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목)
오늘은 형님(아내 오빠)가 집에 온다고 했다. 육아력(?)으로 따지자면 할머니들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아내에게는 더 편하기도 할 거다. 할머니들처럼 고급 기술은 없어도 어쨌든 소윤이와 시윤이랑 잘 놀아준다. 그에 비해 친정 엄마, 시어머니를 대하는 것처럼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된다. 물론 아내가 오빠를 막 대하는 건 절대 아니고. 또 아내의 육아 가치나 규칙을 함부로 침해하지도 않는다. 사실 무엇보다 둘 사이가 좋다.
아내는 장모님이 주신 반찬도 가져다주고 오빠도 데려다줄 겸 형님네 집에 갔다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쿠키 가게도 들르고 김밥집도 들르고. 애 셋 데리고 참 잘 다닌다.
퇴근하고 치과에 들러야 해서 귀가가 좀 늦었다. 애들은 밥을 다 먹었고 나만 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 식탁에는 혼자 앉아 있었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다. 이럴 때는 주로 시윤이가 와서 내 상대를 해준다. 애교도 부리고 장난도 치고.
"아빠 보고 싶었어?"
"보고 지퍼쪄어"
"얼만큼?"
"배애깨 너엄깨(백개 넘게)"
아내가 아이들을 씻겼다. 난 서윤이를 안고 있었다. 서윤이는 졸린 듯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시간'이라는 개념을 적용하기 어려웠는데 이번 주의 추이를 봐서는 9시 근처가 서윤이의 '잘 시간'이었다. 아내가 애들 셋을 모두 데리고 들어갔다. 요즘 맨날 나랑 자니까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마와의 동침'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
사실 요즘 애들한테 미안할 때가 종종 있다. 퇴근하고 오면 씻기고 재우는 데만 너무 열중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어쨌든 아빠의 퇴근을 많이 기다렸을 텐데 오늘같은 날은 그야말로 아빠랑 노는 시간도 없이 잤으니까. 아주 짧게 좀 더 놀다 잘까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일단 내가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간절히 육아의 종료를 바랄 아내가 생각나기도 하고. 모자란 건 주말에 열심히 채워주고 있으니.
오랜만에 모두 방에 들여보내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아내는 한참 나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엄마랑 자서 그런가 소윤이가 쉽게 잠들지 못했다. 아, 서윤이도.
서윤이는 결국 내가 다시 데리고 나왔다. 아내도 나왔다. 소윤이가 잠들지 않았지만 그거 기다리다가는 하루가 갈 판이었다. 데리고 나온 서윤이를 품에 안고 이리저리 배회하며 다시 재웠다. 침대에 눕히려고 다시 방에 들어갔다. 소윤이는 여전히 깨어 있었다. 서윤이를 눕히고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또 울음소리가 들렸다. 다시 들어가서 데리고 나왔고 또 안아서 재웠다. 다시 도전. 아까처럼 눕히고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느낌이 달랐다.
"여보. 일단 그냥 둬 보자"
"그래"
그렇게 서윤이하고는 안녕. 이제 정말 서윤이가 '예측 가능한'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신생아 육아가 힘든 건 모든 것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건데, 그게 조금씩 걷히니 점점 나아진다. 삶의 질이.
덕분에 '애들 재우고'의 삶이 조금씩 다시 생기고 있다. 아내가 낮에 부지런을 떨며 사 온 쿠키를 먹으며 시윤이의 퇴보하는 미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여보. 아무래도 시윤이는 이마를 가리는 게 나은 거 같아"
"맞아. 이제 길러주자"
시윤아. 괜찮아. 사람은 누구나 암흑기라는 게 있거든. 그냥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