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 만난 자의 이웃

20.04.27(월)

by 어깨아빠

시윤이 생일이다. 미역국도 못 끓였다. 시윤이는 아직 생일과 미역국의 상관관계를 모를 테지만 괜히 미안했다. 마음에 걸렸다. 소윤이, 시윤이 키우면서 아내가 됐든 내가 됐든 미역국을 안 끓여준 적이 있었나 싶다. 아마 없었던 거 같은데.


지난밤을 아내가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했는데 내가 일어났을 때는 자고 있었다. 거실에 나가 출근 준비를 하고 소파를 앞에 두고 무릎을 꿇었다. 기도를 했다. 요즘은 매일 기도를 하지만 보통 소파에 앉아서 한다. 무릎을 꿇었다고 내 기도가 더 잘 들리는 것도 아니고 소파에 앉아서 기도한다고 건방진 것도 아니다. 다만 간절하니 겸손한 자세를 찾게 된다.


시간이 되어서 출근을 하려는데 아내가 카톡을 보냈다.


[나 수유중]


벽에 기대고 매트리스에 앉아 수유를 하는 아내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말하지 않아도 지난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 것 같았다.


"여보. 가려운 건 좀 어때?"

"지금은 그래도 조금 나아. 새벽에는 발이 너무 간지러워서 힘들었어"

"약 발랐어?"

"어. 너무 걱정하지 말고 갔다 와"

"그래. 알았어"


어제 엄청 심할 때보다는 좀 낫다고 해도 그 상태로 애 셋과 어떻게 하루를 보낼까 싶었다. 아침부터 마음 가득 걱정이 찼다. 일하면서 틈날 때마다 아니 틈을 만들어서 수시로 연락을 했다. 아내는 애들을 볼 때마다 자꾸 눈물이 난다고 했다. 면역력이 떨어진 것만큼이나 마음도 연두부처럼 흐물흐물했다. 어떻게 울고 있을지 눈에 선했다.


그래도 다행히 어제처럼 심하지는 않다고 했다. 사실 아내가 전해주는 심하고 안 심하고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안 간다. 걱정은 막고 안심을 주기 위한 선한 거짓말일지도 모르고.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의 상황을 알고 있던, 함께 처치홈스쿨을 하는 선생님이 아내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애들도 데리고 있겠다고 했다는 거였다. 그 집도 6살 딸, 4살 아들, 2살 아들 이렇게 애가 셋이다. 물론 애가 하나인 집에서는 감히 그런 손길을 베풀기가 오히려 어려웠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그래도 애 다섯을 혼자서 본다는 건 당연히 만만치 않은 일이다. 맡기는 우리 입장에서는 한없이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무작정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아내의 상황을 생각하면.


아내는 병원에 내리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 집으로 갔다. 애들은 서로 친해서 오히려 좋아했을 거다(소윤이와 시윤이가 얼마나 자랐는지 모르겠다. 친구와 논다고 마냥 좋기만 한 나이를 지나 '우리 집이 아닌 남의 집'에 가면 처신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걸 알만한 나이가 되었는지 어쨌는지).


아내가 간 곳은 피부과 전문의가 계시는 곳이었다. 예전에 소윤이 때문에 한 번 갔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아내의 연락을 기다렸다. 마침내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여보 선생님은 보시더니 두드러기일 거라고 하시네. 사진 보여드렸거든]

[두드러기라면 음식?]

[응 뭔가가 갑자기 알러지를 일으켰을 거라고. 지금은 이미 하루 지났고 뭐 때문이지 알기 힘들거라셨음]

[치료는 어떻게 한대? 금방 나아진대?]

[소양증은 아니냐고 여쭤보니까 아니라고 하심. 그건 그냥 막 가려운 거라고]


차라리 두드러기면 다행이었다. 역시 괜히 의사 선생님이 아니다. 어쭙잖은 검색과 지식으로 괜히 소양증을 들먹이다니. 아무튼 아내는 그쯤 간지러운 곳도 거의 없다고 했다. 통화하며 목소리를 들었을 때도 한층 힘이 있었고. 그 뒤로도 수시로 아내의 상황을 물었는데 비슷했다. 정말 감사하고 다행이었다.


