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02(주일)
어제 늦게 자서 그런가, 애들이 아침에도 간만에 늦게까지 잤다. (7시 40분을 '늦게'라고 표현해야 하는 슬픈 현실이란.) 아내가 일찍부터 일어나서 부지런을 떨며 애들 밥을 먹인 덕분에 제법 여유 있는 아침시간이었다. 오늘만큼은 늦지 말고 가보자며 의지를 다진 덕분인지 참 오랜만에 제시간에 교회에 도착했다. 예배 중간에 다시 올라오지 않으려고(로비는 1층, 본당은 지하 2층) 소윤이 소변까지 해결하고 본당에 내려갔다. 시윤이는 아기띠로 아내에게 안겨 있었는데 중간에 답답하다며 소리를 많이 내서 아내는 예배당 밖으로 피신했다. 소윤이는 비교적 얌전하게 잘 있었지만 중간에 쉬가 마렵다고 했다. 끝날 때까지 참으라고 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다시 또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나 골탕 먹이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아내랑 나갔던 시윤이는 잠들었고 유모차로 옮겼다. 예배가 끝날 때까지 깨지 않아서 이번에는 시윤이가 누워 있는 유모차를 들고 다시 식당이 있는 1층으로 올라갔다. 식당에 자리가 넓지 않아서 유모차는 멀찌감치 세워 두고 소윤이랑 아내랑 나랑 셋만 밥을 먹었다. 다 먹고 난 뒤 시윤이도 깨워서 밥을 먹였다. 이렇게 오늘도 점심 한 끼 해결.
요즘 소윤이는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어머, 여름에 많이 놀러 다녔나 보네"
"이야, 제대로 놀고 왔구나"
지난주에 한 장로님은 아예 대놓고 물어보셨다.
"아니 근데, 얘는 원래 이렇게 까매요?"
그러게 원래 까만가. 축구모임 회장 집사님은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소윤이는 막 화려하게 예쁜 건 아니야, 얼굴이 막 예쁘고 그러지는 않잖아, 그런데 매주 보니까 은근히 매력이 있어"
요즘 유행하는 묵직한 뼈 때리기 화법이신가. 사실 아내와 나도 늘 얘기하는 부분이다.
괜찮아 소윤아, 아빠 눈에는, 음.
그래, 원래 너무 화려하면 금방 질려. 너네 엄마처럼 화려한데 안 질리는 건 드문 일이지, 암.
무난한 게 오래간다. 넌 오래갈 거야.
오늘부터 내 목장 모임이 다시 시작됐고 목장 모임 끝나면 축구도 하러 가야 했다. 밥 먹고 카페 윌에 들러서 커피를 마셨다. 거기 있다가 난 교회에서 내리고 아내가 애들 데리고 집에 갈 예정이었다. 정말 잠깐, 한30-40분 앉아 있었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시윤이가 자꾸 주방 쪽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만지면 안 되는 거 만지고. 유현준 교수(건축가?)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우리나라에 카페가 많은 이유는 앉아서 쉴 데가 없어서 그런 거예요. 커피값을 낸다기보다는 장소 이용료를 지불하는 거죠"
맞다. 카페에서 시윤이 뒤를 쫓아다닐 때마다 생각한다.
'도대체 이게 웬 사서 고생이람'
동네 곳곳에 조그마한 공원이나 넓은 잔디밭만 있어도 굳이 카페에 앉아 있지 않을 텐데.
(대신 테이크아웃하겠지)
소윤이에게 집에 가면 엄마 화나게 하지 말고 낮잠 한 숨 푹 자고 일어나서 아빠랑 놀자고 당부하며 헤어졌다. 1시 30분부터 3시까지 목장 모임, 4시부터 7시까지 축구였다. 목장 모임 끝나고 아내에게 카톡을 해봤는데 답이 없었다. 혹시나 자고 있는 거 깨울까 봐 전화는 하지 못했다. 한창 축구하고 쉬는 시간에, 한 5시 30분쯤 전화가 왔다.
"여보, 오늘 각오해"
"왜?"
"소윤이 오늘 두 시간 반이나 잤어"
"헐, 진짜?"
"응"
"대박이네, 시윤이는?"
"시윤이는 한 시간 반 정도?"
"여보도 같이 자고?"
"난 잠들었다가 깼고"
"소윤이 진짜 엄청 잤네"
"응, 어제 너무 늦게 자서 그 여파인가 봐"
"하아, 두 시간 반이라니, 아무튼 알았어"
오늘은 뭐 이른 퇴근은 진작에 포기했다. 축구 끝날 때쯤 아내가 애들과 함께 날 데리러 왔다.
"여보, 우리에게는 다음 일정이 있어"
"뭔데?"
