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다가 짧았다가

20.05.11(월)

by 어깨아빠

소윤이랑 잘 때 손잡고 자는 건 참 좋은데 문제는 새벽에 깨서도 내 손을 찾는다는 거다. 손이야 자다가도 잡으면 그만이지만 그럴 때 꼭 잠에서 깨게 된다. 잠이야 다시 자면 되지만 그게 알람 울리기 30분 전이면 얘기가 다르다. 하도 성가시게 하길래 잠결인 척하면서 손을 빼고 다시 내 손을 못 잡게 곰인형을 안고 돌아누웠다.


"으앙. 아빠는 나보다 곰인형이 더 좋은가 봐"


모르는 척하고 계속 잤더니 다시 내 손을 더듬거렸다.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고 이리저리 올렸다 내렸다를 쉬지 않았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다시 잠들어야 하는 나의 긴박함은 알지도 못한 채.


"아, 소윤아. 아빠 좀 귀찮게 하지 마"


버럭 짜증을 냈다. 애든 어른이든 졸린데 못 자면 또 다른 자아가 출몰하는 것이 이치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무려 15분 전에) 방에서 나왔다.


아내도 깨어 있었다. 아내와 카톡을 주고받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모두 깨서 다시 잘 거 같지 않다고 했다. 내가 집에서 나갈 때쯤 아내는 애들을 방에서 내보냈다. 소윤이도 자는 사람을 성가시게 한 책임은 있지만 어쨌든 새벽부터 날벼락 맞은 기분일 테니 나긋하게 안아줬다.


"소윤아, 시윤아. 엄마랑 서윤이 자야 되니까 다시 방에 들어가지 말고 거실에 있어. 알았지?"


부질없는 말이라는 걸 알지만 혹시라도, 한 번쯤은 지키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마지막 권고를 남기고 집에서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나가자마자 소윤이는 다시 방에 들어가겠다고 징징대고 시윤이는 누나한테 들어가지 말고 자기랑 놀자고 징징대고. 아내는 둘 다 내보냈다고 했다. 새벽부터 난리다 난리야.


낮에 아내한테 뭐 좀 물어보려고 전화했는데 소윤이가 받았다.


"아빠. 엄마는 지금 방에서 서윤이 수유하고 자고 있어여"

"아, 그래? 소윤이랑 시윤이는 뭐해?"

"시윤이는 거실에서 손 빨고 누워 있다가 잠들어서 이모님이 방에다 눕혀주셨어여"

"아, 그랬구나. 그럼 소윤이는 뭐해?"

"이모님이랑 같이 놀고 있어여"

"아, 알았어. 이모님 말씀 잘 듣고 공손하게 얘기하고"

"알았어여. 아빠. 근데 왜 전화했어여?"

"아, 엄마한테 뭐 물어보려고.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아빠. 뭔데여? 제가 엄마 깨면 전해줄게여"

"그럴래? 그러면 엄마한테 자동차 등록증 찾았는지 여쭤봐. 그럼 아실 거야"

"알았어여"


뭐지. 어른이랑 통화한 거 같은 이 느낌은.


아내는 퇴근길에 어느 김밥 집에 들러서 유부초밥을 사 오라고 했다. 맞다. 저번에 아내가 유부초밥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까맣게 잊었네. 막상 먹을 때는 아내는 자기는 얼마 먹지도 않고 나랑 애들한테 나눠주기 바빴다. 더 먹으라고 채근해도


"아니야. 나 많이 먹었어. 배불러"


라며 한사코 나눠준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상을 차리시고는


"나는 지금 생각 없어. 나중에 먹을 게. 먼저 먹어"


라고 말씀하시는 장모님을 오마주 하는 건가.


손가락 빨다가 2시간이나 낮잠을 잔 시윤이는 당연히 제시간(공식적인 밤잠 시작 시간)에 잠들지 못했다. 그래도 시윤이는


"아빠 나갈 테니까 시윤이도 얼른 자. 알았지?"


라고 인사를 건네고 나와도 크게 문제가 없다. 항상 순순히 그러겠다고 한다. 아마 혼자 누워서 신나게 손가락을 빨고 있을 거다. 오늘은 한참 있다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졸린 기색은 전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생기 넘치는 표정이었다. 나왔으니 명분이 필요한 시윤이는 가장 만만한 사유를 댔다.


"쉬 마려워여엉"


다시 들어갈 때도 군말 없이.


먹어도 자지 않고 우는 서윤이까지 안아주고 달래주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번개같이 흘러 어느덧 잘 시간이 된다. 그때라도 뭘 좀 하려고 노트북 앞에 앉으면 졸음이 쏟아지고.


하루가 참 길긴 긴데 또 참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