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2(목)
아내가 자고 있는 내 등을 문지르며 깨웠다. 급히 부탁할 게 있어서 그러나 싶어서 순식간에 잠에서 깨며 물었다.
"어. 여보. 왜?"
"알람 울렸어"
알람이 한 번을 채 울리기도 전에 끄고 일어나기를 처음으로 실패했다. 여유가 생긴 걸까 피곤이 쌓인 걸까.
소윤이가 시윤이보다 2년이나 더 살았다는 증거를 아침마다 만난다. 자고 있는 두 녀석을 깨워서 뽀뽀를 할 때 풍기는 구취의 농도가 다르다. 소윤이는 확연히 어른의 그것과 비슷하고 시윤이는 아직 풋내가 느껴진다. 물론 내색하지 않는다. 소윤이는 이제 민망함이나 무안함의 감정도 충분히 느낄 만큼도 컸으니까. 그리고 사실 그렇게 괴롭지도 않...데바데(day by day)다.
저녁에는 집에 손님이 오기로 했다. 함께 처치홈스쿨 하는 교감 선생님 가정이 출산을 앞둔 우리를 만나기 위해 온다고 했다. 같이 저녁을 먹는 건 아니어서 오기 전에 먼저 저녁을 먹어야 했다. 마침 오늘따라 퇴근길이 덜 막혀서 평소보다 15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시윤이는 또 (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요새 자주 이랬나 보다) 울고 있었다. 얼핏 보면 소윤이가 시윤이를 섭섭하게 한 거 같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었다. 자세히 들여다볼 것도 없다. 그냥 졸리니까 그런 거다.
다정함이 통할 상태는 아니라서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퇴근해서 옷도 갈아입기 전에 엄한 아빠가 되기는 싫었다. 아내는 시윤이를 등지고 어금니를 꽉 무는 표정을 내게 보였다. 그녀의 그 표정이 말하는 건 명확했다.
'으. 도대체 오늘 몇 번째 저러는 거야'
다행히 시윤이가 먼저 이렇게 얘기했다.
"아빠아. 아빠가 안고 손 띠더주데여엉"
"알았어. 그럼 이제 징징대지 말고 앉아서 감사히 밥 먹기다? 알았지?"
"네"
소윤이는 야근을 마친 직장인처럼 얼굴에 피로가 가득했고 시윤이는 1분만 안아주면 잘 것처럼 활동성이 떨어졌다. 앉아서 먹고 있는 게 놀라운 일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때쯤 교감 선생님 가정이 왔다.
가족을 제외하면 실로 오랜만에 집에 누군가 방문한데다가 친구까지 있으니 소윤이와 시윤이, 교감 선생님네 애들도 모두 신이 났다. 오밤중에 걸맞지 않은 흥분과 신남이라 자제시키는데 애를 좀 먹기는 했지만 이해는 됐다. 코로나가 모든 만남을 차단했으니까.
생각보다 오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함께 기도도 하고. 이틀 후면 롬이를 만난다는 게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아내나 나나 실감을 할 정도의 여유도 없이 바빴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려나) 누군가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기도도 하고 그러니까 새삼 가까이 왔다는 게 느껴졌다. 요 며칠은 롬이의 탄생이 임박했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떠오른다. 시윤이의 탄생이 코앞에 왔을 때도 그랬다. 먼저 난 자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랄까. 그래도 시윤이 때는 오히려 소윤이랑 더 시간도 많이 보내고 친해지는 기회였는데, 이번에는 아예 부모님들께 맡겨야 하니 그것도 아쉽고.
교감 선생님네가 떠난다고 하자 소윤이는 더 놀고 싶다며 울었다. 클수록 마음은 여려지는지 진짜 속상하고 아쉬워서 우는 일이 많아졌다. 대신 진정도 빨라졌다. 순간의 속상함 때문에 흐른 눈물은 마르기도 금방 마른다. 가슴 깊숙한 곳을 찔러서 나오는 눈물이 마르는 데 오래 걸리는 거지.
엄청 늦은 시간이었다. 양치를 씻기고 방에 다 함께 들어갔다.
"아빠. 오늘은 엄마 배에 손대고 기도할 거에여?"
"아, 아니 오늘은 마지막이라 다 함께 손잡고 기도할 거야"
"왜 마지막이에여?"
"소윤이랑 시윤이는 내일 파주에서 자니까 롬이 태어나기 전에 우리 넷이 함께 자는 마지막 밤이지. 당분간은 엄마랑 아빠랑 같이 못 지내기도 하고"
무엇을 위해 기도할 건지 한참 설명했다. 아니 설교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교화나 훈화의 목적이 있는 건 아니었고 진심을 전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긴 서론을 마치고 기도를 시작했다. 동시에 각자 기도를 하고 (이런 걸 통성기도라고 함) 내가 마무리 기도를 하기로 했다. 기도를 시작한 지 한 10초쯤 됐나. 어디서 꾸룩 꾸룩 꾸루룩 꾸루루룩 꾸루루루루루루룩 하는 방귀 소리가 들렸다. 방귀의 장단과 박자가 웃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였다. 결국 모두 웃음이 터졌다. 한참을 웃다가 겨우 진정하고 마무리를 했다. 어쨌거나 즐거운 마지막 밤이었다. 넷이 보내는 마지막 밤.
오늘 보니 어제 설치한 아기 침대에 벌써 이불이 깔리고 짐이 들어찼다. 아기 침대 덕분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자면서 이리저리 뒹굴 공간이 3분의 1은 줄어들었다.
생명은 이런 거다. 반드시 누군가, 아니 모두의 헌신과 양보가 있어야, 나고 자라는 거다. 소윤이는 처음 사랑을 누렸지만 두 명의 동생을 위해 나눠야 하고, 시윤이는 누나의 배려를 누렸지만 동생에게 나눠야 하고. 롬이는 모두에게 받는 복이 있지만, 뭐든 자기 몫은 3등분이 된 뒤 받는 강제 나눔의 인생이고.
롬이의 무사 탄생과 아내의 무탈 출산을 위해 기도했다. 내가 생각지 못한 일이 생긴다고 해도 그것 또한 신의 계획일 테니 감사하게 받겠다는 기도는 차마 하지 못했다.
"하나님. 제발 그런 일 안 생기게 해주세요.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롬이야. 아직 내일 하루 남았지만 우리는 오늘이 마지막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