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은 하지만 내일도 마찬가지

20.03.25(수)

by 어깨아빠

오늘도 어제의 복사판이었다. 출근하기 직전에 방에 들어가서 애들을 깨웠다. 깨우는 게 미안할 정도로 둘 다 잔뜩 잠에 취해 있었다. 고마운 건 '기꺼이' 이른 기상을 자처했다는 거다. 졸리다고 짜증 내거나 그러지 않고 애써 잠을 떨쳐내며 날 끌어안고 인사도 하고 뽀뽀도 했다. 소윤이는 진작에 일어났는데 엄마, 아빠가 깨울 때까지 기다린 거라면서 내일도 그럴 거라고 했다.


아내가 오전부터 애들 사진을 많이 보내줬다. 음성 메시지도 있었고, 동영상도 있었는데 열어보지는 못했다. 오늘도 사진은 거의 다 먹는 사진이었다. 점심에는 닭다리살을 구워줬는데


"닭다리가 기름져서 훨씬 맛있다"


라고 얘기하면서 엄청 잘 먹었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닭다리는 물론이고 아침부터 오후까지 매 끼니와 간식을 잘 챙겨 먹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사진이 여러 장이었다.


[하루 종일 먹어 정말]

[응. 먹어야 살고 먹여야 나도 산다]


아내의 말이 명답이었다. 하루 종일 애들이랑 있으면 다른 게 힘든 게 아니라 '매 순간' 함께한다는 그 사실이 힘들 때가 많다. 물론 내 새끼니 너무 사랑스럽고 행복하지만 모든 현상에는 이면이 존재하듯, 육아도 마찬가지다. 분리야 어차피 불가능하니 잠시 도망이라도 쳐서 쉴 틈을 마련해야 한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니겠지만.) 그때 유용한 도구가 바로 음식이다. 하루 종일 '엄마'에게 신경을 집중하는 아이들이 잠시나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둘 때가 먹을 때다. 그때도 완전한 자유는 아니다. 그래도 뭔가 좀 다른, 어떤 그런 게 있다.


'뭘 먹여야 하나'


라는 평생의 고민을 해결했다는 잠깐의 안도감일지도 모르고. 아무튼 오늘도 애들은 잘 먹었다.


인상 깊은 사진이 또 하나 있었는데 안방 문 앞에서 뭔가를 잔뜩 펴놓고 노는 모습이었다. 아내가 잠깐 쉬고 싶어서 방에 들어가서 누웠는데 굳이 엄마가 보이는 곳에서 놀겠다며 거기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안방에는 일체의 도구나 장난감 반입을 금지한다는 내규에 따라 경계선 바로 앞에 자리를 편 거다. 엄마가 그렇게 좋을까. 화장실 문 열고 똥 싸야 하는 육아의 깨끗한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도 함께 겪었던 일상이었다. 아내의 고충과 노고가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이것도 굉장히 묘한 느낌이라 설명은 어렵지만 아무튼 생각만 해도 힘들고 지치면서도 그리운 느낌이랄까.


요즘 퇴근해서 저녁을 먹을 때 소윤이가 던지는 질문은 크게 두 가지다.


"아빠. 오늘 메모리 게임할 수 있어여?"

"아빠. 오늘 아빠랑 좀 놀 시간 있어여?"


오늘은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글쎄. 엄마한테 여쭤봐"


나의 퇴근 후의 시간 조정은 아내에게 일임하고 있다. 아내는 처음에 10분을 얘기했다가 15분으로 늘렸다. 누누이 말하지만 결코 짠 게 아니다. 차로 비유하자면 주유 경고등이 깜빡깜빡하는 것처럼 아내의 육아 연료도 거의 다 소비한 시간대였다.


소윤이는 메모리 게임 한 판 하고 숨바꼭질 두 판 하고 보물 찾기도 한 판 하면 15분 정도가 지날 거라고 예상했다. 메모리 게임을 한 판 끝내고 났더니 10분이 지났다. 시계를 본 소윤이의 얼굴에 스치는 당황함과 분주함을 포착했다. 어쨌든 소윤이가 애초에 작정한 건 다 하기는 했다. 다만 너무 빠르게 몰아붙인 느낌이 없지 않았다. 조금 미안했다. 역시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최소한 9 to 5 정도는 돼야 한다.


잘 때도 소윤이의 루틴을 건너 뛰었다. 엄마 배에 손 올리고 다 함께 기도하고 엄마랑 인사(뽀뽀, 포옹, 정해진 멘트 등), 롬이랑 인사, 아빠랑 인사 등의 과정이 있는데 오늘은 그냥 바로 눕게 했다.


"아빠. 엄마 배에 손 올리고 기도 안 해여?"

"응. 오늘은 엄마가 너무 피곤하셔서 소윤이가 대표로 기도해 줘"


기도를 마치고 나서 소윤이가 물었다.


"아빠. 인사는여?"

"오늘은 인사도 그냥 누워서 하자. 알았지?"


누워있는 아이들에게 가서 뽀뽀를 하고 인사를 나눈 뒤 방에서 나왔다. 몰랐는데 소윤이는 내가 나가자마자 울었다고 했다. 이유는 "엄마랑 인사를 못해서"였다. 정확히 해석하자면 "엄마랑 '평소처럼' 인사를 못해서"일 거다.


뭔가 계속 미안하네. 육아 퇴근의 지점으로 멱살을 잡아 끈 거 같네. 내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 같아서 미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