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수유원

20.04.11(토)

by 어깨아빠

"여보. 수유하면서는 산후조리가 불가능한 거 같아"

방해(미안하다 소윤아, 시윤아)하는 아이들도 없고, 밥도 장모님이 싸 주신 걸로 그럭저럭 해결했고, 조리원보다 넓고 익숙한 곳이고, 외부인의 방문으로 인한 세균 감염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수많은 장점이 있어도 집에서는 산후조리가 불가능한 건 수유 때문이다.


아내는 하루 종일 젖을 물렸다. 진짜 '하루 종일'일리야 없겠지만 그렇게 느껴질 정도였다는 얘긴데 또 따져 보면 정말 하루 종일이기도 하다. 아침에 일어나서(이것도 무의미하다. 밤과 아침을 구분할 만큼 긴 시간의 통잠은 아직 없으니까.) 다시 밤이 되기까지 짧게는 한두 시간, 길게는 두세 시간에 한 번씩 수유를 했다. 그나마 오늘은 롬이가 꽤 많이 잤다.


첫날밤에 소파에서 밤을 지새운 아내는 어쨌든 매트리스에 누워서 자는 게 허락됐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게다가 롬이가 낮에도 세 시간을 가까이 자기도 했다. 그것도 두어 번.


"여보. 쟤 왜 저래?"

"그러게. 밤에 안 자려고 그러나"


너무 예상치 못해서 그랬는지 오히려 불안했다. 그렇게 자다가 밤에 또랑또랑해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어느 정도 자면 깨워야 하나 고민도 됐다. 아내와 옛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졌다.


"여보. 우리 두 번이나 경험했잖아. 낮에 안 잤다고 밤에 잘 자는 것도 아니고 낮에 잘 잤다고 밤에 안 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잘 때 최대한 재우는 게 짱이야"

"맞아. 잘 자면 좋은 거지 뭐"


아무튼 롬이는 여러 번 길게 잠을 잤다.


이렇게 기록하면 굉장히 수월해 보이지만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아, 이건 아내의 상황을 말하는 거다. 사실 난 아내에 비하면 엄청 수월하다. 수유에만 집중하는 아내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다른 집안일과 잡일을 전담하고 있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성한 몸과 자유가 있다. 반대로 말하면 아내는 그 두 가지 모두가 없다. 아직까지는.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으니 많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수술 부위의 통증이 여전하다. 수술 부위는 물론이고 온몸의 뼈마디도 온전치 않다. '뜯겨져 나갈 거 같다'라고 표현할 정도의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가슴의 통증은 이루 말하기 어렵고, 한 자세로 30-40여 분을 움직이지 않고 젖을 먹여야 하니 그것도 고통스러운 일이고. 30-40분 먹이고 나면 아무리 길어야 2-3시간인데 무거운 몸 덕분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냥 누워서 좀 쉬거나 가만히 앉아 있거나 끝나고 나니 밀려오는 가슴의 통증을 묵상하거나. 먹였는데도 울면 다시 또 물리고.


이 힘들고 고된 과정을 왜 굳이 자처하는가. 아내는 힘들지만 행복하다고 했다. 너무 아프고, 힘들고 괴롭지만 젖을 물리고 롬이랑 교감하는 그 시간이 너무 좋다고 했다. 소윤이, 시윤이 때도 마찬가지였고 젖을 뗀 이후에는 수유의 시간이 그립기도 했다면서. 아빠는 죽었다 깨어나도 헤아리기 어려운 영역이다. 아빠는 물론이고 같은 신분(?)인 엄마들도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수유는 철저하게 엄마의 영역이다. 모든 결정권이 전적으로 엄마에게 있다. 분유를 섞여 먹일 건지 모유만 먹일 건지, 아예 분유만 먹일 건지, 어떤 자세로 먹일 건지, 얼마나 자주 먹일 건지, 언제까지 먹일 건지, 분유는 뭘 먹일 건지, 젖병은 뭘 쓸 건지. 모유든 분유든 이 과정을 피해가는 건 불가능하다.


남들 다 하는 수유 뭐 그렇게 힘들다고 난리냐 싶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남들 다 해도 난 내 아내의 남편이니까 내 아내의 고난이 이 세상의 고난인 것처럼 반응해야 한다. 그런 감정을 굳이 연출하지 않아도 아내를 보고 있으면 딱한 마음이 절로 생겨난다. 수유할 때 우울증이 찾아 오기도 한다는데 그게 왜 그러는지 아주 조금은 알 거 같다. 다른 모든 정체성은 사라지고 오로지 먹이기 위한 존재가 되는 듯한 느낌이랄까.


물론 아내가 이 힘든 과정을 이겨내기 위해 애써 행복을 짜내는 걸지도 모른다. 힘든 걸 있는 그대로 모두 표현하지도 않고, 아내의 마음속에 들어가 본 것도 아니니까 장담하지는 못한다. 그냥 내 느낌에 아내는 정말로 고통과 행복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실제로 가능한 일이다. 힘들다고 꼭 불행한 것도 아니고 편해야만 행복한 건 아니니까.


산후조리는 개나 줘버려야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기꺼이 감사하게, 기쁘게 지나기 위해 노력하는 아내한테도 고맙고. 뭘 아는지 조금이라도 오래 자려는 롬이에게도 고맙다.


그리고 응원하고 격려한다. 아내의 결정과 의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