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1(월)
"아빠. 저는 아빠가 회사 안 갔으면 좋겠어여. 옛날에 아빠가 회사 맨날 안 갔을 때 그때가 너무 좋았어여"
주말을 진하게 보내고 난 소윤이의 소감이었다. 소윤이가 자본주의 사회의 냉정한 현실을 알아차리기에는 너무 어리긴 하다. 어려도 한참 어리지. 나도 이제야 조금 깨닫고 있으니까.
낮에는 장모님이 오셨다고 했다. 친정 엄마나 시어머니의 방문은 당연히 큰 힘이자 도움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힘든 점도 양산한다. (아내나 내가 볼 때, 평소 우리가 가르치는 걸 기준으로 보면) 할머니에게 너무나도 버릇없이 굴고, 할머니를 방패 삼아 아내의 말도 안 듣고. 주로 이런 거다. 내 아이의 악한(?) 모습을 여과 없이 보는 건 생각보다 고통스럽고 어떨 때는 짜증이 난다. 아내처럼 하루 종일 아이와 붙어 있는 엄마는 그걸 피할 수도 없고.
장모님은 오늘도 아이들과 물감 놀이를 하셨다. 아내는 서윤이와 함께 방에 있었는데 이런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어우. 소윤아, 시윤아. 그렇게 아무 데나 하면 어떻게 해. 할머니 말을 좀 들어야지. 이러니까 니네 엄마가 물감 놀이를 안 하지"
소윤이의 특성상, 단 한순간도 할머니를 가만히 두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할머니여도 힘든 건 힘든 거다. 소윤이가 태어났을 때 50대 초반이셨던 할머니들도 이제 60대가 되었으니 그만큼 힘이 부치기도 하실 거고. 소윤이가 할머니와 있을 때도 조금만 더 말을 잘 듣고 모범적이면 좋을 텐데.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소윤이는 할머니가 조금만 뭐라고 해도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위험한 행동을 해서 하지 말라고만 해도)
"엄마, 아빠가 혼내는 건 괜찮지만 할머니까지 그러는 건 너무 싫다"
라며 서럽게 운다. 오늘도 그랬다. 이 모든 걸 하루 종일 조율해야 하는 아내는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하고.
아내와 아이들의 낮 풍경이 이렇다.
주말을 보내고 난 뒤라 아빠를 향한 그리움이 컸을 텐데 하필 일이 좀 밀려서 퇴근이 늦어졌다. 그렇다고 밤늦게 들어온 건 아니었고 평소보다 1시간 30분 정도 늦었다. 아내는 애들을 먼저 재우겠다고 했다. 나를 기다리기에는 애들도 힘들고 아내는 더 힘들었을 거다. 아내와 나의 저녁으로 먹을 쉑쉑 버거를 내가 사서 가기로 했다.
햄버거도 사고 거의 집에 도착했을 때쯤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이제 주유소 있는데쯤"
"거의 다 왔네"
"응. 왜?"
"아니. 애들이 아빠 얼굴 보고 자고 싶다고 해서"
"아, 그래?"
"그럼 누워서 기다릴 테니까 들어오면 애들한테 인사하고 나가"
"그래, 알았어"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를 아주 환하게 반겼다. 느껴졌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진심, 아빠를 향한 애정이. 그야말로 인사만 나누고 문을 닫고 나왔다. 서윤이는 내가 안고 나왔다. 방금 막 수유를 마쳤기 때문에 바른 자세로 안고 소화를 좀 시켜야 했다. 서윤이를 안고 거실을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했다. 가끔 'TV 동물농장' 같은데 나오는 동물원에 갇힌 동물이 보여주는 이상 행동처럼 좁은 거실을 계속 빙빙 돌았다. 앉으면 울고 서면 그치고, 멈추면 울고 움직이면 그치고. 몇 번을 경험해도 신비로운 울음의 세계다.
아내는 나오는 데 한참 걸렸다. 그래도 그 사이 서윤이가 내 품에서 잠들었고, 눕혔더니 깨지 않았다. 햄버거는 다 식었지만 거실에는 아내와 나 둘뿐이었다.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먹는 따끈한 햄버거보다는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먹는 차가운 햄버거가 백배 낫다. 수다를 곁들이며 한껏 여유로운 저녁을 먹었다. (말이 저녁이지 엄청 늦은 시간이었다)
서윤이는 오늘도 깨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여보. 요새 계속 이러네. 이 시간에 자서 새벽에 깨고"
"그러게. 좋네.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
"그러지 않을까?"
이런 대화를 나누며 희망을 키웠다. 부디 희망 고문이 아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