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주일)
서윤이는 또 시작했다. 아주 잠깐, 소강상태를 보이는가 싶더니 요 며칠 새벽의 잠투정이 장난이 아니다. 아내는 오늘도 거의 4시 30분부터 일어나서 제대로 못 잤다고 했다(‘그럼 그전에는 푹 잔 건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판에, 아내는 로봇처럼 할 일 아니 미뤄도 될 일들을 척척해나갔다.
“여보. 괜찮아?”
“어, 괜찮아. 그냥 조금 졸려서 그렇지”
안 괜찮을 걸 알면서도 물어볼 수밖에 없는 질문과,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다고 하는 대답. 무미건조한 형식의 교류가 아니다. 서로를 향한 미세한, 아니 어쩌면 최대의 관심과 배려가 섞인 대화다. 이런 게 쌓여야 조금 더 구체적인, 큰 희생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물론 서로의 말을 액면가 그대로 믿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기겠지만.
시윤이는 이번 주도 어른 예배를 드렸다. 새싹 꿈나무 예배실 앞까지는 당차게 아무렇지 않게 올라가더니 문 앞에서 마음을 바꿨다. 소윤이를 먼저 들여보내고 문 앞에 쪼그려 앉아 시윤이를 설득해 봤지만 완고했다. 요즘 부쩍 엄마, 아빠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특히 엄마하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고, 아주 사소한 것도 엄마하고 하려고 하고. 예를 들면 씻는 거나 옷 갈아입는 거나. 시윤이는 그런 성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소윤이에 비하면 훨씬 엄마에 대한 집착도 덜 하고, 털털하고. 아내와 나의 공통된 의견은, 엄마의 사랑이 고플 거라는 것. 가운데 끼어 있어서 독불장군처럼 하지는 못하지만, 동생한테 질투도 날 거고 누나가 부럽기도 할 거다. 특히 요즘처럼 서윤이가 거의 하루 종일 아내에게 붙어 있을 때는.
하루의 육아를 마치고 아내와 둘이 앉아서 얘기하거나 혼자 생각할 때는 다 이해가 된다. 시윤이의 그 갸륵한 마음이. 치열하게 육아를 하고 있을 때는, 못 받아줄 때가 많아서 그게 문제지. 우리 집의 유일한 아들이라는 희소가치가 있는 귀한 존재인 강시윤. 아들은 없어도 되고 딸만 있으면 된다던 나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해 준 아들. 시윤아, 힘내. 동생이 너무 어려서 그래.
예배를 마친 소윤이와 시윤이가 무척 졸려 보였다. 어제 소윤이가 나한테
“아빠. 내일도 교회 갔다 오면 낮잠 잘 거에여”
라고 물어봐서 아니라고 했는데, 아닌 게 아니었다. 둘 다 너무 피곤해 보였다. 무엇보다 아내도 엄청 졸려 보였다. 며칠째 잠을 설치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잠을 못 자는 지경이니까. 말을 번복하는 게 미안하긴 했지만 대의를 위해 거짓말쟁이가 됐다. 소윤이는 의외로 순순히 수긍했다. 스스로 자기가 얼마나 졸린 지 알았나 보다.
“여보도 들어가서 자. 아 서윤이 때문에 안 되려나”
서윤이는 이미 푸지게 자고 난 뒤라 또 잘 것 같지는 않았다. 아내도 재우고 싶었는데. 일단 들어가라고 해 봤다. 소윤이와 시윤이, 아내는 방으로 들어가고 나와 서윤이는 거실에 남았다. 아주 조금, 처음에 한 5분 정도 잘 노나 싶더니 갑자기 뭔가 깨달은 듯,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더니 바로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없어졌다는 걸 알아차린 거다.
아내가 거실로 나왔다. 불쌍한 아내. 서윤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서 수유를 했다. 나도 따라 들어가서 대기했다. 서윤이는 수유를 하고도 자지 않았고, 아내는 수유를 마치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서윤이를 매트리스 위에 눕혀 놓고 나도 옆에 누웠다. 콘센트를 보더니 만지려고 막 기어갔다. 안전장치가 다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뒀다. 그랬더니 그걸로 또 꽤 놀았다. 나는 졸았다. 졸다가 서윤이 확인하고 다시 졸다가 서윤이 확인하고. 잘 놀던 서윤이는 또 칭얼거렸다. 얼른 거실로 데리고 나왔는데, 그때는 안아줘도 울었다. 결국 아내가 또 깨서 나왔다. 밤잠이고 낮잠이고 잠이란 잠은 모조리 빼앗긴 불쌍한 아내. 분유 수유로 전환하지 않는 이상 내가 뭘 더 해 줄 건 없다. 그저 격려하고 응원하고, 토닥이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푹 자고 일어났다. 오히려 먼저 깨웠을 정도로. 깨서도 정신을 차리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바로 옷을 입혀서 데리고 나갔다. 축구장으로. 내복도 입히고 두꺼운 겨울 패딩도 입혔는데, 시간이 지나니 점점 추워졌다. 아빠랑 놀지도 못하고 추위에 떠는 게 너무 미안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소윤아. 추워?”
“네”
“많이 추워?”
“네”
“그래. 알았어, 오늘은 일찍 가자”
“왜여?”
“소윤이랑 시윤이 너무 추우니까”
추운 와중에도 둘이 잘 놀긴 했다. 운동장이 떠나가라 깔깔대면서. 그래도 걱정이 돼서 일찍 오려고 했는데 마침 축구도 좀 일찍 끝났다.
“소윤아, 시윤아. 미안해”
“왜여?”
“아니 추운데 데리고 나와서 미안하네. 다음주부터는 같이 못 오겠다”
“너무 추워서여?”
“응. 이제 너무 추워서”
“그럼 아빠도 안 와여?”
“아빠? 음, 글쎄”
“아빠도 오지 마여”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
소윤아, 그렇게 급발진하면 어떡해.
집에 오자마자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뜨끈한 국수를 먹였다.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따뜻한 게 들어가는 게 좋아서 그랬는지, 둘 다 엄청 잘 먹었다. 평소보다 많이 줬는데 계속 더 없냐고 해서 면발이 모자랄 정도로.
서윤이는 다시 도킹 시스템을 가동했다. 수유를 하고도 자지 않고, 아내의 발목을 베고 누워서 잠들었다. 도킹 해제를 기다리던 아내는 결국 같이 잠들었다. 그래도 다시 깨서 나오긴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급발진해서 마트로 돌진했다. 여러 먹거리와 함께 복귀했다.
나도 급발진해서 아내가 사 온 먹거리에 달려들었다.
하아, 주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