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26(목)
둘 다 너무 잘 자고 있어서 깨우지 않고 싶었지만 약속한 게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깨우긴 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보다 더 힘겹게 이불을 뒹굴며 괴로워(?) 했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갈 테니까 엄마랑 방에서 조금 더 누워있어. 알았지?"
"아빠. 잘 갔다 와여"
잠이 완전히 달아나기 전에 안방에서 서둘러 인사를 나누고 나왔다. 한 번 잠에서 깬 애들은 다시 쉽게 잠들지 않는다. 다른 집 애들은 모르겠는데 우리 집 애들은 그렇다. 내가 나가고 애들은 빠른 속도로 제정신을 찾았지만 방에 조금 더 있었다고 했다. 비몽사몽 누워 있었다는 아내의 말은 본인을 말하는 것이었을 테고 애들은 아내 주변을 정신없이 왔다 갔다 했을 거다.
요즘 엄마랑 지내면서 애들이 얼마나 잘 먹는지를 자주 썼는데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이 있기 마련이다. 잘 먹는다는 건 내보내야 할 것도 많아진다는 거고 아직 스스로 뒤처리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엉덩이는 언제나 아내의 독차지다. 아내가 오전에 이런 카톡을 보냈다.
[우리 애들 참 잘 싼다. 둘 연달아 씻겨주다가 새삼 감사하네]
똥 치우다 지친 아내의 푸념인 줄 알았는데 진짜 감사해서 얘기한 거라고 했다. 맞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저귀와 엉덩이에 범벅이 된 똥 치우느라 고생이었는데 이제 그런 정도는 아니다. 시윤이 어렸을 때 몇 주씩 똥 못 싸서 대학 병원까지 예약했던 걸 생각하면 잘 싸는 것도 감사한 거다. 아는데, 알긴 아는데 가끔씩 한숨이 나오곤 한다. 한 열흘 뒤에는 누워서 먹고 싸는 것밖에 못하는 존재가 함께 할 거고.
점심때 형님(아내 오빠)과 장모님이 오셔서 점심을 드시기로 했다면서 어제 만들었던 카레를 내겠다고 했다. 어쨌든 손님이고 점심을 대접해야 하니 좀 번거롭기는 해도 오랜만에 낮에 강력한 육아 보조자가 둘이나 오니 그래도 조금 낫지 않을까 싶었다. 하루를 마칠 때 돌아보면 결국 힘들고 피곤한 건 마찬가지겠지만, 매 순간 조금씩이라도 쉴 틈이 생기길 바랐다. 역시나 퇴근하고 마주한 아내의 얼굴에는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다'라고 쓰여 있었다. 몸은 피곤할지언정 마음은 많이 침공 당하지 않았다는 게 느껴졌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열심히 상황극을 하며 놀았는데 시윤이가 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요즘 들어 특유의 뺀질거림이 늘어서 괜히 인사도 안 하고 그러는 날이 많기는 했다. 그래도 결국에는 와서 안기고 인사하고 그랬는데 오늘은 그 시기를 놓쳤는지 괜한 고집을 피웠다.
"시윤아. 아빠한테 인사 안 해?"
"안 할 거에여엉. 이제 아빠양 안 노꺼에여엉"
"그래? 알았어. 그럼 아빠도 이제 시윤이랑 안 놀 거야"
"나도 아빠양 안 놀 거거든여엉?"
"그래. 그럼 이따 밥 먹고 나서도 누나랑만 놀 거야. 시윤이는 들어가서 자"
도끼눈을 하고 나를 쳐다보면서 얘기했다.
"그여케 말하면 나 기분 안 조아여어엉"
"시윤이가 왜 기분이 안 좋아. 시윤이가 아빠랑 안 논다고 했으면서"
"아빠양 딘따 안 논다여엉"
"그래. 아빠도 이따가 누나랑만 놀 거야"
"그여케 말하면 나 기분 안 조따구여어엉"
소윤이는 옆에서 시윤이를 타일렀다. 니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되고 아빠한테 죄송해여,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여라고 얘기해야 한다면서. 아마 시윤이도 계산을 해 봤겠지. 시윤아, 아빠가 아빠 경력은 6년밖에 안 되지만 자식 경력은 36년이거든. 아빠 경험상 엄마, 아빠랑 등져 봐야 자식만 손해야.
"아빠아. 대동해여엉. 안 그여께어영"
시윤이는 저녁 먹다 말고도 한차례 폭풍을 겪었다. 너무 졸렸는지 자꾸 안 먹겠다고 투정을 부렸다. 요 며칠 마지막에는 좀 먹여주고 그랬더니 거기에 맛이 들렸나 싶어서 오늘은 좀 강경하게 나갔다.
"시윤아. 오늘은 밥이랑 두부 다 안 먹으면 못 내려가. 알았지?"
많이 남은 것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못 먹는 게 아니라 안 먹고 버티는 거였다. 저렇게 말했더니 또 왜 그렇게 얘기하냐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슬픔은 없고 짜증만 가득한 울음이었다.
"시윤아. 계속 우는 건 상관없는데 오늘은 밥 안 먹으면 식탁에서 못 내려오고 그럼 이따가 잘 시간 되면 누나는 엄마랑 자러 들어갈 거야. 시윤이는 엄마랑 못 자겠지? 잘 생각하고 행동해"
갑자기 울음을 멈추고 숟가락질을 시작했다. 네 살이면 분명히 어리지만 사실 다 알아듣는다.
장모님이 애들을 다 씻겨 놓고 가셨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풍부하고 격렬한 반응과 함께하는 메모리 게임, 보물 찾기도 엄청 많이 했다고 했다. 장모님이랑 그렇게 양질의 메모리 게임을 하고도 소윤이는 나한테도 또 메모리 게임을 하자고 했다. 물론 즐겁게 응했다. 늘 최선을 다하고 있다. 조는 게 문제지. (오늘은 안 졸았다.)
아내와 자러 들어갔던 소윤이는 한 30분 있다가 아내랑 다시 나왔다. 씨익 웃으면서. 물도 마시고 화장실에 가서 오줌도 싸고 그랬다. 변기에 오줌 떨어지는 소리는 1초 만에 끝났다. 괜히 한번 나오고 싶어서 핑계 댔다는 말이다. 괜히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참견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들어갔다. 아니, 피곤하지도 않은가. 7시에 일어나서 밤 9시까지. 아내나 나는 머리만 대면 저절로 잠이 쏟아지던데.
"소윤아. 내일 아침에는 그냥 안 깨우고 출근할게"
"왜여?"
"오늘 너무 늦게 자니까 피곤하잖아"
"싫어여. 안 돼여"
소윤아, 니가 아빠 대신 나가서 일 좀 할래? 체력도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