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아빠

20.04.10(금)

by 어깨아빠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자다가 중간에 살짝 깼을 때도 아내는 없었다.


"여보. 어제 계속 거실에 있었어?"

"어"

"밤새?"

"어. 여기서 졸다가 먹이다가"

"하아. 힘들지?"

"어. 괜찮아"


괜찮을 리가 없었다. 아내의 얼굴이 말해주고 있었다.


안방에 롬이 침대도 있고 나머지 식구도 다 안방에서 같이 잔다. 아내와 나는 원래 프레임이 있는 침대에서 프레임은 처분하고 매트리스만 바닥에 놓고 잔다. 출산을 한 아내에게는 몸을 눕혔다 일으키는 게 힘이 아주 많이 드는 동작인데다가 바닥에 누워 있다가 하려니 더 힘들다고 했다. 아직 온전치 않은 몸으로 바닥에서 일어나서 아기 침대에 누워 있는 롬이를 꺼내 안고 다시 바닥(이나 다름없는 매트리스)에 앉아 수유를 하고 다시 일어나 눕히는 과정이 꽤나 고된 거다. 아무리 고되더라도 최소한 서너 시간의 수면이 보장된다면야 해볼 만하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런 이유에서 아내는 소파에서 밤을 지새웠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아침을 차리고 먹이는 동안 아내와 롬이는 안방에 들어갔다. 수유를 하고 좀 눕겠다고 했는데 꽤 오랫동안 나오지도 않았고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렇게라도 부족한 잠을 채워야 했다. 그래봐야 두 시간 정도였지만.


"소윤아, 시윤아. 오늘은 신림동 할머니 집에 갈 거야"

"아빠도 같이여?"

"아빠는 데려다주고 집에 와야지. 아빠가 월요일에 다시 데리러 갈게"


"아빠아. 나늠 아빠도 가티 가늠 게 도아여엉"

"아빠는 집에서 엄마랑 롬이 보살펴 줘야 돼서. 월요일에 퇴근하면서 소윤이랑 시윤이 데리러 갈게"

"아빠도 가티 가다여엉"


코로나 때문에 조리원을 취소한 대신 조리원에 있어야 했을 기간만큼 애들을 부모님께 맡기기로 했다. 조리원에 가는 가장 큰 이유인 밤중 수유 건너뛰기가 안 되는 이상 아무리 집에서 날고 기어 봐야 조리원만큼은 못할 거다. 아내는 밤에도 모유를 먹이겠다고 했고. 낮에라도 좀 덜 피곤하라고 소윤이와 시윤이를 잠시 보내는 거였다. 같이 지내면 당연히 힘이 되지만 그만큼 손이 가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내가 집에 오니 마음은 편하다고 했다. 조리원에 안 가길 잘했다고 말할 정도로 마음의 안정에는 조리원보다는 집이 나았다. 이건 소윤이 때도, 시윤이 때도 그랬다. 조리원에 더 있고 싶어서 막 아쉬워하고 그러는 게 전혀 없었다 (조리원에서 퇴원하고 처음 며칠, 자는 게 자는 게 아닌 밤을 겪을 때는 조리원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몸을 주고 마음을 얻은 산후조리랄까.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내와 롬이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신림동에 가기 전에 수원에 들러야 했다. 꽤 먼 거리였다. 점심 먹고 출발하면 너무 늦을 것 같기도 했고 애들도 배가 별로 안 고프다고 해서 일단 출발했다. 아내의 점심과 저녁은 최대한 차려놓고 나왔다. 찬바람 맞으면 안 되는 아내가 냉장고 문을 여는 일이 없도록 신경 쓰긴 했는데 실상은 어떨지 모르겠다. 내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집안 곳곳 스민 아내의 손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건 불가능하다. 반드시 티가 난다.


출발한지 얼마 안 돼서 시윤이는 버티지 못하고 잠들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쯤 잠에서 깼다. 차에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좀 있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불평 한마디 없이 잘 기다렸다. 둘이 뽀짝 뽀짝 대며 놀았다. 점심 대신 뭐라도 먹어야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주변에 뭐가 없었다.


"소윤아, 시윤아. 배고프지?"

"조금 고파여"

"아빠아 더는 갠다나여엉"


오랜 기다림을 견딘 애들한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점심을 굶긴 것도 미안했다.


"소윤아, 시윤아. 여기 근처 편의점에 가서 뭐 맛있는 거라도 먹자. 먹고 싶은 거 있어?"

