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와 젖몸살

20.04.06(월)

by 어깨아빠

아내는 아침이 되자 통증을 호소했다. 배, 정확히는 수술 부위 안쪽이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아프면 참지 말고 진통제 팍팍 맞으라고 조언을 해주셨었다. 아내는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아픔을 호소했다.


"여보. 배 안 고파?"

"식욕이 뚝 떨어졌어"

"진통제 놔 달라고 말씀드릴까?"

"응"


대부분 남긴 아내의 아침 식사를 퇴식기에 갖다 놓으면서 간호사 선생님에게 얘기했다.


"저기, 508호 진통제 좀 놔 주세요"


진통제가 효과가 좋긴 좋았다. 아내는 어느새 통증을 잊고 다시 기운을 차렸다.


"아, 신생아실에서 언제 부르지?"

"왜? 빨리 가고 싶어?"

"응. 롬이 보고 싶어서"


아내는 아침부터 수유 호출을 기다렸다. 진통제의 힘이었는지 롬이의 힘이었는지 신생아실로 향하는 아내의 발걸음에서 경쾌함마저 느껴졌다.


아내가 수유를 하는 동안 밖에서 기다렸다. 나 같은(?) 남편이 한두 명 더 있었다. 수유를 마치고 나온 아내는 다소 지쳐 보였지만 표정은 밝았다.


"여보. 잘 먹어?"

"응. 엄청 잘 빨아"

"모유도 잘 나와?"

"아직 그런 건 아닌데 그래도 잘 빠는 거 같아"


또 다른 국면의 육아 혹은 산후조리가 전개됐다. 이맘때의 육아는 본능과의 싸움이다. 하는 게 먹고, 자고, 싸는 거 밖에 없는데 그게 그렇게 힘들다. 아직 자는(재우는) 것과 싸는 건 우리의 일이 아니고 먹는 영역이 조금 넘어온 거다. 어차피 힘든 거 잘 먹기라도 하면 그나마 나은데 힘든 건 힘든대로고 거기에 먹지도 않으면 그야말로 고통이다. 특히 모유 수유는. 다행히 롬이의 출발은 좋았다.


낮에는 잠깐 나갔다 왔다. 가장 큰 임무는 출생신고였다. 동사무소에 가서 롬이가 태어났다는 걸 알렸다. 강서윤. 이름을 적고 한자도 적고 본적도 적고. 꽤 한참 걸렸다. 동사무소 직원분이 날 부르더니 '서'에 해당하는 한자를 보여주며 얘기했다.


"아, 선생님께서 주신 '서'자가 두 종류에요"


같은 글자를 두 개 보여주며 말하길래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아, 이게 보시면 뜻도 같고 글자도 같기는 한데 위에가 이어지느냐 나눠지느냐 차이거든요. 사실 중요한 건 아닌데 작명소 같은 데서 이름 받아오시는 분들은 민감한 분들이 계셔서요. 이게 획수에 차이가 나거든요"


천지만물과 우주의 음양오행을 고려해 이름 석 자를 짓는 분이 들으면 큰일 날 소리겠지만, 난 아무 상관없었다. 획수가 하나 늘든 줄든.


"아, 위에 걸로 해주시면 돼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신기한 건 시윤이와 서윤이의 주민등록번호가 맨 앞자리(성별)만 다르고 다 똑같다. 직원분도 이런 건 드문 경우라며 신기해 하셨다. 외우기 쉬워져서 좋다.


동사무소에서 나와서는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는 길에 롯데슈퍼에 들러 청포도 한 팩을 샀다. 냉장고에 넣어 놓아야 할 게 배송될 예정이라 시간 맞춰서 집에 간 거였다. 간 김에 샤워도 하고, 머리도 감고, 면도도 하고. 또 이것저것 챙길 것도 챙기고.


배송된 식재료를 정리하다가 평소에 감자와 양파 놓는 곳을 들췄는데 웬 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아내의 친구가 애들이랑 키워보라며 보내준 '버섯 키우기'(?)였다. 받았던 그대로 있는 걸로 봐서는 아내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버섯은 종이 뚜껑을 비집고 나오고 있었다. 좀 무서웠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자라는 생명체라니. 다시 병원으로 가는 길에 자연드림에 들러 죽과 시리얼을 샀다. 아내의 간식이었다.


아내는 다시 통증이 심해졌는지 기력이 쇠한 모습이었다. 거기에 가슴도 조금씩 아프다고 했다. 진통제의 유효 시간은 8시간이라고 했으니 딱 그쯤이었다.


