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30(토)
서윤이는 새벽에 무려 네 번이나 토했다고 했다. 시간으로 따지면 새벽 3-4시부터. 왜 이렇게 자주 토하는지 모르겠다. 가끔은 자기 봐 달라고 일부러 시위하는 거 아닌 에이 그건 아니겠지? 서윤아? 아무튼 네 번이나 토한 서윤이보다는 그거 수발드느라 잠을 못 잔 아내가 더 걱정이 됐다. 그렇게 걱정이 됐으면 니가 일어나서 봐 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아무튼 잠깐이라도 좀 자라고 서윤이를 데리고 거실로 나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먼저 나가 있었다. 서윤이는 처음에는 조금 순순히 안겨 있다가 금방 울어 젖혔다. 앉아서 안았다고 그러는가 싶어 일어서서 안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가만히 서 있었다고 그러나 싶어 이리저리 걸었지만 똑같았다. 안는 자세가 불편해서 그런가 싶어 이 자세, 저 자세 바꿔 가며 안았지만 울음을 거두지 않았다.
배가 고픈 듯했다. 움직이다가 내 살결이 입술 근처에 가면 고개를 빼고 입을 갖다 댔다. 내 나름대로 아내에게 절대 하지 않으려고 하는 말이 있는데
"여보. 수유해야겠다"
라는 말이다. 소윤이 때나 시윤이 때나 애가 울면 함께 있는 어른들이
"얘 배고픈가 보다. 얼른 젖 먹여라"
라고 말하는 걸 아내는 참 싫어했다. 싫어했다기보다는 스트레스를 받았달까. 안 그래도 하루 종일 물리는 게 일이라 힘든데 기승전수유로 끝나는 우는 이유 찾기가 싫었던 거 같다. 그런 걸 옆에서 고스란히 지켜봐서 그런지 난 절대 그 소리를 안 한다. 수유를 할지 말지는 철저히 아내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영역이다. 서윤이도 대체로 정말 배가 고파서 우는 게 아니면 웬만하면 달래진다.
배가 고파서 울 때는 딱 느낌이 다르다. 앙칼지고 날카롭고 점점 더 거세지고. 옆에 있어도 수유하라고 얘기를 안 하는데 자고 있는 아내를 깨워 젖을 물리라고 하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거다. 나의 결연한 의지가 무색하게 아내는 서윤이의 울음소리에 반응해서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왔다. 이맘때의 엄마가 피곤한 건 외면하는 능력을 잠시 잃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은 데칼코마니였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아침부터, 잊을만하면
"아빠. 그런데 데칼코마니는 언제 할 거에여?"
미루려고 미루는 게 아니라 서윤이 달래주랴, 아침 차리랴, 설거지하랴, 아내 대신 서윤이 안아주랴 정말 쉴 틈이 없다. 어제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어 달라는 것도 서윤이를 안은 채 겨우 읽어줬다. 아침부터
'커피 한잔 마셔야지'
생각만 하고 오후에 나가기 전까지 커피를 못 마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나 정말 바쁘게 살았다. 고작 오전이었는데.
아내는 매우 피곤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널브러지지 않고 자기 손길이 필요한 곳에 기꺼이 손을 댔다. 그것도 부지런하게. 반드시 아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면 (사실 그런 건 수유 말고 없다) 서윤이도 웬만하면 내가 보려고 했다. 내 느낌상 이렇게 내가 애쓰고 노력해도 실제로 내가 하는 건 2 정도? 나머지 8은 이러나저러나 아내가 하게 된다.
점심 먹고 오후에는 나가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아내는 집에서 쉬게 하고 셋을 데리고 나가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외출 반경이 동네로 좁아지고, 그럼 소윤이와 시윤이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닐 거다. 그렇다고 아내 혼자 서윤이랑 집에 있으라고 하는 것도 좀 그렇고.
집에서 가까운 행주산성공원에 가기로 했다. 1년 전쯤 갔던 적이 있는데 가자마자 비가 와서 바로 철수했다. 오늘은 비 소식은 없으니 그럴 일은 없었다. 자전거에 유모차에 킥보드에. 트렁크에 짐을 실으면서부터 이미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주변에 캠핑 다니는 아빠들이 말하길, 트렁크에 짐 싣고 내릴 때가 제일 힘들다던데 그 심정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바로 이때가 오늘의 승부처다. 어처구니없게도 이런 순간에 짜증을 채우기 시작해서 아이들의 사소한 말이나 행동에 분풀이를 하면 물은 쏟아진 거다.
'그래. 유모차도 자전거도 킥보드도 다 내가 산 거잖아. 누가 많이 낳으랬나. 나 스스로 낳았지'
라고 마음을 다스리며 꾸역꾸역 트렁크에 짐을 실었다. 날이 좋긴 했는데 무척 더웠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한강을 옆에 두고 자그마한 잔디밭과 산책로가 있는 곳이었다. 대신 그늘이 없었다. 그저 군데군데 솟은 나무 옆에 생긴 그늘에 자리를 잡아야 했는데 그마저도 먼저 온 사람이 많아서 쉽지 않았다. 그늘을 만들어 내기에는 가지도 잎도 너무 가냘픈 나무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늘이 있긴 있었는데 없어져도 아쉽지 않을 수준이었다.
