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8(수)
오랜만에 소윤이와 시윤이를 만나기로 했다. 아내와 롬이가 내일이면 집으로 가는데 둘을 환영하기 위해 집을 꾸미기로 한 거다. 소윤이는 틈틈이 자기의 생각과 구상을 장모님의 휴대폰을 이용해 카톡으로 보냈다.
[아빠롬이랑엄마축하해줄때하트풍선두게로꿈이고에디상자에섬물늗고케익하나사서축하해주자요살랑해요]
이런 식으로. 사실 미리 풍선을 사 놨다. 소윤이의 취향까지 파악했나 보다. 소윤이와 사전 상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윤이가 말한 하트 풍선도 포함되어 있었다. 소윤이가 말한 에디 상자에 넣을 선물이 뭔지, 그것도 내가 준비해야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전화했다.
"소윤아"
"네. 아빠. 왜여?"
"아, 에디 상자에 넣을 선물은 어디 있는데?"
"아, 그건 저한테 있어여"
"뭔데?"
"아빠. 지금 스피커 폰 아니져? 엄마 못 듣게 하고 있져?"
"응. 스피커 폰 아니야"
"아, 뭐냐면 롬이 양말이랑 손수건이랑 편지 이런거에여"
"아, 그렇구나. 알았어. 아빠 이제 조금 이따가 갈게"
"알았어여. 조심해서 와여"
처가댁에 가서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집에 가서 꾸민 뒤 다시 처가댁에 데려다줘야 했다. 매우 비효율적인 동선이었지만 엄마와 동생을 환영하기 위해 손수 집을 꾸미고 정성을 들인다는 의미를 생각하면 아깝지 않았다. 가정 출산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가 동생이 탄생하는 순간에 함께하지 못하는 건 무척 아쉬웠다. 이렇게나마 대신하는 거다.
토요일에 보고 처음 보는 거니까 4일 만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바람이 잔뜩 들어간 탱탱볼 같았다. 장난기로 가득 차서 이리저리 방방 뛰고 있었다.
"아빠아아악"
"아빠아아아"
어찌나 반갑던지. 막 달려들어서 한참 동안 내 어깨를 타고 노는데 전혀 힘들지 않았 아니 힘들긴 했지만 즐거웠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몇 번이나 "강소유운", "강시유운" 하고 낮은 음으로 이름을 불렀을 법한 상황이 계속됐지만 마냥 흐뭇했다. 소윤이는 할 말이 많은지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쉴 새 없이 조잘댔다. 시윤이는 타자마자 잤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기념으로 선물을 하나씩 사줬다. 한살림 아이스크림. 제대로 못 자고 깬 시윤이는 폭풍같이 짜증을 냈지만 그것마저 기꺼이 받아냈다. 놀라웠다. 내 마음이 이렇게 넓고도 깊었단 말인가. 집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고 난 샤워를 했다.
"소윤아, 시윤아. 좀 기다려. 아빠 씻고 나올게"
"아빠. 병원에서는 못 씻어여?"
"아, 그런 건 아닌데"
"씻을 수 있기는 한데 불편해여?"
"응, 맞아"
장식이라고 해 봐야 별거 없었다. 그저 풍선뿐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한테는 멋들어진 장식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롬이를 기다리며 기대하는 마음을 담아 환영해 주길 바랐고, 그 마음이 앞으로 동생을 향한 사랑으로 커지길 바랐다. 다행히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래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풍선만 있으면 너무 밋밋하고 소윤이와 시윤이가 뭔가 했다는 느낌이 덜하니까 A4 종이에 [서윤아 사랑해]를 써주고 색칠을 하라고 했다. 소윤이는 아주 정성스럽게 무지갯빛으로 칠했다. 내가 보기에도 예뻤다. 시윤이는 거침없었다. 휙휙휙휙.
"아빠아. 어때여? 예쁘져엉?"
