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31(주일)
원래 오늘 서윤이와 함께 교회에 가려고 했다. 적어도 지난 주일까지만 하더도 아내와 그렇게 암묵의 결론을 내렸는데, 한 주간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코로나 사태가 다시 너무 심해지다 보니 아무래도 걱정이 됐다. 사실 어제 자기 전까지도
"여보. 내일 서윤이 교회 어떻게 하지?"
"그러게. 괜찮으려나"
"좀 걱정되긴 하지?"
"그러니까"
라고 대화만 나누고 최종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나서야 결론을 지었다. 서윤이와 함께 가는 건 일단 미루기로. 코로나도 코로나였지만 아내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밤새 서윤이가 잠을 너무 안 자는 바람에 아내의 고생이 너무 심했다. 거기에 어제는 두통만 있던 것이 아침에는 약간 열도 났다. 37도, 37.1도의 미열이었지만 때가 때인지라 긴장이 됐다. 아내 스스로도 '뭔가 느낌이 좋지 않다'라고 했다. 그 척도는 가슴이었다. 몸살 기운과 함께 가슴이 조금씩 뭉치고 저릿한 느낌이 많아졌다고 했다. 공포의 유선염 초기 증상이었다. 아무래도 어제의 외출이 아내에게 조금 무리였던 데다가 밤새 피로가 더 쌓여서 그런 듯했다.
아내에게서 아침의 생기와 활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본격적(?)으로 아프지 않고 아주아주 초기의 증상인 게 그나마 감사한 일이었다. '내가 지금 병실에서 나왔나' 싶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영 보기 안쓰러운 낯을 하고 있는 아내에게 인사를 건네고, 소윤이와 시윤이만 데리고 집에서 나왔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 카페에 갔다. 오늘도 바쁘게 아침을 보내다 보니 커피 한 잔을 못 마셔서 커피가 당기기도 했지만, 귀가 시간을 늦추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바로 집에 가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밖에서 더 있다가 가는 걸 좋아했고. 오늘의 깜짝 선물(?)은 마카롱이었다.
"소윤아, 시윤아. 먹고 싶은 마카롱 하나씩 골라"
소윤이와 시윤이는 마카롱을 서로에게 나눠주며 아주 우애 좋은 남매가 되어 꽁냥거렸다. 난 등 대고 커피를 홀짝거리며 둘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기만 해도 될 정도로, 내가 개입할 만한 상황이 없었다. 집에 돌아오다가 일부러 다이소도 들렀다. 살 것도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귀가를 조금이라도 늦추려고.
아내는 우리가 예배를 드리러 간 뒤에 그래도 조금이나마 잤다고 했다. 지금 아내에게 가장 효과가 좋고 필요한 약은 잠이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자야 한다. 아내는 여전히 일반인(?)에 비하면 퀭하디 퀭한 얼굴이었지만 아침보다는 한결 나았다.
"아빠아. 그거 그거 빠주 할머니랑 해떤 거 그거 뭐더라여. 언제 하꺼에여엉?"
"시윤아. 데칼코마니?"
"응. 그거 그거"
"시윤아. 아빠가 오늘 해주신다고 했으니까 언젠가는 할 거야. 그러니까 너무 자주 물어보지 마. 그럼 아빠도 대답하기 힘드셔. 알았지?"
"아라떠"
뭐지. 둘이 짰나. 고도의 기술인가. 점심 먹고 나서 그놈의 아니 대망의 데칼코마니를 드디어 시작했다. '물감'이라는 재료에 일단 잔뜩 움츠러들었는데 생각보다 수월했다. 일단 둘 다 도화지 안에만 물감을 짜야 한다는 대원칙을 아주 잘 지켰다. 가끔 아니 제법 도화지 밖으로 튀는 물감이 있었지만 그건 고의는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짧았다. 한 30-40분 했나.
아침부터 '오늘은 셋 다 데리고 나가야지'라고 생각했다. 데칼코마니를 끝내고 잠시 쉬었다가 외출 준비를 했다.
"여보. 서윤이도 데리고 나갈게. 여보는 집에서 좀 쉬어. 진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누워서 자던가 아니면 누워서 휴대폰이라도 보던가. 대신 아무것도 하지 마. 알았지?"
서윤이는 나가기 조금 전에 수유를 했다. 수유지만 주유랑 비슷한 개념이네. 연료를 가득 채워야 다음 주유까지의 여유가 길어지니까.
외출의 목적지는 동네였다. 그냥 동네 산책. 소윤이와 시윤이는 킥보드를 타고 서윤이는 유모차를 타고. 서윤이는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금세 잠들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킥보드를 타고 쌩쌩 달렸다. 혹시라도 규칙(찻길이 나오면 미리 멈추기,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기, 모범 운전하기 등등)을 지키지 않고 일탈을 하면 서윤이가 있으니 즉시 통제하기 어려웠겠지만 소윤이와 시윤이가 그나마 규칙을 잘 지키며 타는 편이라 괜찮았다. 물론 아내 혼자 셋을 데리고 외출할 때는 소윤이와 시윤이한테 킥보드를 허락하지 않고 그냥 걷게 한다.
