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6(토)
애초 일정은 여유로웠다. 아침에 타이어 교체하러 가야 해서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서윤이만 협조하면 아내에게는 귀한 휴식의 시간이 될지도 몰랐다. 타이어 교체하는 동안 소윤이, 시윤이와 근처 놀이터나 공원에서 놀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세차하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고압수 뿌리는 것 때문에 세차하는 걸 재밌어한다) 집에 와서 점심 먹고 쉬다가 늦은 오후에는 같이 처치홈스쿨하는 가정과 공원에 가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최소한의 짐(지갑, 휴대폰, 물티슈)만 챙겨서 아이들과 함께 나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의 외출이 그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타이어 교체하기로 한 곳이 파주에서 가까웠다. 30분을 달려서 도착했는데 장인어른이 기다리고 계셨다. 장인어른도 차 때문에 나오셨다가 우리가 타이어 교체하러 온다는 걸 알고 잠깐 얼굴이라도 보시려고 기다리신 것 같았다.
날씨가 무척 더웠다. 그 뙤약볕에 애들이랑 밖에서 자전거와 킥보드 탈 생각만 해도 (나는 타는 것도 아니지만) 땀이 흐르는 느낌이었는데, 장인어른의 등장으로 야외 활동을 면했다. 타이어 교체하는 동안 잠시 카페로 갔다. 파주(처갓댁)에 있는 카페였다. 가면서 장모님께 전화를 했다.
"할머니"
"어, 소윤아"
"할머니 어디에여?"
"할머니 집이지. 소윤이는?"
"어, 우리는 영칠 카페 가고 있어여"
"영칠 카페?"
"네. 할머니도 나와여"
"할머니는 너무 피곤해서 못 나갈 거 같아"
"네"
소윤이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내가 보기에도 생소한 전개였다. 장모님의 '못 나가'는 진짜였을지 아니면 농담이었을지 궁금했다. 내 생각에는 반반이었던 거 같다. 아마 소윤이가
"아아, 할머니 나와여. 우리 잠깐이라도 보자여"
이랬으면 바로 나오셨을 거 같다. 소윤이는 조금의 여지도 없이 바로 수용해 버렸다. 역시 내 추측이지만 장모님은 좀 서운하셨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시윤이 입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닦아주려던 장인어른이 당신 앞에 놓여 있던 커피를 툭 쳤다. 제대로 쓰러진 잔은 내용물을 모두 쏟아냈고 고스란히 시윤이에게 흘렀다. 시윤이의 티셔츠와 바지는 커피로 물들었다. 어쩌면 이게 오늘의 복선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장모님도 카페로 나오셨다. 나와 아이들은 이동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장인어른 차를 타고 타이어 가게로 갔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걸 확인하고 다시 방향을 트는 순간 전화가 왔다.
"아, 저기 잠깐 이쪽으로 오셔야겠는데요"
타이어 교체하려고 차를 들었는데 오일이 새고 있다는 거였다. 실제로 내 차는 부모 잃은 자식이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오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오후 3시는 되어야 수리가 된다고 했다. 그때가 11시 조금 넘었을 때였다. 어쩔 수 없이 다시 파주(처가댁)로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신났고.
나가서 점심도 먹고 카페도 또 갔다. 그렇게 밖에 있다가 타이어 가게로 가려는 생각이었는데 수리가 다 됐다는 연락이 없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결국 다시 처가댁으로 갔다. 날은 덥지, 애들은 말 안 듣지(정확히 말하면 할머니, 할아버지 앞이라고 또 뺀질거리지), 수리는 언제 끝나는지 모르지. 엄청 힘들었다. 차라리 작정하고 왔으면 모를까 갑작스럽기도 했고 수리 완료는 기약이 없고. 1분 1분이 지날수록 야금야금 진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원래 김포에 회 드시러 가실 계획이었다고 하셨다. 회는커녕 손주들한테 시달리기만 하셨다. 이건 내 추측이지만 장인어른, 장모님도 아마 고단하셨을 거다. 작정하고, 보고 싶은 마음 가득인 상태여도 힘든 게 소윤, 시윤 조합인데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거기다 하루 온종일이라니. 소윤이와 시윤이만 빼고 모두 지치는 느낌이었다.