고작 두드러기, 고작 소양증인데 무슨 호들갑이냐 싶을지도 모르지만 어제 괴로워하며 우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나니 그러지 않기가 힘들었다. 신앙의 은혜와 정신력으로 버티던 아내가 금방이라도 잡고 있던 끈을 놓쳐버릴까 봐 노심초사였다. 가영이는 괜찮을 거라고 자신했던 스스로가 한심하기도 했고. 아무튼 소윤이 때 유선염 이후로 가장 크고 거센 파고를 넘긴 느낌이었다.


퇴근하는 길에 애들 데리러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저녁을 먹고 있었다. 아빠를 부르며 달려오는 애들을 진짜 뼈가 으스러지도록 안아주고 싶었는데 이 망할 놈의 코로나 때문에 화장실로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잘 지낸 듯했다. 집에 가자고 해도 조금만 더 놀겠다며 버틸 정도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말미를 좀 주느라고 바로 오지 못했다. 누구보다 가장 보고 싶었던 아내의 얼굴이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병세(?)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여보. 아직도 괜찮아?"

"응. 아주 조금씩 간지러운데가 있기는 한데. 그래도 거의 괜찮아"

"진짜 다행이다"


아내와 나는 늦은 저녁을 먹었다. 가스레인지 위에는 도우미 이모님이 끓여 놓으신 미역국이 있었다.


"시윤이 아침에 미역국 먹었나?"

"아니. 못 먹었지"


시윤이한테도 괜히 미안했다. 생일이 이렇게 지나가다니. 저녁을 먹고 나서 505호 사모님이 사다 주셨다는 빵에 초를 꽂았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다시 한번 시윤이의 생일을 축하했다. 그렇게도 자기 생일이 언제냐며, 생일에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 거냐며 물었는데. 허무하게 지나갔네.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 이미 엄청 늦은 시간이었다. 소윤이는 너무 졸려서 금방 잠들 거 같다고 스스로 얘기했다. 시윤이는 거기서 늦은 낮잠을 잔 터라 쉽게 잠들지 않을 거 같았고. 자리에 누워 생일을 맞은 시윤이를 위해, 생일에 (너무 귀한 대접을 받았지만) 남의 집에서 하루 종일 보낸 시윤이를 위해 특별히 더 간절하게 축복의 기도를 했다(난 열을 올리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하품하고 난리).


"아빠. 손 잡자여"

"그래"

"아빠. 저는 아빠 손이 너무 따뜻해서 좋아여"


내 기억에 소윤이가 원래 이러지 않았던 거 같은데. 언제부터 내 손을 이렇게 좋아했지. 요즘 부쩍 잠들 때는 물론이고 자다 말고도 그렇고 길을 걸어갈 때도 내 손을 찾는다. 엄청 좋다. 이제 뭘 좀 아는 거 같은 소윤이가 여전히 나를 좋아하는 게 느껴질 때마다의 그 쾌감이란.


"아빠아. 저두 손 답다여엉"


오늘도 양손을 모두 아이들에게 내줬다. 살짝 잠들었다가 깼다. 시윤이는 여전히 안 자고 있었다.


"시윤아. 아빠 나갈게. 시윤이도 얼른 자고. 이따가 다시 들어와서 시윤이 옆에 누울게?"

"네에"


서윤이는 거실에서 자고 있었다. 계속 자다가 11시 넘어서 잠깐 깼다. 똥 싼 거 닦아주고 수유했더니 다시 또 잠들었다. 아내도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누웠다. (일찍이라는 게 의미가 있나 싶지만)


감사하다. 불안과 걱정을 넘어 요동으로 시작했던 하루가 이토록 평안하게 마무리되다니. 여기 내 노력이나 공로가 별로 없다. 신의 은총, 누군가의 도움, 아내와 아이들의 수고 같은 것들이 빚어낸 선물 같은 거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