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3(금)
하루 종일 마음이 분주했다.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고 느꼈다). 일은 손에 안 잡히고 붕 떠 있었는데 설렘은 아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 낮잠을 자기로 약속했다. 아내의 출산 전날, 롬이의 탄생 전날, 4인 가족으로는 마지막 날 등의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니만큼 퇴근하고 밖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큰일을 치러야 하는 아내를 위한 최후의 만찬이기도 했고. 시윤이는 아직은 낮잠을 재우는 게 얼마든지 가능한데 이른 밤잠을 위해 우리(아내와 나)가 안 재우는 게 사실이다. 소윤이도 미리 이유를 잘 설명하면 종종 낮잠을 잔다. 오늘처럼. 더군다나 요즘은 새벽같이 일어나니 낮에도 엄청 피곤하긴 할 거다.
아내가 애들 낮잠 자는 사진을 보냈다. 사진이었지만 고요함과 평화가 생생하게 전해졌다.
퇴근하자마자 곧바로 다시 나왔다. 아내와 아이들은 이미 나갈 준비를 다 마친 상태였다. 저녁을 먹고 나면 소윤이와 시윤이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파주(처가댁)에 가야 했다. 며칠 치의 짐도 함께였다. 퇴근해서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고 나니 하루 종일 뭐가 그렇게 헛되이 바빴는지 알 듯했다. 롬이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롬이의 출산으로 인해, 단 며칠이지만 떨어져야 하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향한 복잡한 마음이 실체 없는 분주함을 야기한 듯했다.
낮잠을 잔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주 활기찼다. 특히 시윤이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웃음과 애교를 기본으로 장착하고 거기에 밝기까지 했다. 낮잠 안 잔 날은 검은 시윤, 낮잠 잔 날은 하얀 시윤. 이런 느낌이었다.
아내는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큰일을 치르려면, 힘을 크게 쓰려면 모름지기 고기를 먹어야 한다. 그래서 고기를 선택했다. 난 굽기에 집중했다. 최대한 좋은 상태의 고기를 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아내를 위한 만찬이었지만 역시나 소윤이와 시윤이가 속도를 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초반에는 무서운 속도로 먹어치웠다. 아내도 자꾸 애들 챙기려고 하길래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먹기만 하라고 했다. 바쁘게 굽고, 자르고, 나눠주고, 다시 고기 올리고. 갈빗살은 거의 다 사라졌는데 나의 허기는 크게 변화가 없었다. 우리 애들이 고기를 좋아하고 잘 먹는다는 걸 새삼 느꼈다.
두 번째 고기로 차돌박이를 시켰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배가 부르기도 했겠지만 갈빗살이 더 맛있는 듯했다. 차돌박이에는 영 손을 대지 않았다. 아내도 냉면을 먹기 위한 배를 남겨두기 위해 차돌박이는 거의 안 먹었다. 나의 차지 않은 배를 차돌박이로 가득 채웠다.
아내는 잘 먹었는지 모르겠네.
저녁 먹고 파주로 가는 길에 카페에 들러서 커피도 샀다. 아내에게는 한동안 먹기 힘든 최후의 아이스 라떼였다.
파주로 가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마, 아빠와 떨어지는 걸 생각하니 슬프다는 식의 얘기를 했다. 속 빈 소리는 아니라고 느꼈다. 다만 둘 다 아기가 아니니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이 생긴 것뿐이었다. 아내는 롬이를 만난다는 기대감보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만나지 못하는 슬픔이 갑자기 더 커졌다고 했다. 다들 비슷했을 거다. 다만 웃으며 헤어지는 게 더 낫다는 것도 모두 아는 거고.
그래서 우리는 웃으며 헤어졌다. 생각만 해도 (뭘 생각하는지 설명하라면 못하겠다. 그냥 어떤 그런 느낌적인 느낌적인 우리의 상황적인 상황이랄까) 울컥하는 무언가가 모두에게 있었을 텐데. 그래도 우리는 웃으며 헤어졌다. 아내와 나는 그렇다 쳐도 소윤이와 시윤이까지 여기에 동참하는 걸 보면 둘 다 크긴 컸다.
내일부터는 일기에 D+1도 하나 추가해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