잔디밭 곳곳에 들꽃이 있어서 벌이 조금 날아다녔다. 소윤이는 벌을 보더니
"으. 아빠아 버어어얼"
하면서 겁을 먹었다.
"소윤아 괜찮아"
"아빠아아. 무서워여어어. 너무 많아여어어"
"밖에 나오면 다 그래. 그렇게 징징대면 어떻게 밖에서 놀아"
아이의 감정에 우선 공감하는 게 먼저라는 건 이론으로만 안다. 왜 실기에서는 그게 안 될까. 어리석은 아빠로다. 잠시 후 아내도 왔다.
"으. 여보. 벌이 좀 많다"
소윤아, 넌 잘못이 없다. DNA를 물려준 너의 엄마를 탓하거라.
아내와 나는 오면서 차 안에서 김밥을 먹었고 앉자마자 애들 점심을 먹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김밥과 유부초밥. 서윤이는 김밥 맛 모유. 소윤이와 시윤이는 자전거와 킥보드를 타고 잔디밭 주위를 돌았다.
"아빠. 아빠가 우리 따라와여"
슬렁슬렁 걸어서 소윤이와 시윤이의 뒤를 쫓아갔다.
"아빠. 뛰어여 뛰어"
"뛰는 것까지는 못해. 너무 힘들어"
서여느...즉등흐 흐르...(소윤아, 적당히 해라)
서윤이는 처음에는 좀 울더니 바깥바람에 적응을 했는지 한참 동안 누워 있었다. 지난주에 캐치볼을 못했다고 아쉬워했던 소윤이를 위해 캐치볼도 챙겨 갔다. 소윤이랑 한참 공을 주고받았다. 오랜만에 소윤이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웃음도 보고. 소윤이는 캐치볼을 정말 재밌어했다. 역시 웃음이 약이다. 방광에 차는 오줌이야 때 되면 비워진다지만 어디에 차는지도 모르는 피로는 비워낼 길이 없었는데, 소윤이 웃는 걸 보니 싹 사라졌다.
아내는 머리가 띵하다고 했다. 컨디션도 썩 좋지 않다고 했다. 새벽부터 쌓인 피로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터지려는 거였나. 아무튼 아내는 내가 보기에도 안색이 별로였다. 한참 놀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밖에서 먹을지 집에 가서 먹을지 고민했지만 아내 상태도 그렇고 속 편하게 집에서 먹기로 했다. 밥하기는 귀찮으니 마트에서 만들어 먹는 물 냉면과 비빔냉면을 샀다.
아내가 서윤이를 먹이고 챙기는 동안 난 소윤이와 시윤이 샤워를 해줬다. 샤워 다 하고 나서는 저녁 준비. 서윤이는 오늘도 상을 다 차리고 자리에 네 식구가 앉는 순간 울기 시작했다. 강서윤 음모론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어쩜 그렇게 자리에 앉자마자 우는지. 아내 먼저 먹으라고 하고 난 서윤이를 안고 달랬다. 아내 다 먹고 나서는 임무 교대.
"아빠. 그럼 오늘은 데칼코마니 못 해여?"
"그렇지"
"히잉. 하고 싶었는데"
"우리 오늘 밖에서 엄청 많이 놀았잖아. 대신 내일 하자 내일"
"내일이여? 교회 가잖아여"
"교회 갔다 와서 하면 되지"
"시간이 있어여?"
"그럼"
소윤이와 시윤이를 재우고 나오는 동안 아내도 거실에서 서윤이를 재웠다. 어쩌다 보니 거실에 눕혔는데 방으로 이동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깰까 봐. 아내는 방에 들어가지 않고 서윤이 옆에,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서윤이가 자기 전에
"엄마, 아빠. 저 네 시간 잘게요"
라고 말해주면 모를까 언제 깰지 모르니 아내는 그게 불안했고, '금방 깨겠지'라는 본능의 부정 회로가 발동하며 편한 잠자리를 취하지 못한 거다. 안타깝게도(?) 서윤이는 밤잠처럼 길게 잤고.
"아, 이럴 거면 그냥 들어가서 푹 잘 걸"
"그러게"
"여보. 토요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네"
"그러게. 고되다"
"고생했어"
"여보도. 고생했어"
애들이랑 보내는 주말이 즐겁고 재밌긴 하다. 내가 어디 가서 이런 행복감을 느끼겠나 싶다. 더불어 내가 어디 가서 이런 피로감을 느끼겠나 싶기도 하다.
행복한 걸로 치면 놀이공원 갔다 온 날 밤이고, 피곤한 걸로 치면 30km 야간 행군을 막 마치고 돌아온 새벽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