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5(금)
시윤이는 새벽같이 일어났다. 차마 무시하고 나의 아침 루틴을 진행하기 힘들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미소를 머금고 거실로 나왔다.
"아빠아. 왜께 일찍 일어남 거에여엉?"
"아빠는 회사 가야 되니까. 시윤이는 왜 일찍 일어났어?"
"그냥여엉. 잠이 깨떠여엉"
잠시 후 방에서 서윤이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아내는 서윤이를 안고 나왔다. 그 얼굴에 피곤이 가득했다. 푹 자고 일어나도 7시부터 하루를 시작하려면 힘들 텐데 중간에 깨서 수유도 하고 수유하고 바로 자지 않으면 달래줘야 하고, 거기에 토하거나 똥이라도 싸면 그거 다 치워줘야 하고. 그런 밤을 보내면 안 피곤하려야 안 피곤할 수가 없다.
소윤이는 내가 나가고 15분 정도 있다가 깼다고 했다. 아빠 안 볼 거면 아예 더 푹 자던가, 아니면 차라리 조금 더 일찍 깨서 얼굴을 보던가 하지. 물론 그게 소윤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겠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는 주말을 잔뜩 벼르고 있었다. 지난주 토요일에 아빠와 오랜 시간 함께하지 못한 걸 기억하며 이번 주 토요일에는 "많이 놀자여"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래. 우리 엄청 많이 놀자"
라고 장단을 맞추긴 하지만 난 알고 있다. 얼마나 고되고 힘들지. 또 내내 다정하거나 살갑지 못할 거라는 것도. 거기에 이번 토요일에는 텃밭에 가기로 했다. 처치홈스쿨에서 텃밭 활동을 하는데 그동안은 못 갔다. 아내와 서윤이를 돌봐야 한다는 핑계로 미루고 미뤘는데 이제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주말이 좋긴 좋은데 약간 두려운 그런 상황이다.
퇴근했을 때 소윤이와 시윤이는 찰흙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시윤이가 먼저 나왔을 때 시윤이는 나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아빠아. 금데 짜륵은 언제 하는 거에여엉?"
응, 엄마가 마음이 조금 넓어졌을 때라고 말하는 게 정답이었지만
"찰흙? 글쎄 아무 때나 해도 되긴 하지. 이따가 엄마한테 한 번 여쭤봐"
라고 말해줬다. 오늘 아내의 마음이 조금 넓었나 보다. 소윤이는 나한테 얘기했다.
"아빠. 아빠도 여기 앉아서 뭐 만들자여"
"뭘 만들어?"
"그냥. 아빠가 만들고 싶은 거여"
"아니야. 아빠는 그냥 소윤이랑 시윤이가 만드는 거 볼게"
"왜여. 와서 같이 하자여"
애들이 나한테 달려 들어서 치대는 거야 뭐 어떻게든 받아줘야 하니 오히려 괜찮은데, 나한테 뭔가 능동적으로 만들라거나 움직이라거나 하는 건 응해주기 힘들었다. 소파에 누워 있는 서윤이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싶어 눈치를 봤다. 오히려 서윤이가 울면 안아주는 게 좀 덜 미안하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저녁만 먹고 또 바로 교회에 가야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씻기고 재울 준비를 하는 아내의 말투에 여유와 틈은 없었다. 훈련소의 조교처럼 단호하고 냉정했다. 부디 순탄한 밤이 되길 바라며 교회에 갔다. 얼른 코로나가 진정이 돼야 내가 소윤이랑 시윤이라도 데리고 갈 텐데. 진정은커녕 이러다 평생 마스크를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망상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게 느껴져서 슬프다.
아내에게 10시 30분쯤 카톡이 왔다.
[서윤이는 8시부터 두 시간을 꼬박 내 품에 붙어 있다가 10에 잠들었음. 방에 눕혀 놓고 잠시 쉬는 중이에용]
두 시간을 꼬박 안고 있었다는 건 일단 엄청 힘들었다는 걸 말해준다. 지금 서윤이가 몇 킬로그램이나 나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최소 4kg은 될 텐데 그 무게를 같은 자세로, 그것도 조금 울면 달래주고 쳐다보면서 2시간을 안고 있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힘든 건 힘든 건데 또 다른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힘든데 2시간을 안고 있었다는 건 마음 저 깊은 곳 어딘가에서는, 인정하기 싫지만 약간 즐겼을지도 모른다. 일종의 불나방 증후군인 거다. 물론 순전히 나의 경험에 근거한 오해일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먹이고 치우느라 씨름하는 아내에게는 헛소리일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그 핏덩이를 품에 안고 있으면 뭔가 하얘지면서 속에 있던 화가 가라앉는 느낌이다. 소윤이 때도 약간 이런 경향이 있었다. 1시간씩 안아서 재운 다음 눕히고, 찬양 불러주고. 미안하지만 시윤이한테는 그런 게 야박했다. 이미 소윤이하고 많은 에너지를 소진한 뒤라서 여유를 찾기 힘들었다. 얼른 재우고 나도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서윤이는 다르다. 소윤이 때 하고도 조금 다르다. 이 시기의 소중함을 조금 더 절실히 안다. 단순히 '서윤이'를 한정하는 것이 아닌 나와 아내의 인생에서 '다시는' 이런 시기, 즉 이런 어린, 갓난아이를 품에 안는 시간을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더 애틋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뭣도 모르는 남편의 헛다리일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자면 아마 아내는 서윤이를 품에 안은 그 2시간이 그저 힘들고 괴롭지만은 않았을 거다.
어쨌든 고단한 건 분명하다. 원래 보람찬 일일수록 사지가 고생이기 마련이다. 아내를 위한 작은 선물로 디카페인 아이스 아이리시 라떼를 한잔 사서 돌아왔다. 역시나 아내의 얼굴이 그리 어둡지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재우기 직전까지는 위에 말한 어떤 '즐김'이 당연히 없었을 거다. 그때는 그냥 경주마가 되는 거다. 오로지 '취침'만을 보고 달리는 거다. 그러다 1호, 2호가 잠들고 나면 그제서야 가림막이 걷히는 거고.
이제 도우미 이모님은 안 오신다. 내가 집에 없는 12시간 동안, 그러니까 하루의 반을 아내 혼자 애 셋이랑 지지고 볶아야 한다. 닥치면 다 하겠지만, 그러지 않으면 별 수가 없지만 그래도 안쓰럽다.
내일 아침에는 내가 서윤이도 데리고 나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