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의 행복

20.06.02(화)

by 어깨아빠

서윤이는 이제 낮이밤져(낮엔 이기고 밤엔 지고)가 되기로 했나. 알람 소리에 눈을 떴을 때 아내는 안 자고 있었다. 아니 못 자고 있었다. 서윤이는 2시부터 깨서 6시까지 안 잤다고 했다. 내가 일어났을 때도 헤롱헤롱하긴 했지만 자는 건 아니었다. 밤을 새우다시피 한 아내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에는 도와주기가 어렵다. 출근을 해야 하니까.


일단 나와서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깨서 방에서 나왔다. 둘 다 다시 잘 눈빛은 아니었다. 어차피 자지도 않을 거 괜히 방에 들여보내서 아내의 잠을 방해하느니 어떻게든 밖에 머물게 하는 게 나아 보였다.


"소윤아, 시윤아. 이리 와 봐"


아침부터 소윤이와 시윤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월요일 아침 조회시간의 교장선생님처럼 훈화 말씀을 시작했다. 사실 부탁에 가까웠다.


"어제 서윤이가 한숨도 안 자서 엄마가 하나도 못 주무셨대. 그러니까 오늘은 아빠 출근해도 방에 들어가서 엄마 자는 거 방해하지 말고 거실에서 소윤이랑 시윤이랑 둘이 놀아. 알았지? 저러다 엄마 쓰러지셔서 병원에 가시면 어떻게 해. 엄마 오늘은 진짜 조금 주무셔야 돼. 알았지. 방에 들어가지도 말고 들락날락하지도 말고, 서윤이가 울어도 들어가지 마. 엄마가 다시 수유하고 바로 재우실지도 모르니까. 오늘은 엄마 나오시기 전까지는 들어가지 말고 계속 거실에 있어. 알았지?"


주말 같은 때 보면 시윤이는 먼저 일어나면 누나한테 거실에 나가서 놀자고 하는데 소윤이는 그냥 방에 있을 거라면서 아내와 나의 단잠을 방해하곤 한다. 그럼 또 시윤이는 누나가 안 나간다고 징징대고, 소윤이는 소윤이대로 시윤이가 억지라고 징징대고. 아내와 나는 잠이 깨고. 아무튼 그런 이유로 오늘도 소윤이를 집중 공략했다. 아무래도 시윤이는 누나를 따라가게 되니까.


과연 진짜 소윤이, 시윤이가 아빠의 말을 새겨듣고 안방을 침입하지 않을는지 서윤이는 이제 좀 잘는지 걱정하던 차에 방에서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내는 출근하는 나에게 인사를 건네려고 잠시 거실에 나왔다. 서윤이를 낳았던 날 밤 이후로 가장 상한 얼굴이었다. 부디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기를, 소시서 삼 남매가 엄마를 좀 놓아주기를 바라며 출근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버지의 유훈(?)을 받들어 서윤이가 아무리 크게 울어도 절대로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문제는 가장 중요한 서윤이가 안 잤다는 거다. 언니와 오빠가 그렇게 굳게 마음을 먹고 협조했지만 서윤이는 자지 않았다. 서윤이가 안 잤으니 당연히 아내도 못 잤고.


그런 상태에서도 아내는 점심에 아이들과 피자를 만들어 먹었다. 시켜 먹은 게 아니라 '만들어' 먹었다. 또띠야로 도우를 대신하고 집에 있는 재료와 토마토소스를 넣은 약식 피자였지만, 과정은 결코 약식일 리가 없다. 과연 아내의 육아 능력치는 어디까지인가 궁금하다. 평소에는 아이들의 일이 아니지만 가끔 함께하는 걸 허락하는 것. 이를테면 요리라던가 화분에 물 주기 같은 행위들. 이런 류의 활동을 시작할 때는 언제나 마음이 너그럽다. 핑크빛 미래를 상상한다. 참여권과 자율권을 부여받은 자들이 부여받은 권리를 넘어서는 행동만 하지 않으면 되지만 상황이 언제나 그렇게 흐르지는 않는다. 가끔은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하고. 그러니 굳이 불확실한 시도를 하지 않을 때도 많고. 그래도 오늘은 무사히, 끝까지 웃으면서 끝났다고 했다. 사진 속 소윤이와 시윤이의 표정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여기까지가 고작 오전의 일이었다.


아내는 오늘 시윤이 낮잠을 재워 볼 거라고 했다. 낮잠 자면 밤에 다 함께 어디라도 갔다 오자고 했다. 평일에 퇴근하면 밥 먹고 자기 바빴고 어제는 그마저도 못 했으니까. 아이들과 아빠의 시간, 우리 가족의 시간을 위한 계획이었다. 다행히 시윤이는 잘 잤고 나의 행복한 야근 아니 가족 데이트는 확정되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날씨가 흐리길래 일기 예보를 확인했더니 비가 온다고 되어 있었다. 실제로 비가 내리지는 않았지만 하늘이 잔뜩 흐렸다. 동네 산책을 하다가 중간에 비가 내리면 여러모로 피곤할 거 같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만 있는 게 아니고 유모차에 탄 서윤이도 있으니까. 차를 타고 가까운 카페에 가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냥 산책을 원했지만(정확히 말하면 산책이 아니라 자전거와 킥보드를 노렸겠지) 카페 가는 것도 기쁘게 받아들였다. 평일 밤에, 자야 할 시간에, 자지 않고 외출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했다.


카페에 그리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아내와 나는 커피 한 잔씩, 소윤이와 시윤이는 과자 한 봉지, 서윤이는 모유 한 끼. 딱 이렇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돌아와 애들을 재우고 나오니 10시였다.


"여보. 이 정도는 각오하고 나간 거잖아"

"맞아"


혹시나 나중에 애들이 오해할까 봐 적어놓는다. 요즘의 이런 밤낮 없는 육아 인생이 물론 엄청 고되고 힘들긴 하지만 사실 엄청 즐겁고 행복하기도 하다. 굳이 밤에 나가는 것도 물론 아이들을 위한 것도 있지만 나도 나가서 애들이랑 놀면 재밌어서 그런 거다. 죽어도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하면 너무 좋은데 그만큼 힘드니까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힘들어도 좋은 걸 선택한달까. 야근 수당이지 뭐.


아무튼, 아빠 지금 행복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