"빼빼로여"

"그래. 빼빼로도 먹자"


근처에 편의점이 있기는 했는데 공장 지대라 그런가 애들 데리고 가서 먹을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조금 이동하더라도 주택가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가고 있는데 소윤이가 잠들었다. 그것도 너무 깊고 곤히.


"아빠아. 펴니덤 왜 안 가여엉?"

"아, 시윤아. 누나가 잠들어서 그냥 신림동 할머니 집 근처에 가서 편의점 가려고"

"그대여엉. 띵딩동 할머니 딥에 가서 가다여엉"


애들이 너무 고생이었다. 차도 오래 타고, 기다리는 것도 길었고, 밥도 못 먹고. 많이 미안했다. 소윤이는 도착 20분 전쯤 잠에서 깼다.


"아빠. 편의점은여?"

"아, 소윤이가 자고 있어서 그냥 신림동 할머니 집 근처에서 가려고 안 깨웠어"

"아빠. 잘했어여"


이번에는 둘 다 오줌이 마렵다고 했다.


"소윤아, 시윤아. 이제 거의 다 왔어. 한 5분만 더 가면 돼. 조금만 참아. 알았지? 시윤이 바지에 싸지 말고 조금만 참아?"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부터 갔다. 쏴아아아아아. 얼마나 오래 참았는지는 소리로 대신했다. 소윤이에 이어 시윤이도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바지와 내복, 속옷을 벗기는데 팬티가 축축했다.


"시윤아. 쉬 했어? 바지에?"

"아니여엉"

"뭘 아니야. 팬티 젖었네"

"해떠여엉"


시윤이 잘못은 아니었다. 참으라고 한 내 잘못이었다. 옷이야 더 있었다. 시윤이까지 오줌을 싸고 나서 다시 집에서 나왔다. 근처 편의점에 가서 빼빼로 두 개와 초코 우유 두 개를 샀다. 저녁 먹을 시간이 거의 다 됐고 (내) 엄마와 아빠는 아직 퇴근 전이라 먼저 밥을 먹기가 좀 그랬다. 점심 굶기고 빼빼로와 초코 우유라니. 심각하게 미안했다. 오늘따라 말은 또 왜 그렇게 잘 듣고 떼는 하나도 안 쓰는지. 뜬금없이 와서 안기고 뽀뽀하고.


"소윤아, 시윤아. 아빠가 좀 미안하네"

"왜여?"

"점심도 안 먹이고 차에서도 오래 기다리게 해서"

"괜찮아여"

"배 많이 고프지?"

"조금 고파여. 할머니는 언제 오신대여?"

"이제 금방 오실 거야. 조금만 기다리자"


애들은 점심을 걸렀지만 난 아침, 점심 모두 걸렀다. 그냥 뭔가 정신이 없었다. 밥 챙겨 먹을 겨를은 충분히 있었지만 의욕이 없었다. 저녁이 되니 나도 배가 고팠다. (내) 엄마와 아빠가 퇴근해서 오셨고 풍성한 반찬이 준비된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등장과 함께 소윤이와 시윤이는 확 풀어졌다. 말을 안 들었다는 거다. 밥 먹을 때 돌아다니고 딴짓하고 뺀질 대고. 떠나는 마당에 부질없을지도 모르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를 붙잡고 다시 한번 얘기했다. 내용은 늘 비슷하다. 할머니, 할아버지 말 잘 듣고 서로 싸우지 말고 할머니, 할아버지랑 있다고 마음대로 하지 말고.


소윤이와 시윤이를 (내) 엄마, 아빠에게 맡기고 오는데 내내 미안했다. 오늘 점심 굶긴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내) 집에 와서도 계속 생각이 났다. 평소에도 건너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오늘은 왜 그렇게 계속 마음에 밟히는지 모르겠다.


집에 오니 아내와 롬이는 역시나 수유와 수면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먹고 또 먹고 또 먹고 또 먹고. 먹고 또 먹었으면 자고 또 자야 하는데 역시나 불공정 조약이다. 아내를 위해 집에 들어오는 길에 토피넛 라떼를 샀다. 수유부에게 적당한 음료는 아니었지만 그렇게라도 아내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풀어주고 싶었다(사전에 아내의 동의를 얻기도 했고).


그래도 지금이 낫다. 월요일부터 출근을 하게 되면 또 다른 차원으로 진입할 거다. 소윤이, 시윤이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고작 3kg 밖에 안 되는 녀석 하나가 모든 걸 지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