차 수리는 다섯 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하루 종일 아내는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여력도 없었다. 사실 장인어른, 장모님이 애들이랑 놀아주셔서 난 잠깐 눈도 붙이고 그랬지만, 뭔가 힘들었다. 들어보니 아내도 썩 편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2개월 된 아기랑 지내면서 편해 봐야 얼마나 편하겠냐마는 그 와중에도 조금 더 나은 상황이라는 건 있으니까. 다른 거 없다. 서윤이가 잘 자면 그게 최고다. 마음 편히 두 다리 쭉 뻗고 대자로 누워서 쉴 시간이 거의 없었던 거 같았다.
저녁 약속을 조금 미뤘지만 그 시간도 맞추기 힘들었다. 아내는 서윤이와 함께 택시를 타고 중간 지점으로 나왔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 우리(나와 소윤이, 시윤이)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택시에서 내리는 아내와 서윤이가 왜 그렇게 반갑던지. 오늘 내가 얼마나 힘들었고 기다림에 지쳤는지 미주알고주알 토로하고 싶었지만 난 절 있는 남편이니까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내 몸은 끊임없이 외쳤다.
"약속이고 뭐고 집에 가서 좀 쉬자!!!!"
이미 주말에 써야 할 체력을 다 쓴 거 같은데 또 공원이라니. 몸은 거부했지만 이성으로 잘 타일렀다.
그나마 공원 자체가 좋긴 했다. 사람이 좀 있기는 했지만 바글바글한 것도 아니었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텐트도 칠 수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지치지도 않는지 도착하자마자 놀러 가자고 난리였다. 공원에 놀러 왔는데 또 어딜 놀러 가자는 건지. 소윤이와 시윤이를 따라 물가에도 갔다가 우는 서윤이 안고 달래주기도 했다가. 텐트가 있긴 했지만 앉을 시간은 별로 없었다.
내 체력이 조금만 더 받쳐줬으면 훨씬 재밌게 놀기 좋은 곳이었다. 다음에 체력 정비 잘 해서 다시 한번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보. 다음에 경기도민들 다 호출하자"
"경기도민? 누구?"
"오빠네랑 장인어른, 장모님"
공원에서도 제법 시간을 보냈다. 해가 다 지고 어둑해졌을 때 돌아왔다. 10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도저히 그냥 재우기가 어려웠다. 하루 종일 땀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아니까. 꾸역꾸역 샤워를 시켰다. 너무 피곤했다. 내 차가 소중한 나의 주말을 훔쳐 간 느낌이었다.
애들 재우고 나왔더니 10시 30분이었다. 우와. 넋이 나간 채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서윤이도 잔다는 거였다. 애들 눕힐 때같이 눕혔는데 혼자 엄청 중얼거리다가 조용해졌다. 울지도 않았고.
아내는 자꾸 나보고 치킨을 먹으라고 했다. 하루의 고단함과 스트레스를 치킨 뼈와 함께 날려 버리라는 아내의 깊은 뜻이었다. 만사가 다 귀찮았다.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고 싶었다. 아내에게 모든 걸 일임했고 아내는 떡볶이를 배달시켰다.
그 야밤에 떡볶이를 먹으며 아내랑 수다를 떨었더니 오늘의 수고가 조금은 잊혔다. 만약에 서윤이가 안 자고 계속 칭얼거려서 나나 아내가 봐야 했다면, 그래서 이런 수다 시간이 없었다면. 오늘의 수고와 피로는 매듭을 짓지 못한 채 내일로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최고의 육아 동지와 함께 오늘의 노고를 나누고 서로 얼마나 격렬한 전투를 벌였는지 주고 받는 게 최고의 해갈이다. 적어도 나는.
그나저나 얘들아. 아빠 오늘 진짜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