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5(금)
아내는 아침부터 힘이 없다고 했다. 어디가 아프거나 정신이 털렸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야말로 단순 근력 부족 현상. 평소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꺾이고 굽는 부분은 다 아픈 듯했다. 목, 어깨, 팔꿈치, 손목, 손가락 마디, 허리, 등, 골반, 무릎, 발목. 골고루. 나이 때문인지 (다들 아직은 젊다고 하지만 어쨌든 소윤이 낳았을 때보다는 6년이 늙었으니) 아니면 거듭되는 출산 때문인지. 옆에서 보기에 몸이 소모되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오늘은 그냥 힘이 없다고 했다. 연애할 때 놀란 게, 가끔 어떤 식당에 가면 "오빠. 숟가락이 너무 무겁지 않아요?"라며 자기는 무거워서 손목이 아프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처음에는 연기하는 건가 싶었지만 진짜였다. 그만큼 근력과 담을 쌓고 태어났는데 그마저도 사라졌으니.
아내의 "힘이 없다'라는 표현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고민하다가 금요 예배를 인도하시는 전도사님께 양해를 구했다. 오늘은 대체 연주자를 좀 구해달라고(평소에도 종종 그러긴 하지만).
좋은 결정이었다. 퇴근하고 마주한 아내는 또 녹아내리고 있었다. 날씨까지 더워져서 더 지치는 듯했다. 애들도 하루 종일 땀을 삐질삐질 흘려서 꼴이 말이 아니었다.
"여보. 애들 샤워를 좀 시켜야 할 거 같아. 낮에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순간 위기였다. 다음 날이 주말이라 좋기는 하지만 어쨌든 한 주를 버티고 버틴 금요일이기 때문에 육체와 마음의 피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샤워]라는 성가신 일이 갑자기 등장하니 짜증이 났다. 자칫 잘못하면 "여태까지 샤워도 안 시키고 뭐 했냐"라는 의미를 담은 것처럼 보이는 짜증을 낼 뻔했다. 짜증도 타이밍이다. 다행히 나도 모르게 참아졌다. 아내가 혹시라도 나에게서 음산한 기운을 느꼈다면 그건 고되니까 다정하지 않은 정도였을 거다.
집에 자동으로 머리 말려주는 기계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미용실에서 파마약 바르고 열 쬐주는 그런 기계처럼, 앉아서 가만히 있으면 바람이 나오는 기계. 소윤이 머리 말려주는 게 너무 힘들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재우고 고된 하루, 일주일의 육아를 끝마쳤다. 다시 한 번 생각해도, 오늘 교회를 가지 않고 아내의 곁을 지킨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아내는 녹다 못해 증발했을 거다.
아내는 서윤이를 안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서윤이는 그대로 잠들었고 아내와 나는 진정한 퇴근을 맞이했다. 아, 참. 아내에게는 퇴근이란 게 없지만.
서윤이는 자정이 다 되어서 깼다. 잠을 잘 잤는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거실에 눕혀놨는데 날 보더니 생글생글 웃었다. 계속. 내 눈을 쫓아다니면서.
"여보. 얘 봐. 진짜 나 보고 웃는 거 같아"
"그러게. 진짜 계속 보네"
"오, 대박"
한참 서윤이랑 놀았다. 서윤이랑 뭔가 주고받은 느낌은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잘 웃고, 착한 서윤이는 내가 다 누렸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 수유(이기를 바라는 마음에 우린 그렇게 부른다)를 했지만 또 안자눕깨(안으면 자고 눕히면 깨고)를 반복했다. 안자눕께의 피해자는 아내였고. 아내는 몇 번을 들락날락하다가 결국 서윤이가 잠들었을 때 함께 잠들었다.
요즘 아내의 잠든 모습은 뭔가 정갈하지 않다. 모르는 사람이 와서 봐도 "뭐 하다가 갑자기 잠들었나 보네"라고 생각할 정도로 역동적인 자세가 많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누군가에게 뺨을 맞고 쓰러진 듯한 자세.
아내의 자태가 우리의 거칠고 고단한 한 주를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