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녹는 아내

20.05.22(금)

by 어깨아빠

당연한 얘기지만 아내는 오전부터 참 바쁘다. 아니 새벽부터 바쁘지. 서윤이 수유하는 건 밤, 낮, 새벽을 가리지 않으니까. 요즘은 해 뜨는 시간도 빨라져서 덩달아 소윤이, 시윤이도 일어나는 시간이 당겨졌다. 그럼 눈뜨자마자 아침 차려서 먹이고, 차리지는 않지만 물려야 하는 서윤이도 먹이고.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은 성경 읽기가 탈 없이(아내의 감정과 체력 소모 없이) 지났는지 물어봤다. 아내는 '아슬아슬하게' 지났다고 표현했다. 어떤 느낌인지 한방에 와닿았다. '아슬아슬'은 소윤이와 아내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었을 거다. 경계선 근처에서 아슬아슬한 태도를 보이는 소윤이와 그런 소윤이를 보며 아슬아슬하게 감정을 조절하는 아내의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찰흙 개시한당]


그깟 찰흙 따위에 '개시'라는 표현이 어울리나 싶지만 그만큼 아내에게는 큰 결단이 필요한 일이라는 의미였다. 떨어지는 찰흙 가루로 인해 집이 더러워지는 건 물론이고 서로 다투기까지 하고, 이제 그만하고 정리하자고 하면 울며 징징거리는 상황까지. 물론 항상 이러지는 않는다. 최악의 상황만 모아서 가정한 거다. 그렇다고 아예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까 봐야 아는 일.


찰흙놀이가 어떻게 끝났는지 듣지 못했다. 다만 아내는 나의 퇴근 한 시간 전쯤 카톡을 보냈다.


[나는 오늘 매우 매우 힘든 날임. 고되다 정말ㅋ 몸도 마음도]


찰흙은 아내 하루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밥 차리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서윤이 목욕 시키고 소윤이와 시윤이 상대하고. 찰흙 아니어도 충분히 촘촘하고 고된 일상이다. 아내는 보통 대놓고 내색을 안 하는 편이다. 그런 사람이 저렇게 말했다는 건 진짜 힘들어서 참다 참다 내뱉은 외마디 비명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세 글자, '마음도'가 걸렸다. 몸이야 항상 힘들다지만 마음은 아니었다.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마음만큼은 거뜬한 날도 있다.


아내는 내가 퇴근하기 전에 애들 저녁도 다 먹였다. 나의 저녁으로는 한살림에서 산 콩국물로 콩국수를 만들어 줬다. 아내도 애들이랑 먼저 먹었다고 했다. 난 콩국수를 먹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내가 퇴근길에 사다 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아내는 말할 힘도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지쳐 있었지만, 기어코 내가 먹을 콩국수를 준비하겠다며 계속 움직였다.


"아빠. 교회 가지 마여"

"왜?"

"그냥여. 우리랑 같이 자자여"


옆에서 아내가 소윤이에게 말했다.


"소윤아. 누구보다 엄마가 그러라고 하고 싶다"

"왜여?"

"엄마도 아빠가 없으면 힘드니까"


다시 집을 나서는 나를 향해 아내는 이렇게 얘기했다.


"여보. 예배 잘 드리고 와. 우리 대신 기도도 많이 하고"


'여보. 나를 위해서 기도 좀 해 줘'


라는 말로 들렸다고 하면 너무 앞서 나간 걸까. 아내에게 유일한 구원자는 하나님이요, 현실의 기댈 나무는 남편일 거다. 아내의 뜻과 바람대로 예배도 열심히 드리고 기도도 진심으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야 금방 잠들었을 테고, 서윤이도 일찍 잠들어서 좀 쉴 시간이 생겼나 궁금했다. 카톡에는 답이 없었다. 잠들었나 싶기도 했지만 서윤이 낳고 나서는 재우다 같이 잠든 적이 별로 없었다.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수유하고 나서 안고 있다는 답장이 왔다. 올라가서 보니 아내는 잠든 서윤이를 안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내는 맥아리가 없었다. 고된 하루, 일주일에 자기가 가진 모든 체력과 정성을 다 쏟아부은 뒤 녹아내린 느낌이었다. 사실 요즘 자주 이렇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다시 굳어지는 게 다행이다. 매일 녹아내리지만.


여보. 드디어 주말이다. 힘내. 내일은 나만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