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업이 아닌 협업

20.05.26(화)

by 어깨아빠

어제 아내와 나에게 선물을 선사한 서윤이는 그 대가(?)로 아내의 아침을 빼앗아 갔다.


[아침에 되게 힘들게 하네]


서윤이가 아내를 힘들게 할 만한 건 별로 없다. 안아줘도 울거나, 먹여도 울거나, 주구장창 울거나. 아내는 11시에 비로소 서윤이를 눕히고 첫 끼를 먹는다고 했다. 몇 숟가락 먹다가 중단되었던 첫 끼를. 내가 안쓰러워했더니 정작 자기는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슬프진 않음. 일일이 슬퍼하면 못 버팀. 아주 가아끔 우울해질 땐 맛있는 디저트로 달래고]


아내의 정신력이 강한 게 아니고 정신력이 강해야 살아남는 세계다. 육아의 세계.


그나마 오후에는 장모님과 친한 권사님이 집에 오셔서 같이 밖에도 나갔다 오고, 아내도 숨통이 좀 트였다. 아내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큰 차를 몰고 나갔다 왔다. 점점 아내가 큰 차 운전에 익숙해지고 있다. 반길 만한 일이다. 아내의 기동력이 상승할 거고, 기동력은 곧 자유로움이고, 자유도는 스트레스와 반비례하니까.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머니와 보낸 시간 때문에 어떤 억눌린 응어리 같은 게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평소에는 가끔 그런 게 느껴질 때가 있다). 저녁 메뉴는 장모님이 사 주고 가신 소고기였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손만 씻고 바로 고기를 구웠다. 고기를 다 굽고 상을 차릴 때쯤 서윤이가 서럽게 울었다. 일단 아내랑 애들부터 먹으라고 했다.


"여보. 천천히 먹어. 괜히 급하게 먹지 말고"

"알았어. 여보는 배 안 고파?"

"어. 괜찮으니까 천천히 먹어"


소윤이도 어릴 때부터 내가 그렇게 많이 안아주고, 안아서 재우고 그랬는데 한동안(꽤 오래) 엄마 없으면 세상이 멸망하는 것처럼 울며 엄마'만' 찾았다. 심지어는 지금도 특별한 경우(아빠의 힘이 필요하거나, 꿩 대신 닭이 필요하거나)가 아니면 마찬가지다. 서운한 건 아니지만 알아야 한다. 소윤이도 서윤이도. 아빠의 애정과 헌신을. (시윤이 때는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었다. 애정이 작은 건 절대 아니었지만 많이 안아주지는 못했다.)


아내가 식사를 마치고 나와 교대했다. 나는 식탁에, 아내는 서윤이를. 비록 모두 앉아 다 함께 먹지는 못했어도 나름 평화로운 식사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금방 잠들었는데 서윤이는 오늘도 예외였다. 역시나 어제의 성공이 오늘의 성공으로 이어지기에는 아직 이른가 보다.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다. 10시까지 안고 있었다. 물론 품에 안고 있을 때는 잤다.


"여보. 이제 일단 눕혀. 깨면 내가 볼 테니까"


서윤이는 조심스럽고 섬세한 나의 몸짓이 무안하게 등이 닿자마자 눈을 떴다. 아내는 서윤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우는 서윤이를 데리고 당당하게 방에 들어간다는 건 딱 한 가지 의미였다.


"여보. 수유?"

"응"


아내는 1시간 뒤에 나왔다.


"여보. 잠들었어?"

"아니. 먹이고 안고 있다가 나왔지"

"고생했어"


그러고 나면 아내와 나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한 시간 정도다. 그마저도 조느라 매우 허망하게 보냈고.


"여보. 오늘도 고생했어. 잘 자"

"그래. 여보도. 잘 자"


아내는 매트리스에, 나는 바닥에 누워 서로에게 건네는 인사가 참 애틋하다. 정말이다. 서로를 향해 건네는 격려와 치하는 진한 진심이고 맞이할 밤의 평안을 기원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 어떤 일과 견줘도 만만하지 않은 육아를 지속하게 하는 연료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 생각에 가장 연비가 좋은 건 두 가지다. 하나는 아이의 웃음. 6살 소윤이의 것도, 4살 시윤이의 것도, 52일 서윤이의 것도 다 똑같다. 웃는 걸 보면 없던 힘도 솟아난다. 나머지 하나는 아내의 존재. 그냥 존재 그 자체. 혼자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힘을 준다. 고된 하루를 마무리하며 나와 같은 일상을 겪은 누군가와 서로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불순물이 많이 씻겨 나간다.


여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