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의 선물

20.05.25(월)

by 어깨아빠

아내는 오전부터 밖에 나왔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보통은 나가더라도 늦은 오후에 나가는데 오늘은 매우 이른 편이었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외출은 잘 하고 있는지 카톡을 보냈다.


[지금은 집. 고되다. 으아악. 잠깐 쉬고 싶은데 진짜 쉴 틈 없는 일상이군. 오전에 밀린 빨래 한 번 하고 지금은 이불 빨래 중]


그리고는 이어서 카톡을 보냈다.


[아니 말도 안 된다. 아직 한시라고?! 4시는 된 느낌인데]


남자들이 군대에 가면 경험한다는 시간과 공간의 방을 아내도 경험하고 있다. 단지 3시간의 차이가 아니다. 3시간의 착각 속에 밀도 있게 눌러 담은 노동의 숨결이 어마어마하다.


날씨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 애들 내팽개치고, 일 내팽개치고 둘이 만나서 데이트나 하면 더 바랄 게 없을 날씨였다. 아내도 나도 내팽개칠 용기도 명분도 없으니 그러지는 못했고 대신 만나기로 했다. 물론 다 함께.


내가 아내를 꼬셨다. 제일 좋은 건 아내 혼자 자유의 세계로 나가게 하는 거다. 안타깝게도 아직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아직 먼 이야기다. 적어도 서윤이가 수유 없이 몇 시간은 버틸 정도는 커야 한다. 비록 홀몸은 아니어도 밖에 나와서 바람도 쐬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러면 좀 산뜻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아내는 내가 퇴근해서 집에 들렀다가 나오면 너무 늦을 것 같다며 아예 식당에서 만나자고 했다.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차를 끌고. 먼 거리는 아니었고 집에서 한 1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아내는 얼마 전부터 파스타가 먹고 싶다고 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아내와 내가 만나기로 한 식당은 정기 휴무일이었다. 내가 먼저 도착해서 발견하고 아내에게 소식을 전했다.


다행히 바로 옆에도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브런치 가게 겸 베이커리 겸 카페였다. 소윤이와 서윤이는 환한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 신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자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에 외출인데다가 엄마가 운전하는 차도 타고, 하루 종일 못 본 아빠도 만나고.


서윤이는 내릴 때부터 자고 있었다. 유모차에 눕혀도 깨지 않았고 밥 먹는 내내 그대로였다. 이건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서윤이가 깨느냐 안 깨느냐에 따라 식사의 질이 달라진다. 길거리 노점상과 고급 레스토랑 정도의 차이가 난다. 서윤이 아니어도 1호와 2호 챙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정신없다. 낑낑거리지도 않고 고요히 숙면을 취한 서윤이에게 영광을.


밥을 다 먹고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 가려고 했는데 거기도 정기 휴무였다. 서윤이는 여전히 잘 자고 있어서 차에 옮기는 게 아쉬웠지만 별 수 없었다. 그 동네 가게들이 대부분 휴무였다. 어쩔 수 없이 차를 타고 다른 카페로 갔다. 마감 시간까지 30분 정도 남은 시간이었지만 어차피 오래 있을 생각도 아니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서윤이는 카페까지 가는 동안 카시트에서 엄청 울었다. 매우 격렬하게.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내가 카시트는 싫다고 했잖아요!!!!!! 안아 달라고요!!!!!!"


라고 하는 느낌이었다. 내려서 아내가 안아줬는데도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는지 계속 매섭고 크게 울었다. 결국 아내는 차에 가서 수유를 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내는 아이스 바닐라 라떼를 시켰다. 아내가 차에 가서 수유를 하는 동안 나와 아이들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쿠키를 먹었다. 아내의 커피에 있는 얼음을 하나씩 빼내고 있을 때 소윤이가 물었다.


"아빠. 왜 엄마 얼음을 빼여?"

"엄마 수유하시려면 시간이 좀 걸리니까. 얼음 빼 놓는 거야"

"왜여?"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잖아. 그럼 커피가 맛이 없어져"

"왜여?"

"커피에 물이 섞이면 맛이 밍밍해지거든. 그래서 얼음이 녹기 전에 빼놓으려고. 엄마 수유 다 하고 오시면 맛있는 커피 드실 수 있게"


소윤이한테 대답하면서 살짝 자기애에 빠졌다.


'맙소사. 내가 이렇게 배려 깊고 스윗한 남편이었다니'


수유를 마치고 돌아온 아내와 자리를 바꿨다. 내가 서윤이를 안고 아내는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농도 유지를 위해 섬세하게 얼음을 빼낸 그 커피를.


서윤이는 집에 가느라 다시 카시트에 앉혔더니 역시 서럽게 울었다. 그렇게 서럽게 울다가도 도착해서 안아줬더니 바로 그쳤다. 약간 졸린 기색이 있길래 내가 계속 안고 있었다. 아내가 소윤이와 시윤이를 씻기는 동안 쭉 안고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갈 때 서윤이도 침대에 눕혔다.


소윤이와 시윤이 사이에 누워 두 녀석이 잠들기를 기다리며 서윤이의 동태도 살폈다. 눈으로 살피는 건 어려웠고 소리로만. 약간 찡찡대긴 했는데 아까처럼 격렬하게 울지는 않았다. 마음속에서 자꾸 기대의 싹이 피어올랐다.


'혹시? 이대로?'


소윤이와 시윤이가 잠든 걸 확인하고, 서윤이도 슬쩍 보고 방에서 나왔다. 서윤이는 아직 자는 건 아니었다. 다만 간간이 내는 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꼭 금방 잠들 것처럼.


"여보. 저러다 자는 거 아니야?"

"설마. 울겠지"

"그러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깨겠지. 자겠어?"

"그럴까?"

"그러겠지"


서윤이는 그대로 잠들었다. 그저 수십 분, 1-2 시간이 아니라 밤잠으로.


"여보. 진짜 자나 봐"

"그러게. 대박이네"


그래. 이런 날도 있어야지. 그래야 살고 버티지. 아무튼 서윤아. 오늘 여러모로 고맙네? 밥 먹을 때도, 잘 때도. 어제 아빠의 마음을 읽은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