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마사지

20.04.13(월)

by 어깨아빠

아무리 길어도 2-3시간에 한 번씩은 깨며 밤을 보내는 아내에게 과연 '기상'이라는 의미가 존재할까 싶다. 어쨌든 아내는 내가 출근하는 시간에도 깨서 수유를 하고 있었다. 열흘 만에 혼자 처음으로 밥을 챙겨 먹어야 하는 아내를 위해 아침도 미리 다 차려놨다(할 수 있다면 최대한 찬 바람을 피해야 하고 냉장고도 예외는 아니니까). 점심부터는 도우미 이모님이 계실 테고.


아침에 아내는 잠깐 자면서 악몽을 꿨다고 했다. 누가 정보를 알아냈는지 산후 도우미인 척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애를 6명이나 데리고 왔고, 순식간에 집은 난장판이 되고 아내는 한두 명도 아니고 여섯 명이나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하냐며 따지고. 꿈속의 사기꾼은 가능하다고, 괜찮다고 하면서 바꾸지 말아 달라고 그러고. 나중에 진짜 산후 도우미 분이 오셨는데 문도 못 열게 하고. 울고불고 난리였다면서. (꿈입니다 꿈)


아마도 새로 오실 산후 도우미 분이 어떤 분이실지 아내 나름대로 걱정과 부담, 스트레스가 있었던 모양이다. 전혀 모르는 분이기도 하고 하루 종일 같이 지내야 하니 여러 면에서 좋은 분이 오시길 기대하는 마음 뒤편에는 걱정이 있었나 보다. 다행히 '좋은 분이신 것 같아'라는 아내의 답이 왔다.


아내는 오늘 가슴 마사지를 받으러 다녀왔다. 도우미 이모님과 서윤이와 함께. 소윤이 때도 가슴 마사지를 받았었는데 아내는 매우 만족했다. 그때는 가슴이 뭉치기도 많이 뭉쳐서 그것도 잘 풀어줬고, 무엇보다 정서적 만족이 컸다. 난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 모르지만 아내가 해주는 얘기로 짐작해 보면 뭔가 위로받고 오는 듯했다. 서윤이는 워낙 잘 빨아서 가슴이 뭉치거나 그런 건 없었지만 가슴 마사지를 받으면서 마음 마사지도 받고 오길 바랐다.


역시 아내는 만족했다.


[여보 마사지 받고 집에 가는 길! 역시 받길 잘 했어ㅠㅠ]


퇴근하고 자세히 들어보니 제대로 된 수유 방법을 배우기도 했고(몰랐던 사실이 아니지만 전문가에게 확신을 받으면 새로운 느낌이니까) 무엇보다 마음 마사지를 제대로 받고 왔다. 병원에서 야매 '오케하니 마사지' 만 받다가 드디어 제대로 된, 꼭 맞는 전문가의 손길을 받은 거다.


어쩌다 보니 회사 직원 몇 명하고 저녁을 먹게 됐다. 막연하게 '아내는 도우미 이모님이 계시니까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도우미 이모님은 6시에 퇴근이시고 아내는 나랑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나중에 아내랑 통화하다가 깨달았다.


"여보. 저녁은 먹었어?"

"아니. 안 먹었지"

"왜?"

"여보랑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지"

"아, 도우미 이모님이 안 차려주시고 가신 건가"

"그렇지"


다행히(?) 형님(아내 오빠)네 부부가 와서 함께 저녁을 먹는다고 했다. 나도 딱 저녁만 먹고 온 거라 많이 늦지는 않았다. 형님네랑 같이 밥을 먹는다던 아내는 내가 집에 가니 혼자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형님네 부부도 함께 있긴 했다.)


"여보는 왜 이제 먹어?"

"아, 서윤이 먹이느라"


수유인의 삶이란.


오늘도 서윤이는 잘 먹고 잘 자는 삶을 살았다고 했다. 내가 퇴근했을 때도 자고 있었는데 형님네를 데려다주고 돌아왔을 때도 자고 있었다. 도우미 이모님께서는 원래 2주까지는 그런 거라며 2주가 지나 봐야 안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그런 것도 같다. 소윤이, 시윤이 모두 2주 정도까지는 조리원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고 집에 오고 나서부터 지옥ㅁ...아니 기쁘고 히이이이이이이이임든 천국의 문이 열렸으니까. 다시 떠올려 보는 육아인의 진리. 내일 잠은 내일 걱정하고 오늘의 잠을 즐겨라.


형님네를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따뜻한 토피넛 라떼를 한 잔 샀다. 이디야의 토피넛 라떼에는 커피가 들어가지 않고 아내는 평소에도 토피넛 라떼를 종종 마신다. 지금은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는 대체재고. 아내가 불쌍해서 그런가 뭘 막 먹이고 싶은데 먹을 수 있는 건 별로 없고. 아쉬울 따름이다. 아내 입장에서는 이때가 뜯어먹기 딱 좋을 때 일 텐데.


서윤이는 실컷 자고 깨자마자 다시 젖을 먹었다. 서윤이의 삶이 이렇다. 다 먹이고 눕혀놨는데 바둥거리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서윤이를 안고 서 있었는데 스르륵 눈을 감더니 잠들었다. 서윤이는 나와 아내가 자려고 누울 때까지 깨지 않았다.


고작 10일이지만 효녀일세.


(소윤이와 시윤이는 전혀 기별이 없었다. 할머니 집에서 너무 잘 지내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