'동네 산책' 이었으니 특별히 머물 목적지는 없었다. 그냥 걸었다. 애들은 타고. 그러다 소윤이가 좋아하는 '미니 바이킹'을 또 만났다.
"아빠. 저 바이킹 타고 싶어여"
"소윤아. 아빠 현금이 하나도 없어"
"왜여?"
"카드만 가지고 왔지. 진짜로 현금이 하나도 없어. 다음에 타자"
"타고 싶은데"
"현금이 없다니까. 카드로는 계산이 안 되고. 어떻게 해?"
"아빠. 아빠가 돈 보내드리는 것도 안 되여?"
"응. 현금이 있어야만 한대. 오늘은 없으니까 다음에 타자"
"알았어여"
정말 현금이 없었다. 소윤이는 너무 아쉬웠는지 자리를 뜨지 못하고 계속 다른 사람이 타는 걸 구경했다. 겨우 설득해서 다시 산책을 시작했다. 다행히 서윤이는 유모차에서 곤히 잤다. 목적도 방향도 없이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가 은행(ATM)을 마주쳤다.
"소윤아, 잠깐만. 기다려 봐"
만 원을 인출했다.
"아빠. 왜여? 돈 뽑았어여?"
"응"
"바이킹 태워 주려고여?"
"응. 가자. 강소윤. 바이킹 타러"
소윤이의 발구름이 한결 경쾌해졌다.
"아빠아. 저는 무더워서 시더여엉. 안 타 꺼에여엉"
"그래. 시윤이는 구경만 해. 누나만 타라고 할게"
시윤이는 진심으로 무서워했다. 누나가 타는 것만 봐도 무섭다며 누나 타는 거 구경도 안 하고 멀찌감치서 킥보드를 탔다. 소윤이는 정말 하나도 안 무서워했다. 내내 환한 얼굴로 나의 포즈 요청에도 응할 정도였다. 시윤이는 목마를 태워주는 걸로 꼬셔서 어깨 위에 앉히고 바이킹을 타는 소윤이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아빠. 너무 재밌어여"
"그렇게 재밌어?"
"네. 다음에는 끝에 타 볼래여"
"그래. 다음에 또 타자"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아마 놀이공원에 갔을 거다.
그러고 나서도 한참 더 놀았다. 사실 딱히 할 게 없었지만 아내의 독수공방 시간을 늘려주기 위해 괜히 마트 구경도 가고, 일부러 멀리멀리 돌아서 가고. 서윤이는 몇 번 꿈틀거리기만 하고 깨지는 않았다. 집에 돌아갔을 때도 계속 잤다. 유모차를 현관에 들여놓고 서윤이도 그대로 눕혀놨다. 아내는 계속 누워 있기는 했는데 푹 잔 건 아닌 듯했다. 그래도 어쨌든 혼자 아무것도 신경 안 쓰고 있었으니 조금 나았을 거다. (라고 믿는다)
점심이 조금 늦기도 했고 고기를 구워 먹어서 저녁때 배가 많이 고프지 않았다. 사실 아이들이 정말 어떤지는 정확히 모른다. 합리적 추론이었다. 애들한테 물어봐도 별로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하니 밥 대신 떡과 과일로 저녁을 대신했다. 서윤이는 여전히 유모차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모두 재우고 나왔는데도 서윤이는 그대로였다.
"여보. 깨워야 하나? 밤에 안 자면 어떻게 하지?"
"그러게. 너무 잘 자네"
서윤이 입장에서는 안 자면 안 잔다고 재우고, 잘 자면 잘 잔다고 깨우냐고 따질 법했다. 물론 아내와 나는 깨우지 않았다. 깨우려면 진작에 깨웠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밤에 잘 자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아까 안 잤으니까 이따가 자는 것도 아니고 아까 잤으니까 이따가 안 자는 것도 아니다. 그냥 뭐가 됐든 일단 자면, 감사합니다 하고 어떻게든 누리는 게 최선이다. 물론 오늘처럼 '외출 중에 유모차에서 잠든' 워낙 특이한 상황일 때는 당연하다는 듯 대하는 게 쉽지 않긴 하다.
서윤이는 정말 계속 잤다. 아내와 내가 자러 들어가야 할 시간까지. 아내가 먼저 들어갔다.
"여보. 서윤이 깨면 나 깨워. 알았지? 어차피 수유해야 되니까"
"알았어"
"금방 깨겠지?"
"글쎄"
아내는 자러 들어갔고 서윤이는 한 15분 후에 소리를 냈다. 우는 서윤이를 안고 방에 들어가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아내는 눈을 떴다. 뭐라고 옹알거리면서. 일단 그러고 다시 거실로 나왔는데 아내의 기척이 없었다. 서윤이가 좀 달래지면 내가 안고 있으려고 했는데 사납게 울어댔다. 사납게.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서윤이의 얼굴을 아내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서윤이는 혓바닥을 내밀고 아내의 얼굴을 홀짝거렸다. 아내는 일어났고 서윤이를 아내에게 양도하고 나왔다.
그 뒤로 서윤이나 아내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그래도 잠들었다. 맙소사. 서윤이가 놀랍다. 도대체 몇 시간을 연속으로 자는 건지. 다행이고 감사했다.
와, 벌써 월요일이라니. 내 주말 누가 훔쳐 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