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서 불태운 금요일

20.03.27(금)

by 어깨아빠

아침만 되면 순둥이로 변해 내 품을 찾는 시윤이가 먼저 깨서 나왔길래 안고 있었다. 소윤이도 곧이어 깨서 나왔고 괜히 눈치를 봤다. 시윤이하고 너무 다정스럽게 있으면 혹시나 소윤이가 서운해할까 봐. 소윤이가 그런 얘기나 표현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소윤이의 그런 속내를 알아차린 것도 아니고 그저 혹시나였다. 실제로 소윤이가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신경이 계속 쓰였고 소윤이도 불러서 무릎에 앉혔다. 물론 이것도 소윤이가 원했을지 원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아내는 오늘 너무 졸리고 힘들어서 집에만 있으려고 했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나가야겠다고 했다. 본인이 날씨를 누리고 싶은 마음도 당연히 있었겠지만 '애들이 이 날씨를 누렸으면 좋겠다'라는 게 주된 목적이었다. 놀이터에 나가서 어떻게 놀았지는 전해 듣지 못했지만 날씨가 참 좋긴 좋았다. 퇴근하는 길에 본 바깥 풍경이 기분을 아주 좋게 만들었다. 출근길이 아닌 퇴근길이라 그럴지도 몰랐지만. 아내의 상황이 부디 이 맑고 화창한 날씨를 압도할 만큼 우중충하지 않길 바랐다.


아내가 오늘은 집에 가서 도저히 저녁 준비를 못 하겠다고 했다. 그렇다고 밖에서 먹기에는 시국도 시국이고 소윤이와 시윤이, 특히 시윤이가 너무 졸릴 테니 음식을 사서 집에서 먹기로 했다. 소윤이가 탕수육을 먹고 싶다고 했다면서 짜파게티와 탕수육을 먹자고 했다. 집에 가는 길에 식당에 들러서 탕수육을 샀다.


예상 시간보다 한 15-20분 늦어서 부리나케 집에 들어섰는데 시윤이와 아내는 화장실에 있었다. 아내가 쪼그리고 뭔가 시윤이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었다.


"여보. 왜? 시윤이 똥 쌌어?"

"아니, 갑자기 배 아프다고 하더니 토할 거 같다길래"

"진짜? 그래서 토했어?"

"토하지는 않았어"


밖으로 나온 시윤이의 얼굴에는 슬픔과 아픔, 기운 없음이 가득했다. 가만히 보면 전부 합쳐 '졸림'인 것 같기도 했고. 저번에도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다가 결국 토하고 설사했던 적이 있어서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시윤이는 기운 없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시윤아. 아파?"

"(끄덕끄덕)"

"어디?"

"배"

"아빠가 좀 문질러 줄까?"

"(끄덕끄덕)"


다행히 손이나 발이 차지는 않았고 열도 없었다. 워낙 졸릴 때라 이게 진짜 어디가 아파서 그런 건지 아니면 너무 졸린 탓에 맥을 못 추는 건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시윤아. 저녁 먹을 수 있겠어?"

"아니여"


밥을 마다하는 걸 보면 진짜 아픈가 싶기도 했는데 한 5분쯤 뒤에 다시 물었더니


"먹으꺼에여엉"


이라고 대답했다.


다행히 식탁에 앉아 밥을 좀 먹더니 기운과 정신을 챙겼는지 점점 웃음을 되찾았다. 배가 고픈 걸 아픈 거라고 잘못 얘기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끝까지 잘 먹었다. 아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녁 먹고 난 시윤이의 모습을 보고는 확신했다.


'쟤 안 아프구나'


시윤이도 매일 저녁 자기만의 싸움을 하고 있다.


소윤이는 놀이터에 가서 여태껏 처음으로 자전거(헬스장에 있는 자전거 머신 같은)를 '잘' 탔다면서 자랑했다. 이전까지는 발이 페달에 닿을락말락해서 오래 하기가 어려웠다. 이제 그게 능숙하게 되는 거다. 소윤이가 그만큼 컸다는 거다.


오늘도 메모리 게임 한 판과 보물찾기 두 판으로 하루를 끝냈다. 보물 찾기는 한 판이 최초 약정이었는데 너무 아쉬워하는 소윤이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다. (대신 책은 안 읽는다는 조건을 걸었다.) 방에 들어가서 같이 기도하고 누웠는데 소윤이가 목이 마르다고 했다.


"아빠. 목 말라여"

"에이, 조금 전에 먹었잖아. 그냥 자"


소윤이의 눈이 슬퍼 보였다. 그깟 물이 뭐라고. 거기에 또 마음이 약해져서 밖에 나가 물을 한 컵 떠다 줬다. 그러고 나서는 또 자기 인형을 안 챙겼다며 갖다 달라고 했다. 소윤이가 요구한 인형은 두 개였는데 하나는 거실에 있었다.


"소윤아. 하나는 어디 있는데?"

"아, 맞다. 캐리어에 있지"

"에이. 그럼 오늘은 그냥 자"


애들을 모두 재우고 아내와 나는 불금을 보냈다. 소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뭔가 하거나 준비하지 않고.


"영화라도 봐야 되는데"

"야식이라도 먹어야 하는데"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발동을 걸기 위한 최소한의 연료마저 다 쓴 느낌이었달까. 아내도 나도 바쁘게 살았으니까 좀 안 바쁘게 널브러지는 게 아내와 나의 불금이었다.


하나님이 창조는 3일 정도만 하시고 네 번째 날을 안식일로 삼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망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