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과 홍삼과 소고기

20.05.14(목)

by 어깨아빠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한의원에 갔다. 서윤이는 도우미 이모님과 함께 집에 남고 소윤이와 시윤이만 동행이었다. 장모님도 한의원으로 오셨다고 했다. 시윤이 낳았을 때도 같은 한의원에서 산모에게 필요한 약을 지어서 먹었는데 내 기억이 맞는다면 다 안 먹고 남았던 거 같다. 아내가 그만큼 젊어서 몸이 거뜬했거나 아니면 힘들었지만 너무 정신이 없어서 차마 챙겨 먹을 정신이 없었거나. 지금은 다르다. 아내는 원래 약 같은 거 챙겨 먹는 유형은 아닌데 이번에는 먼저 한약 얘기를 꺼냈다. 나도 적극 권장했고. 약이 당긴다는 건 그만큼 몸이 노쇠했다는 거겠지. 아내 나이에 셋째면 평균보다 꽤 빠른 거긴 하지만.


나도 마찬가지다. 매일 아침 알람 소리에 눈을 뜨면 화장실도 가기 전에 냉장고 문부터 연다. 홍삼즙을 한 포 꺼내서 쭈욱 들이킨다.


'홍삼즙아 내 피를 타고 전신에 퍼져 나가거라'


실제 효능은 모르겠다. 다만 그거라도 먹어야 덜 피곤할 거 같다.


장모님까지 대동한 든든한 외출이었지만 아내의 외출은 언제나 시한부다. 보통 2시간 내외, 길어야 3시간 공백 후에는 주린 배를 채워줘야 하기 때문에 아내도 그 시간에 맞춰 돌아가야만 한다. 그래도 아내는 짧다면 짧은 그 시간을 쪼개서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다. 장도 보고 커피도 한잔하고.


서윤이는 도우미 이모님과 계실 때 크게 토를 한 번 했다고 했다. 이모님은 깜짝 놀라셨다. 이모님이랑 함께 있을 때는 토한 적이 없나 보다. 밤에는 꽤 자주 토한다. 심할 때는 입은 물론이고 코로도 넘어온다. 난 여러 번 봐도 볼 때마다 걱정스러워서


"여보. 이렇게 토해도 괜찮은 거야?"


라고 묻지만 아내는 침착하게 대답한다.


"어. 괜찮을걸"


그래도 토할 때마다 긴장은 한다. 혹시라도 기도가 막히지는 않을까. 소윤이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소윤이 때는 30분이고 1시간이고 트림을 기다리며 등을 두드렸고 그렇게 눕히고 나서도 아주 작은 소리만 나도 벌떡. 소리가 안 나면 안 나는 대로 불안해서 코에 손 갖다 대보고. 소윤아. 널 이렇게 키웠다.


집에 오니 아내와 아이들은 저녁을 먹고 난 뒤였다. 장모님이 사 주신 소고기를 구워 먹었고 내 몫도 남아 있었다. 배불리 먹고도 남을 만큼의 양을 구워서 혼자 앉아서 먹었다. 거실에서 노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모습, 소파에 앉아 서윤이랑 씨름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소고기를 먹을 때도 부디 내 몸 곳곳에 퍼져서 나의 피로 해갈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졌다.


문득 사는 게 참 치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을 데리고 방에 들어가서 잘 때 항상 기도를 하는데 그때 주로 시작하는 첫마디가 이렇다.


"하나님.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아빠는 회사에서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 그리고 엄마는 집에서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며 살았습니다"


그래도 나는 (우리 집은) 밤에 잠깐이나마 애들이랑 보낼 시간이 있기에 다행이고 감사하다. 이것도 힘든 집에 참 많을 텐데. 그런 건 진짜 행복이 아니라고, 나중에 후회한다고 지적하기에는 다들 너무 열심히 산다. 그렇게 살고 싶어서 그렇게 사나. 살아보겠다고 소고기 먹으며 서류상으로 내게 달려 있는 부양가족들을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울한 감정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엄청 즐거운 감정도 아니었고. 뭐라고 해야 되지. 가끔 철교 위를 지나는 지하철을 바라보는 심정이랑 비슷하다고 하면 맞으려나.


지난 토요일에 출근을 해서 그런가 이번 주는 특히, 애들 재우고 나와서 뭘 하지를 못하겠다. 너무 졸리고 피곤하다. 일기를 쓰다가도


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가 끝도 없이 찍힐 때가 많다. 홍삼과 소고기가 다 무용지물인가.


하아. 서윤이가 상팔자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