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사정

20.05.12(수)

by 어깨아빠

알람 소리에 눈을 떴을 때 아내는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자세만 앉았을 뿐 눈은 감고 있었고 자는 거나 다름없었다. 아내의 품에는 서윤이가 안겨서 열심히 젖을 빨고 있었고. 아내의 하루의 시작은 어디며 또 끝은 어디일까. 알람 소리에 몸을 일으키는 게 아무리 고단하고 힘들어도 어쨌든 시작과 끝이라도 있으니, 아내에 비하면 훨씬 나은 삶이다.


아내는 오늘도 애들을 데리고 나갔다. 아내도 출산한지 이제 겨우 40일 된 산모다. 예전에는 몸 푸는 걸 최소한 100일로 잡았던 걸 생각하면 아직 절반도 안 된 거다. 굳이 그렇게 번거롭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아내의 하루를 들여다보기만 해도 깨닫게 된다.


'아내의 몸이 성할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왜 그렇게도 열심히 나가는가. 간단하다. 다음 주가 되면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가니까 그런 거다. 물론 떠나신 이모님의 자리를 장모님이 대신 채워 주시면 가능할지 몰라도. 현재로서는 아내에게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그렇다고 아내가 자기 살자고 나가는 것도 아니다. 물론 나가서 바람 쐬면 좋기야 하겠지만 어찌 됐건 두 아이의 보호자 신분으로 나가는 건 마냥 즐겁지 않을 때도 많다. 집에서는 3호를, 밖에서는 1호와 2호를.


"여보. 우리 오늘 저녁에 짜파게티 끓여 먹을까?"

"그럴까? 좋아"


도우미 이모님이 계실 때는 항상 밥을 차려 주시니 '더 이상 밥 차리기 싫다'라는 뜻은 아니었을 거다. 외식은 하고 싶지만 여의치 않으니 '내식'이라도 좀 색다르게 먹고 싶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마침 자연드림에서 사 놓은 짜장라면도 있었다. 아내는 간단히 만들어서 먹자고 했지만 그래도 기왕 먹는 거 제대로 해주고 싶었다. 소윤이도 한마디 거들었다.


"아빠. 대충 말고 맛있게 만들어 주세여"


크게 다른 건 없다. 양파랑 고기 넣고 한참 볶으면 끝이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너무 맛있다면서 신나게 젓가락질을 했다. 내가 해준 음식을 무아지경에 빠져 먹는 걸 보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아내도 맛있게 먹었다. 다만 한 팔로 서윤이를 안고 있어서 굉장히 불편해 보였다.


"여보. 천천히 먹어. 나 편해"


거짓말쟁이. 아내는 자기 때문에 내가 서둘러 먹을까 봐 저런 거짓말을 했다. 라면을 먹어도 면을 둘둘 말아 숟가락에 고이 올리고 김치까지 한 점 올려서 먹는 게 아내다. 그런 사람이 서윤이 때문에 한 팔은 아예 못쓰는데 편하다니. 그나마 내가 느릿느릿 여유를 부려가며 먹는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다.


"소윤아, 시윤아. 얼른 먹어. 아빠 오늘 축구 가셔야 돼"

"여보. 나 축구 안 가도 돼"

"여보. 안 간다고 해야지"

"아, 맞다. 안 갈게"


지난주 브런치에 남긴 일기에 댓글을 남긴 신원 미상의 여러 아내 지지자들의 지적을 떠올리며, 아내와 농담을 주고받았다. 농이긴 했지만 언제든 축구를 때려치우고 집에 머물 각오도 했고. 아내는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가서 재밌게 차다 오라고 나를 떠밀었다. 부부는 이런 거다. 동업하는 사람이랑 이익 지분 나누듯이 이쪽은 내꺼, 저쪽은 니꺼 이렇게 나눈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워낙 오랜 세월 동안 남성들의 몰상식한 언행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긴 하겠지만. 그래도 부부는 집안일을 나누고 할 일을 나눌 게 아니라 마음을 나눠야 한다. 일은 나눌 게 아니라 가져오는 거고. 애 셋의 아버지이자 애가 셋인 엄마의 남편이 평일 저녁에 축구를 하러 나갔다 와도 아내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는 신비가 여기 있다. 누군가는 나가는 남편의 등 뒤에 쌍욕을 퍼붓는다는데, '저렇게라도 스트레스 풀어야지' 하며 나가는 남편의 등 뒤를 애처롭게 여겨주는 아내가 되는 신비도 여기 있고. (화장실에서 자꾸 날파리가 출몰한다는 아내와 아이들의 제보에 '화장실 청소'의 압박을 느끼는 탓에 일기를 핑계로 피해보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런데 사실 이게 모두에게 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내 아내는 이 세상에 딱 한 명이니까. 그리고 내 아내는 이미 나랑 결혼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