"스타필드"
"스타필드? 갑자기 왜?"
"아, 소윤이가 오늘 자기 두 시간 반이나 잤다고 스타필드 가서 놀아야 된대"
"그래"
씻지도 못한 채 윗옷만 갈아입고 상거지 꼴로 스타필드에 입성했다. 평소에 '아무리 대충 입어도 저렇게는 입고 오지 말아야지' 하는 복장을 입은 내 모습이 중간중간 유리창에 비쳤다. 일단 저녁부터 먹으려고 2층에 있는 식당가로 갔다. 저번에 아내가 점찍어둔 곳에서 주문을 했다. 스테이크 조금, 볶음밥 조금, 새우 조금 빵 조금. 뭐 이런 메뉴였는데 맛은 괜찮았으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거기에 배고픈 소윤이 시윤이가 달려드니 더더욱 부족했다. 이제 정말 성인 메뉴 두 개로 나눠먹는 건 불가능해졌나 보다.
"여보, 이제 우리도 질보다 양으로 가야 할 때가 됐나 보다"
애들이 하도 잘 먹으니까 선뜻 먹기도 힘들었다. 옛날에 고기 뷔페라는 게 처음 생겼을 때 엄마 아빠는 늘 거기만 갔다. 엄마가 얘기했다.
"야, 너네들 먹는 거 보니까 무섭다 무서워"
그때는 고기 쑤셔 넣느라 먹는 게 왜 무섭다고 하는 건지 이해를 못했는데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분명히 고기도 있고, 밥도 있고, 새우도 있고 빵도 있고 그랬는데 채식을 한 기분이었다. 사이드로 딸려 나온 할라피뇨랑 피클, 감자 샐러드만 들입다 먹었다. 나중에 애들이 남긴 걸 좀 쓸어먹었더니 그제야 배가 좀 찼다.
소윤이는 젤리 먹으려고 스타필드에 가자고 하나 싶을 정도로 올 때마다 젤리는 꼭 챙겨 먹는다. 위니비니에 가서 젤리, 초콜릿, 사탕을 조금 샀다. 진짜 조금 산다, 늘. 오늘도 1,500원어치. 그걸 보고 소윤이는 이렇게 말한다.
"우와, 오늘도 이렇게 많이 샀네?"
다 큰 것 같아도 순진한 구석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여보, 우리 이제 뭐해?"
"그러게"
이게 문제다. 막상 뭐 할 게 없다. 스타필드의 함정이다. 돈을 쓸 각오만 있으면 할 게 무궁무진한데 주머니를 틀어 잠그는 순간 할 게 없어진다. 소윤이는 애들 장난감 파는 가게 앞에 체험용으로 꺼내 놓은 모래 찰흙을 보더니 거기서 놀겠다고 했다. 소윤이는 놀고, 아내는 그 옆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며 사고, 나는 시윤이를 유모차에 태워서 정처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멈춰 있으면 내려가겠다고 할 거고, 누나가 보이면 내려가겠다고 할 테니 누나를 보지 못하도록 멀리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걸어 다녔다. 롤러코스터 같은 주행을 곁들이며 시윤이의 흥이 사그라들지 않도록 조심했다. 앉지도 못하고 유모차 끄는 것도 꽤 힘든 일이었지만 그렇게 앉아 있어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소윤이는 모래 찰흙을 가지고 한참을 놀았다. 집에 도착하니 10시가 넘었다. 간단하게 씻겨서 아내가 애들을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 그러고 나니 11시. 할 일이 태산인데 11시라니. 각오하긴 했지만 언제나 각오는 현실을 이기지 못한다. 내일 온 가족이 새벽에 일어나야 해서 늦게까지 안 잘 수도 없었다. 나도 12시 30분 정도까지 혼자 거실에 앉아 이것저것 했는데 축구와 육아의 여파로 계속 조느라 집중을 못했다.
그래도 어제오늘 내 나름대로 뿌듯했다. 소윤이의 거취 변화를 계기로 좀 더 나은 부모가 되고자 하는 의지가 있기도 하고.(단순히 잘 참고 받아주는 걸 넘어서)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소윤이에 대한 안쓰러움 같은 게 남아 있어서 좋은 아빠 코스프레를 했다. 감정과 지위를 앞세워 윽박지른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런가, 뜬금없이
"아빠 좋아"
라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빠 사랑해"
는 상황에 따라서 나의 감정을 풀어주거나, 자기가 뭔가 잘못했을 때 면피용으로, 기술적으로 활용하는 느낌도 있는데
"아빠 좋아"
는 그에 비하면 훨씬 순수한 고백 같아서 더 좋다.
"아빠도 소윤이 엄청 엄청 좋아하는데?"
"아빠 나도 그래여"
역시 딸 키우는 맛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