"여보. 진통제 또 놔 달라고 해?"

"어. 조금만 더 있다가"


점심에는 진통제의 힘으로 통증을 눌러놓은 덕분에 밥을 잘 먹었는데 저녁에는 다시 식욕을 잃었다. 그냥 조금 아픈 게 아니라 엄청 아파 보였다. 제대로 걷기가 힘들 정도로. 아내는 다시 진통제를 한 방 맞았다.


잠시 후 다시 수유 호출이 왔다. 하루에 네 번이다. 아침 점심 오후 저녁. 아내도 불나방 인생을 시작했다. 너무 힘들고 아픈데 롬이를 직접 안아볼 수 있으니 너무 좋은 거다. 나도 덕분에 아내가 직접 찍은(유리창의 방해 없이) 롬이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게 됐고.


진통제의 약효가 발휘되자 아내의 고통스러운 표정도 조금씩 사라졌다. 침대에 누워 있던 아내는 제법 이른 시간에 잠들었다. 자려는 의지는 없었지만 자기도 모르게 눈이 감긴 듯했다. 하루 종일 누워서 아픔을 이겨내는 것만으로도 체력 소모가 큰 일상에 새끼를 먹여야 하는 일까지 시작되었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한두 시간을 그렇게 자던 아내가 잠에서 깼다.


"으으"

"여보. 왜? 어디 아파?"

"가슴이 뭉치네. 아프다"

"진짜? 시작됐네"


나와 아내에게는 강렬한 젖몸살의 추억(?)이 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겁을 먹었다. 소윤이 때 겪었던 유선염의 공포가 아직도 생생하다. 젖몸살을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유다. 아무리 마사지를 하고 어쩌고 해도 쭉쭉 잘 빠는 아기한테는 못 당한다. 밤 수유는 부르지 않기 때문에 내일 아침까지는 그 방법은 쓸 수가 없었다. 아내가 너무 힘들어하길래 최소한의 조치로 내가 마사지를 해줬다. 소윤이 때의 기억을 되살리고 오케타니 마사지사에게 배웠던 지식을 소환하기는커녕 하나도 생각이 안 났다.


"여보. 이렇게 하는 거였나?"

"여보. 어때? 좀 풀려?"

"여보. 이렇겐가?"


오케하니 마사지. 약은 약사에게 마사지는 마사지사에게.


아내는 이번에도 모유 수유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하다. 사실 남편에게는 모유 수유가 편하다. 젖병 안 닦아도 되고. (이거 핵좋...) 애기 울 때 아내한테 안겨주면 되고. (와, 이것도 핵좋...) 밤에 자다 깨도 능동적으로 안 움직여도 되고. (그렇다고 아예 모른 척하면 안 된다. 모유를 먹는 아기라 남편이 일어나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옆에 누워서 드르렁 거리는 남편을 보면 뻥 차버리고 싶다는 게 엄마들의 중론. 그러니 "어, 어. 여보. 나 일어날까" 정도의 움직임은 보여줘야 한다. 군대 용어로 '액션 까는 거'다. 아무튼 이것도 핵핵좋..아니 여보, 미안) 아무튼 경험상 모유 수유는 남편들의 지분이 1 아니 0.01도 없다.


아내는 수유할 때마다 롬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왔다. 동영상이나 사진이나 큰 차이가 없다. 움직이지 않으니까. 그래도 동영상이 좋다. 사진도 좋지만. 그냥 다 좋다. 빨리 나도 안아보고 싶다. (이것도 역시 불나방. 앞으로 지겹도록 않을 텐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잠깐 집(처가댁) 앞 공원에 나간 모양이었다. 장모님은 아내에게 공원 벤치에 누워서 자는 시윤이, 자전거에 쓰러져 잠든 시윤이 사진을 보내주셨다. 아마 자전거 타고 공원에 나가다가 자전거에서 잠들었고, 그걸 벤치에 눕힌 게 아니었을까 싶다.


어쩌다 보니 이번 주 내내 휴가를 받았다. 만약에 출근을 해야 했더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내도 나도. 참 다행이고 감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나방 본능이 다시 작동됐다.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의 사진을 번갈아서 보다 보니까.


'아, 빨리 다 함께 모이고 싶다'


(동시에 아직 월요일이구나 다행이다라며 안도하는 한숨이 나오는 건 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