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내일 잘 할게

20.04.29(수)

by 어깨아빠

아내는 벽에 기대 서윤이를 안고 수유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유와 수면이 거의 동시에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거실에 나가 출근 준비를 하는데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나가보고 싶은데 애들 깰까 봐 못 나가겠네]

[그냥 자. 괜히 애들 깰라]


서윤이가 깨는 것도 무섭지만 소윤이나 시윤이가 깨서 귀한 단잠을 방해하는 것도 무섭다. 나도 아침마다 자고 있는 삼남매와 아내의 얼굴을 보고 나가고 싶을 때가 많지만 괜히 문 한 번 잘못 열었다가 누구라도 깨울까 봐 꾹 참는다.


어제였나 그저께였나 수요 축구가 이번 주부터 재개된다는 공지가 떴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운동장 대관이 아예 막혀 있었는데 그게 풀렸다면서. 일단 참석 여부는 '불참'으로 표시했다. 아내에게는 혹시 모르니 미리 얘기를 띄워놨다. 애 셋을 둔 아빠이자 완전 모유 수유를 하는 아내를 둔 남편으로써 평일 밤에 처자식을 뒤로하고 축구장에 가는 것이 과연 도리에 맞는 건가라는 내면의 고민이 깊어졌다.


깊은 고민을 무색하게 하는 또 다른 소식이 들려왔다. 회식. 어제 소식을 접했고 오늘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저번에 회식할 때 보니까 생각보다 일찍 끝나던데? 회식 끝나고 서둘러서 가면 한 경기라도 찰 수 있지 않을까?'


출근 준비하면서 축구 가방도 챙겨서 나왔다.


근무하며 파악한 분위기상 회식이 없을 가능성도 많았고 하더라도 참석 인원이 많을 거 같지 않았다. 그래, 결심했어.


"대표님 가보겠습니다. 이사님 고생하셨습니다"


퇴근 요정이 되어 사무실에서 나왔다. 앞으로 6일을 쉬어서 그런 건지 축구를 할 수 있게 되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엄청 홀가분했다.


집에는 형님(아내 오빠)네 부부가 왔다고 했다. 아내에게 소식을 전했다. 회식 취소 및 축구 재개 소식을. 회식했으면 집에 일찍 못 왔을 테고 아내도 그에 맞춰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니 축구를 하러 가도 괜찮지 않을까. 이게 나의 계산 논리였다. 물론 아내에게 이따위 천하고 경우 없는 주장을 설파하지는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밥을 먹고 있었다. 아내는 꾹꾹 참고 있었다. 세월아 네월아 느릿느릿 먹는 시윤이와 소윤이의 행태를. 하루에 세 번, 그 '꼴'을 보고 있노라면 그 어떤 평화주의자가 와도 안에서 뭐가 훅훅 올라오는 걸 느낄 거다.


겨우 저녁 식사를 마친 소윤이와 시윤이는 삼촌과 외숙모와의 이별을 조금이라도 늦추려고 안간힘을 썼다. 마지막 종이접기를 끝으로 삼촌과 숙모는 떠나갔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자러 들어가야 했다. 시윤이는 계속 놀다 자겠다며 시동을 걸더니 결국 자기도 어쩌지 못하는 통제불능의 상태로 진입했다. 낮잠을 안 잔 날은 꼭 이런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방에 누웠고 아내는 그 사이에 앉아서 서윤이에게 젖을 물렸다.


"여보. 미안해"

"아니야. 잘 갔다 와"


"소윤아, 시윤아. 너희 바로 자야 돼. 알았지?"

"네"


'여보. 너무 오랫동안 굶주렸어. 용서해 줘'


축구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아내는 혼자 거실에 있었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금방 잤는데 서윤이가 한참을 안 자서 토닥였다고 했다.


"여보. 그래도 내일부터 쭉 쉬잖아"


다행이다. 내일 사죄의 육아를 할 기회가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