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23(토)
지난 목요일, 처치홈스쿨 나들이에 함께 가지 못해 아쉬워하던 소윤이와 시윤이를 위해 미리 가족 소풍을 예고한 날이었다. 말이 소풍이지 그냥 가까운 공원에 가서 놀다 오는 게 전부였지만 아이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한 주 내내 기다리고 벼르던 아빠와의 주말이기도 하고, 거기에 소풍이라는 이름까지 붙었으니.
소윤이와 시윤이는 여느 때처럼 눈 뜨자마자 소풍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 소풍 언제 갈 거에여?"
"아빠아. 도뿡 언데 가꺼에여엉?"
아침 먹고 나서 '조금만' 있다가 갈 거라고 얘기해 줬다. 애들 입장에서는 도무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고, 내 입장에서는 적당히 둘러대고 미루기 좋은 '조금만'이라는 개념을 안 쓰려고 하는데 이미 습관이 돼 버려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아빠. 점심 먹구여?"
"아니. 점심 먹고 가면 너무 늦을 거 같고. 아침 먹고 조금 쉬다가"
소윤이는 대략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감이 잡혔겠지만 시윤이는 전혀 아니었다. 그러니 계속 물어봤다.
"아빠아. 언데 가꺼에여엉"
"아빠아. 이제 가꺼에여엉?"
곧 간다고 했으니까 이제 그만 물어보라고 했더니 독백을 가장한 넋두리를 했다.
"아아. 도뿡 언데 가는 거까아아?"
소윤이가 따로 과외해 줬나?
아침 먹고 나서 은근히 할 일이 많았다. 아니 은근히가 아니라 대놓고였다. 특히 아내는 산적한 집안일을 쳐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난 주로 아이들을 맡았다. 아이들이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주말인 만큼 불법(?)의 요구가 아니면 웬만해서는 다 맞춰 주려고 노력했다. 적어도 나의 귀찮음 때문에 거절하는 일은 없도록.
이것저것 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집에서 나왔다. 오늘의 소풍 장소는 운정 건강 공원이었다. 일산 호수 공원도 후보였지만 인구 밀집도, 안전성(이건 아내와 나의 자유도에 영향을 미친다)을 고려해 파주에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김밥을 포장해서 아내와 나는 차에서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차에서 먹을 걸 주지 않기 때문에 도착해서 먹기로 했다.
서윤이도 태어나서 가장 멀리 가는 외출이었다. 물론 서윤이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 가는 내내 잤지만. 서윤이를 밖에 오랜 시간 둬도 괜찮을지 걱정이 좀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좋은 날씨에 아내와 서윤이만 집에 있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히려 아내는 "괜찮지 않을까"라며 무던했다.
공원에 사람이 엄청 많지는 않았다. 푸른 나무와 풀 사이로 산책로가 있는 그런 공원이 아니라 가운데 축구장을 중심으로 주변에 트랙과 공터가 좀 있는 그런 공원이다. 소윤이랑 시윤이 자전거와 킥보드 태워 주려던 목적에 딱 맞는 곳이었다. 한쪽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잡았다. 아내는 도착하자마자 서윤이에게 젖을 물렸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까 샀던 꼬마 김밥으로 허기를 달래고 바로 킥보드와 자전거에 올라탔다. 트랙 안으로는 자전거나 킥보드를 타고 들어갈 수 없어서 그것보다 조금 더 바깥쪽으로 돌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멈출 줄을 몰랐다. 앉아서 지켜보기에는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구간도 있었기 때문에 쫓아 다녀야만 했다. 시야에 모두 들어왔다고 해도 앉아 있기는 힘들었을 거다.
"아빠. 얼른 따라 와여"
소윤이가 날 가만히 두지 않았으니까. 단 한 번도 귀찮거나 힘든 내색 없이 모두 따라나섰다. 즐겁게. 사실 전혀 힘들지는 않았지만 조금 귀찮기는 했다.
"아빠는 좀 앉아서 쉴게. 너네도 좀 쉬어 이제"
라고 배를 째며 눌러 앉고 싶기도 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내게도 소중하지만 아이들에게도 더없이 소중한 주말이었을 거다. 내가 소윤이, 시윤이와 열심히 운동장을 도는 동안 아내는 서윤이와 함께 자리를 지켰다. 바람이 선선하고 날이 좋아서 가만히 앉아 있기에도 퍽 괜찮았다.
처가댁 바로 앞이라 아내가 장모님, 장인어른에게 연락을 해보려고 했다. 사실 소윤이가 더 난리였다. 할머니 집 근처에 왔으니 얼른 할머니한테 연락해 보자면서. 적당한 시간을 봐서 연락을 하려던 아내는, 생수 사러 편의점 다녀오는 길에 마침 근처 카페에 계시던 장인어른, 장모님과 마주쳤다.
잠시 후 장모님, 장인어른도 공원으로 오셨다. 저녁 먹고 나서는 잠시 처가댁에 들르기로 했다. 물론 소윤이와 시윤이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지만, 그대로 집에 가면 시윤이는 가는 길에 잠들 텐데 그러면 다시 깨워서 씻기는 건 어려웠다. 차라리 가기 전에 다 씻고 가는 게 나았다. 거기에 오늘 소풍 말고도 소윤이랑 약속한 게 또 있었다.
목욕. 주말에 목욕(욕조에 물 받아서 노는 행위)을 시켜주기로 했다. 이미 꽤 늦은 시간이라 집에 가서 목욕할 시간은 없었다.
"소윤아. 그럼 원래 오늘 아빠가 목욕시켜 준다고 했잖아?"
"네"
"집에 가서 하기에는 너무 늦었으니까 할머니 집에서 목욕하고 가자. 어때?"
"집에 가서 하고 싶어여"
"왜?"
"할머니 집에서 하면 조금밖에 못하잖아여"
"아니야. 집에서 하나 할머니 집에서 하나 똑같아"
"아닌데. 할머니 집에서 하면 더 짧은데"
"아니라니까. 집에 가서 한다고 해도 엄청 길게 하지는 않아"
"그럼 몇 분이여?"
"글쎄. 한 30분?"
소윤이와 시윤이가 목욕하는 동안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잠이 막 쏟아졌다. 뛰어다닌 것도 아니고 천천히 애들 쫓아다니기만 했는데 은근히 피로가 쌓였나 보다. 집이고 뭐고 그냥 누워서 자고 싶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목욕하고 나와서도 장난감 볼링으로 또 한참 놀았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헤어지는 건 언제나 아쉽지만 오늘처럼 실컷 논 날은 비교적 헤어짐이 어렵지 않다. 오히려 더 놀지 못한 게 아쉽나 보다.
"아빠. 집에 가면 바로 잘 거에여?"
"응. 당연하지"
"벌써여? 조금밖에 못 놀았는데"
"벌써는 무슨. 오늘 하루 종일 놀았잖아"
그 심정이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더 놀다 자는 건 불가능했다. 시윤이는 차에 오르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소윤아. 오늘 재밌었지?"
"네. 이제 아빠 맨날 회사 가지 마여. 알았져?"
소윤아. 누구보다 아빠가 그러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