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4(토)
2020년 4월 4일 오전 10시 58분. 3.14kg.
롬이가 태어났다.
7시가 조금 넘어서 병원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분주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아내와 함께 앉아서 간호사 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고 설명을 들었다. 안타깝게도 1인실은 당장 자리가 없어서 일단 다인실에 들어갸 한다고 했다. 그럼 언제 자리가 나느냐는 질문에는 역시나 확답을 하지 않으셨다. 괜히 확답했다가 상황이 틀어지면 항의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다.
"산모분 잠깐 이쪽으로 오세요"
그냥 잠깐 갔다 올 줄 알았는데 꽤 오래 소식이 없었다.
[여보. 뭐해?]
[환복, 제모, 채혈, 링거, 지금은 태동 검사]
난 계속 휴게실에서 기다렸는데 아내는 어느새 병실에 가 있었다. 환자복을 입은 아내의 모습에 뭔가 감정이 복잡했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또 사지(표현은 표현일 뿐)로 몰아넣는다는 가책이 느껴졌다.
다인실이지만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공간이 좁아서 영 불편하긴 했지만 아내는 어차피 침대 위에서 지내야 하니 비슷했다.(라고 애써 생각했다.) 다른 자리에는 진통을 기다리는 산모가 있었나 보다. 간호사 선생님이 자궁 수축을 확인해야 한다며 어떤 기구를 설치했는데 그 후부터 초음파 진료받으러 가면 들려주던 심장소리 같은 게 엄청 크게 들렸다. 온 병실에. 쿠궁 쿠궁 쿠궁 쿠궁. 다행히 아내나 나나 예민한 편은 아니어서 그러려니 했다. (그러려니 안 할 문제도 아니었고.) 부디 1인실에 자리가 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진해지긴 했다.
마지막으로 담당 의사 선생님에게 갔다. 역시나 롬이는 그대로였다.
"10시 30분 정도에 수술할게요. 위에 가서 기다리고 계시면 돼요"
아내랑 수다 떨면서 즐겁게 있었다.
"이가영 산모님. 가실게요"
금방 수술실 앞에 도착했다.
"여보. 잘 하고 와. 화이팅"
"응. 여보"
[수술실. 통제구역]
빨간 글씨로 강조한 글씨 안으로 아내가 들어갔다.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생명이 탄생하는 현장치고는 얼마나 삭막한지 알고 있으니까. 들어갈 때랑 나올 때랑 얼마나 다를지 알고 있으니까.
나 혼자였다. 덕분에 눈물을 좀 흘리면서 기도해도 눈치가 안 보여서 좋았다. 고요했다.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안부를 물어오는 카톡도 보고 있는데 희미하게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뿐이었다.
'저거 롬이다'
잠시 후 간호사 선생님이 롬이를 안고 나오셨다. 꼭 흙밭에서 구른 것처럼 얼굴이 지저분했다. 엄청 시끄럽게 울어댔다. 지저분하고 시끄러웠지만 감사했다. 내 뇌도 갈피를 못 잡는 듯했다. 웃으라고 명령했다가 울라고 명령했다가.
"아버님. 아기는 4월 4일 오전 10시 58분에 3.14kg으로 태어났어요. 딸이구요. 특별한 이상은 없고 건강해요. 여기 앉아 계시다가 과장님 뵙고 병실에 가서 기다리시면 돼요"
'롬이야, 안녕'
십여 분 지나고 과장님이 나오셨다.
"아버님, 수술은 잘 됐구요. 지금 산모님은 수면 마취하고 회복중이에요. 배가 너무 불어 있어서 지난번에 수술했던 부위가 너무 얇아져 있더라구요. 거의 자궁벽이 보일 정도여서 위험할 뻔했어요. 그리고 안에 유착이 좀 있었던 거 같아요. 그거 다 제거했고요. 병실에 올라가셔서 기다리면 돼요"
'지난번 수술 부위'는 소윤이 때, 그러니까 5년 전을 말하는 거고 '안에 유착이 있었다'는 건 시윤이 때의 흔적이었을 거다. 당연한 건 없다. 조금이라도 더 부풀어서 지난 수술 부위가 터지거나 자궁벽이 어떻게 됐으면, 유착되었던 것이 나쁘게 작용을 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는지 모른다. 감사하게도 그런 일이 안 생겼을 뿐이다. 나나 아내가 어떤 노력을 한 것도 아닌데.
일단 가족에게만 소식을 전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가고 나서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은혜 아니면]이라는 찬양을 불러서 보낸 건데 정작 아내는 듣지 못하고 들어갔다. 나 혼자 롬이와 아내를 기다리며 듣다가 또 눈물. (하아, 진짜. 덩치가 작거나 눈물이 없거나 둘 중에 하나라도 있어야 할 판에, 덩치도 크고 청승도 늘다니.) 소윤이랑 시윤이도 보고 싶었다.
아내를 기다리는 동안 1인실에 자리가 났다. 다행이었다. 아내를 다시 만나는 건 꽤 한참 걸렸다.(실제로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유독 길게 느껴졌다.) 아내를 보기 전에 신생아실에 가서 롬이를 한 번 더 봤다. 그새 좀 말끔해지고 눈을 또렷하게 뜨고 있었다. 아아, 막내는 다르다는 육아 선인들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으, 막 어떻게 주체하기 어려운 그런 어떤 막내딸을 향한 감정이 끓어올랐다. 보고 있는데 보고 싶은 기분이랄까.
아내는 침대에 누운 채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병실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괜찮아 보였다. 정상적인 대화도 가능했다. 바로 롬이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줬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부른 [은혜 아니면] 도 들려줬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영상 통화도 걸었다. 소윤이는 전화를 받자마자, 아내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아내도 울고, 화면 밖에 있던 나도 울고. 소윤이의 감정이 뭐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전화를 받기 전에 이미 약간 속상한 상태였다고 하니 속상한 감정이 엄마의 얼굴을 보니 증폭된 건지, 그것과는 상관없이 엄마를 보니 눈물이 난 건지. 아무튼 소윤이는 한 번도 웃지 못했다.
통화를 마치고 나서 아내의 상태는 급격히 안 좋아졌다. 아내가 괜찮아 보인 건 마취의 기운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반신 마취가 풀리자 아내는 통증, 아니 고통을 호소했다. 내가 뭐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냥 옆에서 봐 주고, 손잡아 주고, 쓰다듬어 주고. 남편이랑 아내랑 싸울 때마다 이맘때쯤으로 남편을 잠시 데려오면, 남편들이 찍 소리도 못할 텐데. 이런 일을 세 번이나 겪는 아내가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아내의 통증이 정점을 지나자 조금 안정이 됐다. (안정이라는 단어를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조금, 아주 조금, 미친 듯이 조금, 그나마 조금, 굳이 비교하자면 조금 정도의 수식어를 붙이면 된다.) 신음하는 아내 옆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심심하지 않았다. 롬이 사진이랑 동영상을 보고 또 봤다.
아내는 내일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물도 밤 8시나 돼서야 처음 마셨다. 내일이 되어도 걸을지 못 걸을지 모른다. 침대에 누워서 그저 다리를 굽히는 일조차도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도저히 헤아리지 못할 통증과 고통으로 끊임없이 아파하고 있고.
아내를 보고 있노라면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사하다. 모두 무사하다. 모두 건강하고.
이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