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6(토)
한 가지 바로잡고 가야 할 게 있다. 어제 일기에 아내가 서윤이를 안고 있던 2시간 동안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을 거라고 예측했는데 아니었다. 아내는 내게 큰 오해를 했다며 처음 한 15분 정도는 마냥 예뻤지만, 나머지 시간은 무척 힘들기만 했다고 했다. 처음 15분을 뺀 나머지 시간은 꼬박 서서 안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무튼 정정한다. 아내의 2시간은 그냥 힘들었던 2시간으로.
어제의 다짐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서윤이를 데리고 거실로 나왔다. 소윤이도 이미 깨서 날 기다리고 있었고. 곧이어 시윤이까지. 아내 혼자 방에 남았다. 아내는 아침에 산부인과 진료를 가야 했다. 산후 정기 검진이었는데 가장 빠른 시간으로 예약했기 때문에 그때 아내도 깨웠어야 여유롭게 준비하는 게 가능했다. 아내를 깨우지 않고 그대로 뒀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편히 잘 수 있는 그 시간이 얼마나 달콤할까 싶었다. 병원이야 좀 늦게 가면 되는 거고.
"아빠. 이거 읽어주세여"
소윤이와 시윤이는 책을 들이밀었다. 그러고 보니 자기 전에 읽어주는 것 말고는 애들한테 책 읽어준지도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꺼이 읽어주려고 마음을 먹긴 먹었지만 아직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잠기운 덕분에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품에는 서윤이를 안고 있었다.
서윤이는 잘 자지 않았다. 한참 안아주면 금방 잠들었다가도 눕히면 다시 깨고. 또 안아주면 또 자고 또 눕히면 또 깨고. 마지막에 눕혔을 때는 조금 더 오래 자길래 드디어 성공했나 싶었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그 옆에서 자기들 나름대로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러다 시윤이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 버렸다. 그러더니 서윤이 한 번, 나 한 번 번갈아 가며 쳐다보더니 혼자 읊조리듯 얘기했다.
"나 때문에 깸나?"
"시윤아. 아니야 괜찮아. 깨도 돼"
애들이 아무 생각 없는 거 같아도 동생의 등장으로 나름 배려도 하고 있고, 조심도 하고 있고 그러나 보다.
아내는 병원에 예약한 시간이 한 20분쯤 남았을 때 일어나서 나왔다.
"여보. 나 왜 안 깨웠어?"
"아, 맞다. 병원 예약 있었지?"
아내는 정말 진료만 받고 곧장 돌아왔다. 조금 더 오래 밖에 있으려면 나가기 전에 수유를 했어야 하는데 너무 급하다 보니 수유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니면 애초부터 진료만 받고 후다닥 돌아올 생각만 했을지도 모르고. 아니나 다를까 아내가 집에 도착할 때쯤부터는 서윤이가 이래도 울고 저래도 울었다.
오후에는 텃밭에 가야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기대치가 너무 크다 못해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큼 부풀었다. 이미 텃밭은 언제 갈 거냐고 여러 차례 물어보기도 했다.
"소윤아, 시윤아. 텃밭은 점심 먹고 나서 갈 거야. 그러니까 계속 물어보지 말고. 알았지?"
소윤이는 특유의 '혼잣말로 포장해 하고 싶은 말 하기' 기술을 선보였다. 시윤이도 마찬가지로 나와의 약속은 금세 잊고 오매불망 텃밭에 갈 시간만 기다렸다. 점심은 떡과 과일로 대신했다. 드디어 소윤이와 시윤이가 학수고대하던 텃밭에 갈 시간이 됐다. 일단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나가는 것만으로도 아내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기는 한데, 과연 40일짜리 아이랑 둘이 있는데 쉬는 게 가능한가.
텃밭은 생각보다 넓었다(우리가 산 구역이 아니라 전체 텃밭 면적이). 2시간 남짓 웃거름도 뿌리고, 옮겨 심기도 하고, 잡초도 뽑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흙 따위가 옷이나 손에 묻는 건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에 앉고 싶으면 앉고 묻히고 싶으면 묻혀가며 열심이었다. 다 마치고 집에 오면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물어봤다.
