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나가고 보는 육아

20.07.11(토)

by 어깨아빠

다행히 아내의 상태는 매우 호전됐다. 열은 더 나지 않았고 아픈 기운도 사라졌다.


"여보. 괜찮아?"

"응. 그냥 아프지는 않고. 기운이 없어"


서윤이도 한몫했다. 아침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안 깨고 잤으니. 덕분에 아내도 방해 없이 푹 잤고.


소윤이가 아침으로 토스트가 먹고 싶다고 했지만 당분간 밀가루 섭취를 자제해야 하는 아내를 고려해 밥을 차렸다.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모든 집안일에서 배제시켜야 하는 아내를 대신해 하루의 계획을 구상했다.


'쓰레기 버리고, 세차하고, 옥수수 다듬고'


시도 때도 없이 마법처럼 생겨나는 설거지는 기본이었다. 원래 가까운 공원이라도 가려고 했는데, 갑작스러운 아내의 유선염으로 취소되었다. 나 혼자라도 애들(소윤이, 시윤이)을 데리고 갔다 올까도 생각했지만, 아내가 걱정이었다. 좀 나아졌다고는 해도 아직 완전히 나은 건 아니었고 서윤이랑 둘이 있는 것도 상황에 따라서는 너무 힘들지도 모르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엄두가 안 났다. 베이스 캠프(집)와 너무 멀리 떨어지는 게 부담스럽달까. 소윤이와 시윤이의 외출 욕구도 풀어주면서 아내에게도 좀 쉴 시간을 주면서 언제든 복귀가 가능한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우선 세차. 소윤이와 시윤이가 좋아해서 시간을 보내기가 좋다. 다만 너무 더울 때(오후 2시 다 되어서) 가서 땀을 뻘뻘 흘렸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구경만 하는 건데도 더웠는지 마찬가지로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아빠. 이제 집에 가는 거에여?"

"음, 그건 아닌데. 우리 어떻게 할래? 그냥 카페 같은 데서 좀 앉아 있을까? 아니면 자전거랑 킥보드를 탈까?"

"아빠. 그럼 자전거랑 킥보드도 조금 타고 카페도 가자여"


역시. 소윤이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 애들을 좀 자유롭게 둘 수 있는 카페는 차로 15분 정도 가야 해서 뭔가 번거로웠다. 동네에 있는 작은 카페로 갔다. 엄청 작지만 바깥에 아주 작은 테이블이 있어서 잠시 머물기에는 괜찮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애들이 먹을 빵 한 개를 샀다. 거기에 집에서 싸 온 빵과 우유도.


"아빠아. 엄마두 가치 오지 그래떠여엉"

"엄마는 힘들어서 못 오셔"

"왜여어엉"

"엄마. 아프셨잖아"

"그래두여어엉"


시윤이는 요즘 뜬금없이 엄마를 찾을 때가 있다. 그런 걸 볼 때마다 시윤이 안에 엄마의 사랑을 향한 당연한 갈구가 있는 게 느껴진다. 마음이 넉넉할 때는 이렇게 헤아려지지만 이리저리 치이는 현실 속에서는 그게 잘 안된다는 게 문제다.


날은 여전히 더웠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자전거와 킥보드를 타러 동네 상가 광장으로 갔다. 사람이 별로 없었다. 더웠으니까. 조금 놀고 금방 들어갈까도 싶었지만 아내를 위해 조금 더 시간을 끌었다. 짬짬이 아내랑 통화했는데 상황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오늘은 소윤이와 시윤이가 날 조금 자유롭게 풀어줬다. 대신 나도 그 보답으로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모아서 소윤이와 시윤이의 웃음을 위한 연료로 사용했다.


정말 힘들지만, 또 체력적으로도 지치지만 문득문득 그 순간순간이 너무 감사할 때가 있다. 아니, 항상 감사하겠지만 유난히 그게 느껴지고 보일 때가 있다. 그러고 나면 또 새로운 힘이 생기고. 아무리 힘들어도 평일보다 주말이 좋고 회사보다 집이 좋고. 또 애들도 아내도 날 좋아해 주고.


집에 들어가서는 욕조에 물을 받아서 목욕을 시켜줬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목욕을 하는 동안 난 앉아서 옥수수를 손질했다. 아내가 알려주는 대로 겉껍질을 다 벗기다가 한두 겹 정도만 남기고, 수염은 제거하고. 유기농 옥수수라 그런지 벌레 먹은 게 많았고 상자 밑바닥에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채 생을 마감한 벌레도 많았다. 아내가 했으면 기겁에 기겁을 하면서 중간에 포기했을 테고, 어차피 내가 하게 됐을 거다. 빨리 해치우길 잘 했다.


소윤이는 웬일로 먼저 목욕(물놀이)을 그만하겠다고 했다. 이제 조그마한 욕조에서 말 안 듣고 뺀질거리는 동생이랑 투닥거리는 게 별로 재미가 없나. 아무튼 뭔가 생소한 광경이었다. 그에 비해 시윤이는 저녁 준비가 다 되어서 나오라고 했더니 더 할 거라면서 울고불고 난리고.


내가 건조하게 서술해서 그렇지 세세하게 다 기록했으면 너네(소윤이, 시윤이) 나중에 이거 보다가 너무 죄송해서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릴지도 모른다 이 녀석들아.


마무리가 좋았다(내내 안 좋았다는 건 아니다. 유독 마무리가 좋았다는 뜻이다). 소윤이와 시윤이, 특히 시윤이가 저녁을 너무너무너무 잘 먹었다. 밥을 더 달라고 해서 먹을 정도로. 엄청 졸렸을 텐데. 아침을 좀 늦게 먹고 점심을 빵으로 때워서 배가 고팠나 보다. 역시 좋지 않은 식습관을 고치려면 '허기'를 느끼게 해야 한다 (아내와 나의 필요 - 라고 쓰고 귀찮음이라고 해석도 가능 - 에 의해 점심을 대충 얼버무린 것이지만). 심지어 서윤이도 오늘은 웬일로 저녁을 먹는 시간에 깨서 울지 않고 잤다. 그 시간에 자면 밤에 안 자는 거 아니냐는 걱정을 한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8시가 넘어가면 칼같이 밤잠이고. 기특한 100일 둥이.


아내는 겉보기에는 멀쩡했다. 실제로도 아침보다 오히려 더 나아졌고. 다만 가슴의 통증은 여전했다. 손으로 만져질 정도로 큰 멍울이 잡혔다. 그게 염증이었고 아내는 엄청 아파했다. 예전에 출산과 육아하고는 조금도 상관없던 시절에는 '젖몸살'이라고 하면 그냥 아기 낳고 조금 가슴이 아픈가 보다고 생각했다. 개명이 필요하다. 젖몸살은 너무 약하다.


젖고통, 젖괴로움, 젖몸살인데거의죽다살아나는몸살.


이 정도로?


엄마한테 잘 해라 이 녀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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