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4(목)
아내는 오늘도 오전부터 시윤이 때문에 고생이었다. 아내는 '인간적으로 화가 난다'라고 표현했다. 걸리기만 걸려 봐라라고 작정한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시시콜콜한 것을 이유 삼아 떼를 쓰고, 울고 그러니까 질린 거다. 끝없는 육아에 몸이 지친 것하고는 좀 다른 거였다.
"어우!!! 정말!! 왜 그래!! 왜!! 왜!! 왜!!"
이렇게 소리 지르고 싶은 욕망이 머리끝까지 찼을 거다. 아내는 계속 보고 있으면 그렇게 될까 봐 작은방으로 피신했다고 했다. 참으로 누추한 피신이 아닐 수가 없다. 몇 분이나 피해 있었을까.
이런 아내에게 필요한 건 분리였다. 어제처럼 또 내가 애들을 데리고 나가는 것도 괜찮았겠지만 조금 더 질 좋은 분리를 선사하려면, 하루 종일 뒹군 육아의 장 자체에서 벗어나는 것도 좋아 보였다.
[오늘은 서윤이가 잘 자주면 여보 잠깐이라도 나갔다 와. 애들 자면]
당연히 서윤이 낳고 나서는 한 번도 자유 부인이 되어 본 적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서윤이는 아직도 2-3시간에 한 번씩은 수유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아내에게 자유를 주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았다.
안타깝게도 하필 오늘 치과에 가야 해서 퇴근하고 치과에 들렀다. 시간이 늦은 만큼 애들은 저녁은 이미 다 먹은 상태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씻고 재우는 동안 서윤이의 마지막 수유가 진행됐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금방 잤다. 아내는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불안해하며 나가지 못했다.
"여보. 얼른 나가라니까. 그만하고"
아내는 내 저녁도 차려 놓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붙잡고 '이것만 해놓고' 나가겠다며 나가지 못했다. 왜 그러는지는 안다. 그러니 옆에서 더 강력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얼른 나가라고 채근했다.
마지막 수유를 마친 서윤이는 잠이 들었고 1차로 침대에 눕혔지만 바로 깼다. 엄청 서럽게 울면서. 식탁에 차려진 저녁을 먹지 못하고 다시 서윤이를 안았다. 아내는 이때쯤 나갔다. 너무 갑작스럽게 결정되긴 했지만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자유를 향한 첫 발을 내딛은 순간이었으니까.
한참 서윤이를 안아서 재우고 다시 침대에 눕혔다. 오징어처럼 꾸깃거리지 않고 가만히 있길래 서둘러 거실로 나왔다. 식탁에 앉아 밥을 두 숟가락 정도 떴을까. 서윤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다시 안았다. 너무 배가 고팠다. 우는 서윤이를 안고 밥을 먹어볼까 했는데 도저히 각이 나오지 않았다. 더 한참 안아서 재우고 다시 눕혔다. 잤다. 속도를 내서 밥을 먹었다. 언제 깰지 모르니까.
맛있게 먹었다. 언제 주인이 와서 구박할지 모르는 머슴처럼 우걱우걱. 마지막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자마자 주인님이 아니 서윤이가 나를 불렀다.
"으에에에에에에에엥 (아빠놈아 이리 오너라)"
눈물 나게 고오맙네. 무려 딱 밥 먹을 시간이나 하사하다니. 다시 서윤이를 안았다. 고작 62일 핏덩이지만, 이 녀석의 목적은 분명했다.
'날 안아서 재우시오'
잠투정이었다. 안아주면 금세 울음이 그치고 눈이 감겼다. 이제 더 이상 방 안 침대에 눕히는 건 포기했다. 그냥 안고 있기로 했다. 이 악랄한 주인 아니 서윤이는 소파에 앉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하아. 너무 야박했다. 앉는 것도 포기하라니. 네댓 번을 반복했다. 그렇게 앉고 서는 밀고 당기기로 2시간을 보냈다. 정신이 피폐해지지는 않았다. 물론 소파에 앉아 있을 때 서윤이가 울기 시작하면
"아으. 서윤아. 아빠 좀 앉아 있게 해 줘라"
라고 혼잣말 혹은 탄식을 내뱉긴 했지만 거기에는 분명히 따뜻함이 느껴졌다. 스스로도. 마치 아빠의 얼굴을 보고 웃는 것 같은 '웃는 표정'도 종종 보였는데, 이건 말로 표현이 안 된다. 내가 낳은 자식이 처음으로 나를 알아보고 웃는 것 같은 그 느낌이란. 물론 시윤이 때를 생각하면 이건 막내 특수인 듯도 하고. 어쨌든 그러니 그 고통 아니 눈물의 아니 행복한 두 시간을 보냈지.
서윤이는 아내가 돌아올 때까지도 나에게 안겨 있었다. 그때 눕혔더니 깨지 않고 잤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는 육아의 진리. 왜 꼭 아이들은 그날의 양육자의 고생이 무색하게 다른 양육자가 오면 천사가 되는가.
아무렴 어떠리. 시한부긴 했지만 자유의 향기를 맡고 온 아내의 얼굴이 폈으면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