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8(월)
도우미 이모님 없이 보내는 첫날. 양쪽 할머니가 총출동했다. 딸과 며느리, 손주를 걱정하는 마음에. 두 분 모두 사전 고지 없이 갑자기 오신다고 하신 거라 동시에 오시게 됐다. 서로 다른 날에 오시면 더 좋았겠지만. 철저히 아내의 입장에서, 할머니 정도의 육아력이면 하루에 한 분으로 충분하니까 두 분이 동시에 오시면 잉여(?) 전력이 발생하니까. 물론 복에 겨운 소리다.
가장 큰 수혜자는 당연히 소윤이, 시윤이다. 소윤이, 시윤이의 관점에서 보자면 오로지 사랑과 수용만을 무한하게 제공하는 두 분이다. 엄마, 아빠로 인해 상하고 다쳤을지도 모르는 마음에 충분한 위로가 될 거다. 물론 아내에게도 큰 도움이긴 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퇴근하며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장모님은 조금 더 먼저 가셨고 아직 엄마는 같이 있다고 했다.
"엄마는 언제 가신대?"
"소윤이가 계속 주무시고 가라고 했더니 그러신다는데?"
"아, 그래?"
갑작스러운 시어머니의 방문에, 거기에 하루를 자고 가신다니. 맘카페에 답답한 심경을 호소하며 올라올법한 내용이지만, 아직까지 아내에게 그런 기색을 느껴본 적은 없다. 오히려 좋아하면 좋아했지. 아무리 그렇다 한들 상황도 변하고 사람의 마음도 변하기에 늘 아내의 심경이 어떠한지 살피고 있다.
"여보. 시월드 괜찮아? 원정 시월드?"
"뭐래"
"왜. 그래도 너무 갑자기라"
"아니야. 전혀 안 그래. 난 좋지"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가 함께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표정에는 지침과 피곤함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아이 셋이 되고 나서의 변화라면 변화였다. 아직은 서윤이가 워낙 어려서 그렇겠지만 1호, 2호는 할머니가 전담한다고 해도 3호는 오직 아내의 몫이다. 분유 수유라면 모를까 모유 수유라 대체가 불가능하다. 아내의 얼굴이 버석버석한 건 다 그런 이유겠지.
저녁은 나가서 먹기로 했다. 비가 와서 서윤이를 데리고 나가는 게 좀 걱정도 되고 더 번거로웠지만 소윤이가 강력하게 나가서 먹는 걸 원했다. 일단 나가는 것까지만 정하고 구체적인 장소는 못 정했다. 아직 가리는 음식이 있는 아내와 누워 있어야 하는 서윤이, 너무 좁지 않고 사람도 많지 않은. 이걸 모두 고려하다 보니 갈만한 곳이 많지는 않았다. 집 근처의 중국 음식점으로 정하고 차에 탔다. 평소라면 차를 타고 간다는 게 매우 의아할 정도의 가까운 거리였지만 오늘은 비도 오고 서윤이도 있어서 차를 이용했다.
안타깝게도 가려고 했던 곳은 정기 휴무였다. 나머지 최종 후보였던 곳(역시나 중국 음식점)으로 갔다. 거기도 정기 휴무. 더 이상의 대안은 없었다.
"여보. 우리 어디 가지?"
"그러게"
고민하다가 차를 타고 10분 정도 가야 하는 또 다른 중국 음식점으로 정했다. 누가 보면 중국 음식 못 먹어서 한 맺힌 가족인가 싶겠지만 그건 아니었다. 다만 여러 조건과 상황을 고려하다 보니 제일 만만한 게 중국 음식점이었다. 일부러 사람이 없을만한 식당을 고른 거였는데 예상외로 사람이 엄청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자리가 다닥다닥 붙어 있지는 않았다.
아내는 오늘도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수유를 했다. 식사를 마친 서윤이는 자지 않았다. 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모차에 눕혀놨더니 울었다. 내가 안고 달래겠다고 했지만 (내) 엄마는 당신이 안을 테니 얼른 먹으라고 했다. 아내는 열외였다. 이럴 때라도 좀 편하게 먹어야 하니까.
서윤이는 할머니 품에 안기고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얼른 먹고 교대할 생각에 속도를 내던 젓가락질을 멈추고 서윤이를 넘겨받았다. 참 신기하게도 서윤이는 울음을 그쳤다. 내 생각에는 일어서서 안아준 게 변수였던 거 같다. 좀 진정이 되고 나서 다시 (내) 엄마에게 서윤이를 넘기고 나머지 식사를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여느 때와 같았다. 시윤이는 일단 탕수육부터, 아니 탕수육만 공략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오로지 탕수육만. 그것도 엄청 많이. 소윤이는 종합적으로. 탕수육으로 시작해서 짜장면도 갔다가 다시 탕수육도 왔다가 아내의 볶음밥도 갔다가.
50일도 안 된 아기와 함께한 외식치고는 수월했다. 아직까지는 서윤이가 우리의 외식을 심각하게 방해한 적은 없긴 하다. 아내는 커피를 한 잔 사서 가고 싶어 했지만 시어머니에게 눈치가 보여 참았다. (내) 엄마는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을 슈퍼울트라그레이트 절약녀인데, 밖에서 사 먹는 커피를 매우 아까워하신다. 그렇다고 우리(아내와 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건 아니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그래, 이런 게 (아내 입장에서)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의 차이다.
아내에게 마시고 싶으면 사 가자고 얘기하긴 했지만 나도 사실 좀 주춤했다. 커피는 우리 부부의 취미 생활 내지는 소소한 욕망 해갈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가끔은 너무한가 싶을 때도 있긴 있으니까. 거기에 집에 가면 캡슐 커피도 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마가 데리고 들어가서 재웠다. 평소 엄마나 아빠였으면 '늦어서 안 된다'라는 이유로 반려당했을 자기 전 책 읽기는 물론이고 누워서 할머니랑 수다도 실컷 떨었다. 방 안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에 소윤이와 시윤이의 웃음소리는 물론이고 (내) 엄마의 말소리와 웃음소리도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야 당연히 그렇겠지만 (내) 엄마도 손주들과의 시간을 즐기는 듯했다.
아내는 거실에서 서윤이와 함께 자고 있었다. 서윤이를 재우다 졸음 수치가 급증한 아내는 그대로 거실에 누웠다. 평소였으면 서윤이도 아기 침대에 눕히고 아내도 방에 들어가 누워서 잤을 거다. (내) 엄마가 애들을 재우고 나온 뒤에도 서윤이와 아내는 잘 잤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 나서 아내를 깨웠다. (내) 엄마와 아내, 서윤이는 방으로 들어갔다. 난 거실에 남았다. 모두 방에 들어가 자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내가 거실에서 자기로 했다.
"여보. 거실에서 자는 게 더 편한 거 아니야?"
"그런가?"
하긴 서윤이도 서윤이지만 요새는 서윤이보다 소윤이, 시윤이가 나의 통잠을 더 많이 방해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