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5(주일)
아내의 얼굴은 어제보다 더 부었다. 어제보다는 좀 덜 아프다고 하긴 했는데 침대 위에만 있어야 하는 건 똑같았다. 휴대폰을 보며 온라인 예배를 드릴 때도 아내는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저께 밤부터 아무것도 못 먹은 상태로 그 큰일을 치렀으니 기력이 남아 있으면 그게 이상할 일이었다. 그래도 새벽에 방귀가 나와서 오늘부터는 식사가 가능했다.
점심으로 흰쌀죽과 미역국이 나왔다. 아내는 금방 죽 한 그릇을 비웠다. 조금이라도 빨리 기운을 차리고 몸이 회복하려면 잘 먹는 게 우선인데 다행이었다. 뭔가 먹었다는 것 말고도 의미가 있었다. 아내가 처음으로 몸을 일으킨 거다. 침대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허리를 굽히고 앉는데 성공했다. 물론 무척 힘들어했다. (다리의 위치를 바꾸는 간단한 일에도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점심을 먹고 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혼자 화장실에도 다녀왔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아니 훨씬 더 큰 고통과 함께였다. 혹시라도 일어나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서 넘어질까 봐 바짝 붙어서 대기했다. 다시 한번 아내가 은근히 끈기가 있다는 걸 느꼈다. 아내는 이를 악물고 일어서서 걸었다. 아내가 평소에 힘쓰는 걸 잘 하거나 근력이 좋은 것도 아니다. 이게 엄마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중요할 때만 발휘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참 대단하다.
난 잠시 근처 한살림에 가서 아내의 간식거리를 샀다. 두유, 요거트, 호박즙, 백하수오즙. 뭔가 맛있으면서 몸에도 좋은 혹은 몸조리에 방해가 되지 않는 걸 먹이고 싶었는데 마땅치는 않았다. 나도 점심을 먹고 커피를 샀다. 사실 밥보다는 커피가 더 고팠다.
아내의 퉁퉁 부은 얼굴이 안쓰러웠다. 소윤이 때도 이랬었나 싶었다. 그래도 아내에게서 전해지는 기운이 어제 하고는 확연히 달랐다. 어제까지는 그저 환자였는데 오늘은 뭔가 엄마의 강인함이 조금 느껴졌다.
"여보. 조금 이따가 좀 걸어보자"
"그래"
아내가 걷자고 하는 건 하루라도 빨리 몸을 회복하려고 하는 거고, 하루라도 빨리 회복하려는 건 얼른 롬이를 보려는 거고, 얼른 롬이를 보려는 건 모유 수유를 하려는 거다. 다리에 20kg 짜리 아령을 매단 듯 힘겹고 느릿한 한걸음 한 걸음을 기꺼이 자처했다. 한 30m의 걸음에도 기진맥진이었다. 그래도 걸으면 걸을수록 나아졌다. 허리도 많이 펴졌고. 힘들어도 많이 걸어야 빨리 회복한다는 주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아내는 저녁도 잘 먹었다. 죽이 아닌 일반식이었는데 싹싹 비웠다. 배가 고파서 다행이었고 잘 먹어서 다행이었고 먹고 나서 별 탈 없어서 다행이었다. 먹으니 조금 더 기운이 나는 듯했다.
아내는 출산하고 잠깐 본 뒤로는 처음으로 롬이를 직접 봤다(직접이라고 하기에는 유리창 너머였지만). 롬이는 마침 다채로운 표정을 보여줬다. 아내는 힘겨운 거동에도 불구하고 얼른 내일이 돼서 수유하러 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럼 직접 안을 수 있으니까.
롬이를 보러 가기 전에 소윤이, 시윤이와 통화를 했다. 소윤이는 새삼 다 큰 것처럼 느껴졌다. 통화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의미와 흐름이 존재하는 대화다운 대화가 이뤄졌다. 누군가 아빠를 언급하지 않으면 굳이 아빠를 바꿔달라거나 보여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나도 그랬다. 대학생씩이나 됐을 때도 수술하고 나서 엄마만 찾았다.
통화를 마친 소윤이는 장모님의 휴대폰으로 카톡을 보냈다. 아무 이모티콘이나 막 찍어서 보내는 게 아니었다. 대화를 시도했다. 자기 동영상과 사진을 보내고는
[아빠 이거 제가 보내거에요]
이렇게 글도 써서 보냈다. 내가 답장을 하면 거기에 맞는 답장이 다시 왔다. 음성 메시지도 주고받았다. 감개무량하다. 여기에 혹해서 휴대폰을 사주는 게 가능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소윤이랑 카톡을 주고받다니.
병실에 돌아와서는 아내가 먼저 소윤이, 시윤이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잘 놀고 있었다. 소윤이는 우리가 보내준 롬이 사진과 동영상을 보고 롬이 표정을 따라 했다. 아내와 나에게도,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어제처럼 슬픔이 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더 보고 싶었다. 아까 한살림에 다녀올 때 1층에 어느 가족이 있었다. 아내분은 혼자 병원에 있고 남편분이 집에서 딸과 함께 있다가 잠시 만나러 온 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소윤이랑 시윤이도 잠깐 오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애들은 엄마만큼 아빠가 보고 싶지 않았겠지만 난 애들이 많이 보고 싶었다.
집에 가면 진정한 시작, 고통의 세계일 테지만 또 불나방 본능이 작동했다. 빨리 집에 가서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를 함께 보고 싶다. (으, 서윤이 너무 어색하다.) 불나방은 타서 죽지만 난 타서 죽을 만큼 힘들 뿐, 죽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