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21(목)
아내는 열이 받았다며 카톡을 보냈다. '성경 읽기' 때문에 소윤이와 한 판(?) 했다고 했다. 몇 번을 좋은 말로 얘기해도 밍기적 거리고 아내가 보기에는 탐탁지 않은 태도로 일관하는 소윤이를 '훈육'했지만, 분명히 감정이 오갔고. 그 와중에 시윤이는 주구장창 엄지손가락을 빨아대고. 서윤이는 침대에 누워 목이 터져라 우는데 애들 아침은 차려줘야 하니까 계란밥을 해주고. 정작 애들 아침 차려주고 나니 우는 서윤이 달래느라 자기는 밥도 못 먹고. 겨우 재워서 눕히고 나왔는데 바로 깨서 토하고. 이렇게 많은 일이 있었는데 시간은 고작 9시 언저리였다. 아내가 쏟은 체력과 에너지는 이미 다른 이들의 하루 분량이었을지도 모른다.
[난 또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 말아용. 기도해야지]
요즘은 이게 아내의 일상이 아닐까 싶다. 두더지 게임이다. 여기 막으면 저기서 튀어나오고. 저기 막으면 다시 여기서 튀어나오고. 그러다 동시에 막 튀어나오기도 하고. 두더지 게임은 딱 100원어치만 나오기라도 하지. 아내의 두더지 게임은 끝이 없다.
오늘 처치홈스쿨 가정이 모여 바깥나들이를 간다고 했다. 며칠 전에 아내가 자기도 애들을 데리고 가면 어떻겠냐고 물어봤지만 아직 무리일 것 같다고 만류했다. 아내는 505호 사모님(처치홈스쿨 일원)에게 뭔가 전해주러 갔다가 소풍(?)을 떠나는 처치홈스쿨 식구를 만났다. 물론 아이들도 같이. 소윤이는 큰 슬픔에 빠졌다. 다들 신나서 가는데 자기만 가지 못하는 처지가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소윤이의 심경이 충분히 이해됐다. 아내도 소윤이가 너무 불쌍했다고 카톡을 보내왔다.
[불쌍하네. 대신 토요일날 가족 소풍 가자고 해]
퇴근하자마자 일부러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다시 한번 토요일 소풍을 언급했다.
"소윤아, 시윤아. 토요일에는 우리 가족끼리 어디 공원 같은데 가자. 가서 자전거랑 킥보드도 실컷 타자. 알았지? 간식도 싸서 가고"
소윤이와 시윤이도 주말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평일날 워낙 아무것도 못하고 밥만 먹고 바로 잠드니까 나랑 보내는 시간이 매우 매우 적다. 사실 난 소윤이와 시윤이가 낮잠만 자면 밤 산책이라도 데리고 나갔다 올 마음도 있긴 하지만 자기들이 낮잠을 안 자니까 뭐. 아내도 얼른 1부 육아를 마치고 싶은 열망이 크고. 말은 이렇게 해도 막상 낮잠 자고 밤에 더 시간을 보내야 하면 너무 슬플지도 모른다. 지금도 애들 재우고 나오면 9시, 10시인데 그나마의 시간도 졸다 끝나기 바쁘니까.
그나마 힘들긴 엄청 힘든데 안 힘든 것처럼 느껴져서 감사하다. 힘든 걸 곱씹고 묵상할 시간이 없어서 그런가. 아니면 정말 내가 모르게 아내 혼자 고통의 시간과 터널을 지나고 있는 건가. 아니면 서윤이가 그냥 너무 예뻐서 아내와 나에게 환각과 마취 증상을 주는 건가.
오늘도 서윤이를 30분 넘게 안고 있어서 왼쪽 팔이 무척 아팠는데, 심지어 그러고 나서도 자지았았는데 하나도 밉지 않았다. 아내도 서윤이를 기르는 게 무척 힘들지만 현재 아내의 삶에서 가장 큰 기쁨인 건 분명해 보인다. 다른 건 내가 오해하고 있을지 몰라도 이건 확실하다. 우리 가족 누구에게보다 서윤이를 대할 때 연두부처럼 부드럽다.
소윤아, 시윤아. 너무 서운해하지 마. 너네도 이맘때는 다 이렇게 키웠 아니 시윤아 넌 잠깐 나가 있어 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