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진실과 비밀

20.05.19(화)

by 어깨아빠

거실에서 자는 건 생각보다 괜찮았다. 밤 사이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다만 방 안의 사람이 나의 존재 여부를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자다가 일어나 쥐도 새도 모르게 출근하는데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아내와 처음 연락을 주고받은 내용이 썩 좋지는 않았다.


[시윤이 또 팬티에 응가함]


다 늦어서 똥 팬티 시중이라니. 기저귀에 묻은 똥 치우기 지겨워서 팬티 입힌 건데 이제 와서 똥 팬티로 응수하니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그나마 (내) 엄마가 아직 집에 있을 것 같은 시간이라 다행이었다.


엄마는 오후 늦게 가셨다. 아내와 아이들은 엄마를 배웅하고 잠시 산책을 겸한 나들이를 나왔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아이들이랑 걸으면 10분 혹은 조금 더 걸어야 하는 거리에 있는 카페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으로만 보면 마냥 행복해 보임]


물론 행복하다. 엄청.


"세 명이라 행복도 세 배야"


라고 누군가 말했다던데 완벽하게 동의한다. 대신 힘들기도 엄청 힘들다. 나 말고 아내. 난 사실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시윤이 때가 진짜 힘들었지, 지금은 수월한 편이다. 이게 진짜 수월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 내 몫의 힘듦을 가지고 간 거고. 그걸 가지고 갈 사람은 아내뿐이고.


"여보.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만들었는데 어쩌겠어. 내 몫이려니 하고 살아야지"


안겨서도 자지 않고 우는 서윤이를 보며 아내에게 한 말이다. 결자해지라 했던가.


아무튼 사진 속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은 꽤 아름다웠다. 나도 당장 가서 그 프레임 안에 갇히고 싶을 정도로.


한 2-3일 밤잠이자 통잠에 가까운, 아니 그건 그야말로 밤잠이자 통잠이었다. 그랬던 서윤이가 오늘은 울고불고 난리였다. 안아주면 잠들고 눕히면 깨고. 다시 안아주면 왜 눕혔냐고 원망하듯 울다가 다시 잠들고. 다시 눕히면 또 번쩍 뜨고. 거의 1시간 30분을 그렇게 보냈다. 아니 그럴 거면 애초에 희망 고문이라도 하지를 말던가. 기절했나 싶을 정도로 정신을 잃고 자더니 왜 등만 닿으면 깨는지. 너무 피곤해서 꼭 해야 하는 일만 후딱 하고 일찍 자려고 했는데 다 무산됐다. 서윤이가 서윤이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원망의 소리를 들었을 거다. (오늘은 서윤이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내 기억에 시윤이는 이미 이때 엉덩이를 맞았을 거다.


"아오. 왜 이렇게 안 자. 시윤아. 어? 으"


오만가지 방법을 써도 자지 않고 우는 시윤이를 향한 야속함을 담아 엉덩이를 팡팡 때렸 아니 두드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서윤아, 넌 지금 거의 공주 대접이야.


결국 서윤이는 다시 아내 품으로 돌아갔다. 나도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이 되어서야 방에 들어갔고. 아무리 결자해지라지만 너무 피곤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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