"우와. 시윤이 것도 예쁘네"
집에 오는 길에 꽃도 한 다발 샀다. 거실 베란다 창 앞에 자그마한 상을 놓고 거기에 소윤이가 준비한 에디 선물 상자와 꽃을 놨다. 그 위에는 소윤이와 시윤이 생일 때 썼던 알파벳 풍선을 재활용해서 'SY'를 붙였다. 주변에 다른 풍선도 붙이고. 다른 거실 벽에는 소윤이와 시윤이가 칠한 [서윤아 사랑해]를 붙이고 풍선도 붙이고. 안방의 서윤이 침대와 주변 벽에도 풍선 붙이고. 장식이라고 쓰고 풍선이라고 읽어도 된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하는 소윤이와 시윤이가 기특했다.
"소윤아. 롬이가 좋아하겠다. 그치?"
"맞아여. 롬이가 얼마나 좋아할까"
"소윤이도 롬이 빨리 보고 싶어?"
"그럼여. 얼른 보고 싶져"
"시윤이는?"
"저두여엉"
"얼마나?"
"배깨 넘게에(백게 넘게. 시윤이가 애용하는 표현이다)"
내가 사진을 막 찍었더니 소윤이가 얘기했다.
"아빠. 엄마한테는 보여주면 안 된다여"
"응, 알았어"
소윤이는 철통 보안을 당부했다. 당연히 아내도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긴 했다. 그래도 소윤이와의 약속을 생각해서 오늘의 준비 과정은 먼저 보여주지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둘 다 잔뜩 오른 흥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소윤아. 뭐가 그렇게 신나?"
"오랜만에 집에 오니까 좋아서여"
"그래? 할머니 집이 더 좋지 않아?"
"아니여어. 집이 제일 편하져"
"그래? 그럼 오늘 할머니 집에서 하루 더 자는 거 안 좋았겠네?"
"그런 건 아닌데. 집에서 아빠랑 잔다고 해서 그것도 좋았어여"
원래 오늘은 내가 애들을 데리고 집에서 자려고 했다. 어제 아내의 상태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아내를 도저히 혼자 자게 할 수 없었다. 장모님께 하루만 더 재우겠다고 얘기하고 일정을 바꾼 거였다.
"시윤이는? 할머니 집에서 자는 게 좋아? 집에서 자는 게 좋아"
"집에더여엉"
"그래? 왜?"
"그양여"
"할머니 집은 안 좋아?"
"도은데 엄마양 아빠양 같이 다는 게 도아여엉"
4일 동안 소윤이와 시윤이도 우리 집을 잊지 않고 있었다. 뭔가 뿌듯했다.
다시 파주에 가려고 애들을 차에 태우고 나도 운전석에 앉았는데 시윤이가 얘기했다.
"에휴우. 아빠가 고쟁(고생)이네에"
예상치 못한 헤아림에 웃음이 터졌다.
"시윤아. 뭐라고 한 거야? 아빠 고생이라고?"
"네"
"아니 그런 말은 또 언제 배웠어"
잠시 후에는 자기가 뭔가 설명하고 싶었는데 그걸 나랑 소윤이가 못 알아들으니까 혼자 이렇게도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아아. 아아 화가 난다"
하루가 다르게 큰다고 하더니. 4일 만에 엄청 컸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만나고 오니 활력이 돌았다. 간만에 크게 웃기도 했고. 병원에 돌아와 아내에게 애들 만난 후기를 전했다.
"여보. 애들 보니까 좋더라"
"그치? 그럴 거 같아"
"애들도 신났던데"
"왜?"
"그냥 좋은가 봐. 나도 애들이랑 있어도 안 힘들더라고"
물론 난 엄청 피곤했다. 애들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이 왔다 갔다 해서 그런 거라고 믿고 있다. 아내도 애들 보고 같이 지내다 보면 우울감이 사라지지 않을까 잠깐 생각했는데 과연 그럴까 싶기도 했다.
겨우겨우 롬이를 재우고 안방에서 나왔는데 집안을 뛰어다니다가 안방 문을 쾅 쳐서 롬이가 깨서 울면 롬이를 깨운 범인을 향해 맹수의 얼굴로 포효하는 아내를 자주 만날지도 모른다. 애 셋과 하루 종일 지내면서 그 정도의 변신은 당연한 거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오랜만에(혹은 처음으로) 애들이랑 있으면 늘 빨아 먹히기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애들도 우리에게 뭔가 주고 있었다. 무형의 재산이라 정밀한 측정은 불가능하지만 분명하다.
반대로 주는 게 압도적으로 많을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