔고 아내의 알람 소리와 함께 아내, 소윤이, 시윤이가 차례대로 (거의 공백 없이) 일어났다.


"소윤아. 뭘 벌써 일어났어. 오늘은 아빠가 깨우려고 했는데"

"그냥 엄마 알람 소리에 눈이 떠졌어여"

"졸리지?"

"네"

"아빠 가면 엄마하고 방에 들어가서 좀 누워 있어. 자지는 않더라도"

"그렇게 할게여"


아내는 허리가 무척 아프다고 했다. 물론 임신 기간 내내 허리가 편치는 않았겠지만 부쩍 통증이 심해진 건 며칠 안 됐다. 그러고 보니 아내의 배가 보통 부른 게 아니라 그야말로 만삭이 되었다. 만져보면 엄청 땅땅하다. 롬이의 머리는 확실히 느껴지고 나머지 팔이나 다리, 엉덩이 같은 곳도 만져진다. (팔과 다리를 명확히 구분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만큼 많이 컸다. 아내는 힘들어졌고.


얼마 전 아내가 이런 얘기를 했다. 아침도 먹이고 간식도 먹이고 같이 놀고, 정말 쉴 틈 없이 바쁘게 뭔가를 하고 '점심때쯤 됐으려나' 싶어서 시계를 보면 10시라고. 아내와 아이들의 오전이 엄청 길어진 거다. 오늘은 내가 사무실에 들어가기도 전에 애들 밥 먹는 사진이 도착했다.


[매우 이른 아침이네]


아침 먹고 나면 오전 간식, 간식 먹고 돌아서면 점심, 점심 먹고 나면 오후 간식, 간식 먹고 돌아서면 저녁. 중간중간에 틈틈이 간식. 원래 끼니라는 게 챙겨 먹으면 먹을수록 끼니 사이의 허기가 깊어진다. 아내도 식단의 힘을 빌려 매일 양질의 식사와 간식을 제공하고 있고. 덕분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포동포동 살이 붙었다.


지난 4개월의 휴직기의 큰 교훈이자 경험이 있다면, 어설프게나마 전업주부의 삶을 경험해 봤다는 거다. 그런 시간을 보내기 전에는 '뭐 먹일지 고민이다'라는 아내의 말이 실없는 푸념처럼 들렸다. '그냥 뭐 집에 있는 거 아무거나 대충 먹이면 되지'라는 말이 얼마나 탁상공론인지 지난 4개월 동안 깨달았다. 요즘처럼 일찍 시작하고 그 누구도 대체할 사람이 없어서 오매불망 남편의 퇴근만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아내인데 애들을 저렇게 잘 챙겨 먹이려면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하는지.


존경합니다. 여보.


저녁에 장인어른이 집에 잠깐 오신다고 했다. 안방에 화장대가 하나 있는데 무용지물이 된지 오래였다. 마침 롬이 아기 침대도 놓을 공간이 없어서 화장대는 장인어른, 장모님께 드리기로 했다.


소윤이, 시윤이와 함께 식탁에 앉아 케이크를 먹고 계셨다. 아 아니다. 먹고 계시지는 않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열심히, 아주 맹렬히 먹고 있었고.


"여보. 일단 아빠랑 화장대 싣고 와. 애들한테는 오늘은 아빠랑 못 놀고 자야 된다고 얘기할게. 괜찮지?"

"그래"

"여보가 아쉬우면 애들이랑 더 놀아도 되고"

"아니야. 재워도 돼"

"애들은 엄마가 벌써 씻겨주셨어. 양치만 하고 자면 되거든"


장인어른과 화장대를 차에 싣고 왔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미리 인사를 하고 나오셨고 바로 가셨다. 다시 집에 올라와서 문을 열어보니 아내와 애들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안방 문은 닫혀 있었다. 아내가 책 읽어주는 소리도 들렸다. 슬며시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미 모든 걸 끝내고 자는 중이었으면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았겠지만 아직 자기 전이니까. 화장대 옮기러 가면서 이미 인사를 나눴지만 한 번 더 나눴다.


"소윤아. 내일은 아빠가 꼭 깨울 거니까 급하게 일어나지 말고 충분히 자"

"아빠. 오늘은 엄마 배에 손대고 기도 안 해여?"

"응. 오늘은 엄마가 너무 피곤하시대"

"그럼 아빠가 대표로라도 해여"

"그래, 알았어"


배에 손을 안 대서 그런가. 롬이 기도는 안 하고 소윤이, 시윤이 기도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