"오늘 어땠어? 재밌었어?"
"네. 엄청여. 우리 다음에도 또 오자여"
"시윤이도 재밌었어?"
"네에. 배깨놈께 ('100개 넘게' - 100개가 넘을만큼 '엄청 많이'라는 의미의 시윤이식 표현)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 거다. 넓은 밭에서 그야말로 '파란' 하늘을 보니 잡생각이 모두 사라졌다. 다시 고개를 내리고 밭 위의 수많은 아이들과 그들의 입을 막은 마스크 풍경을 보니 너무너무 슬펐다. 이 좋은 날 마스크라니. 나중에 애들이 커서 나한테 이렇게 물어보는 세상이 될까 봐 두렵다.
"아빠. 저는 몇 살 때부터 마스크를 썼어여?"
집에 돌아오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뭐 사갈 거 없어?"
"사갈 거? 뭐?"
"저녁으로 먹을 거나 뭐 필요한 거"
"글쎄"
"저녁은 어떻게 할 거야?"
"아 집에 밥 없지. 일단 밖에 나가든 안 나가든 바깥 음식을 먹자"
서윤이를 데리고 갈만한 넓고 여유로운 자리가 있으면서도 사람이 별로 없는 곳을 찾는 게 꽤 어렵다. 그러다 보니 자꾸 갔던 데 또 가게 된다. 오늘도 그랬다. 아내는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수유를 했다. 가장 좋은 건 음식 나오기 전에 먹이고, 음식 먹는 동안 자는 거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수유가 끝나지 않아서 아내는 먹이면서 먹었지만 서윤이가 먹고 나서 울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피자 하나, 파스타 하나, 볶음밥 하나 이렇게 시켰다. 약간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디까지나 애들이 잘 먹을 때 얘기였다. 괜히 넘치게 시켰다가 버리는 것보다는 먹다가 모자라면 더 시키는 게 나았다.
아, 마찬가지로 이것도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 잘 먹을 때 얘기였다. 오늘은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폭발적이었다. 점심을 부실하게 먹은 데다가 텃밭에서 나름 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둘 다 비슷했다. 애들이랑 여러 번 갔던 곳인데 처음으로 배가 차지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피자를 거의 세 조각씩이나 먹었다. 애들보다 피자를 적게 먹은 건 처음이었다. 아내는 모자라면 더 시키라고 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아내도 썩 배불리 먹지는 않았다. 요새는 웬만하면 과식을 안 하기도 하고, 많이 먹고 싶다 한들 수유와 식사를 동시에 진행하는 이상 한계가 있을 거다. 아무튼 아내와 나는 새삼 놀랐다. 이제 반드시 1인 1음식을 주문해야 하는 날이 머지않았다.
밥 먹고 카페도 잠시 갔는데 서윤이는 계속 잤다. 시윤이는 카페에서 급격히 졸려 하기 시작하더니 집에 오는 그 짧은 시간(10분)에도 잠을 참지 못했다. 도착해서 깨워도 정신을 못 차리길래 번쩍 안았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와, 이제 더 이상 내 작고 귀여운 아들을 안는 게 아니라 쌀가마를 안는 느낌이었다. 소윤이도 물론 무겁지만 다르다. 소윤이는 포대에 가득 찬 마른 솜이라면 시윤이는 포대에 반밖에 안 찼지만 흠뻑 젖은 솜이랄까. 아무튼 이제 지하에서 집까지 안고 가면 헉헉대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렇게 젖은 솜처럼 정신도 못 차리던 녀석이 차에서 깔짝 잤다고 막상 눕혀 놓으니 한참을 안 잤다.
"시윤아. 아빠 나갈게. 시윤이도 얼른 자?"
"네. 아빠"
시윤아. 사실 아빠도 그대로 자고 싶어. 사실 나가서도 졸다가 다시 들어올 때가 많아. 그래도 그냥 나가는 거야. 그대로 자면 너무 억울(?)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