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화)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 모임에 가는 날이었다. 아내는 어제 자려고 누우면서, 내가 일어날 때 같이 일어나야겠다고 했다. 지난주에는 엄청 오랜만에 가는 거라 전날 준비할 수 있는 건 다 준비하고 잤는데, 어제는 아니었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잤다.
알람이 울렸을 때 아내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수유를 막 끝낸 뒤였다. 눈을 뜨지 못하는 상태이긴 했지만 앉아 있길래 금방 나오겠거니 했는데, 아내는 내가 출근할 때까지 나오지 못했다. 밤새 또 얼마나 수유로 고생했을지 알기 때문에, 굳이 깨우지는 않았다. 어차피 애들 때문에 늦을 정도로 자지는 못할 테니까. 일찍 일어나지 못해서 많이 바쁘긴 했지만, 늦지는 않았다고 했다.
아내는 거의 하루 종일 거기 있었다. 모임을 마치고 난 뒤, 다른 엄마 선생님과 의논할 게 있어서 나머지 엄마 선생님들이 다 가고 나서도 한참을 더 있었다. 모든 걸 엄마들이 직접 해야 하니 보통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다. 아무튼 아내와 아이들은 거의 5시까지 있다가 집에 돌아왔다.
퇴근하면서 전화했을 때, 아내의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힘든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저녁으로 볶음밥을 할까 생각한다고 했다. 아직 시작은 못하고 생각만. 힘들면 그냥 들어가는 길에 사 가겠다고 했는데, 아내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원래대로 볶음밥을 하겠다고 했다. 그나마 가장 간편(?)한 걸 고른 게 볶음밥이겠지만,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막 볶아서 내지는 않는 아내의 평소 성향상, 어쨌든 그것도 일은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엄청 흐물흐물 거렸다. 물에 풀어진 종이처럼.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잘 놀고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내가 손 씻으러 들어가면 화장실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린다. 굶주린 맹수처럼. 그래도 오늘은 처음 하는 놀이라 나도 재밌게 했다. 앞면에는 사진, 뒷면에는 그림자가 그려진 카드 여러 장을 내가 들고, 그림자를 보여주면 소윤이와 시윤이가 그게 무엇인지 맞추는 그런 놀이였다.
일단 가만히 앉아서 하는 거라 체력의 소모가 덜 했고, 열심히 맞추려고 노력하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보는 것도 재밌었다. 서윤이는 우리 주변에서 이리저리 기어 다니며 강아지 행세를 했다.
아내는 몇 번이나 “피곤하다”, “힘들다”라는 말을 했다. 나가서 좀 쉬다 오라고 할 수도 없고, 깨지 말고 아침까지 푹 자라고 할 수도 없고, 내 체력을 좀 떼어서 나눠 줄 수도 없고. 답답한 노릇이다. 아내가 서윤이에게 분유를 먹일 것 같지는 않고, 천상 단유를 하기 전까지는 그저 응원과 격려 말고는 아내의 짐을 덜 방법이 없다.
아내는 고단함을 이기지 못하고 애들 재우면서 함께 잠들었다. 오늘은 유독 고민을 많이 했다. 자는 아내를 깨워야 할지, 그냥 그대로 자게 둘 지. 엄청 피곤해 하고 힘들어했으니 조금이라도 더 자는 게 맞기는 한데, 이게 또 그렇지가 않다. 그렇게 자고 아침을 맞으면(물론 아침까지 서윤이가 가만히 두지는 않겠지만) 육아 - 육아로 이어지는, 감정의 상태에 따라서는 분노와 우울을 유발하기도 하는 허망함에 빠질지도 모른다. 아내의 피곤을 지울 것인지, 아내의 허망을 지울 것인지.
아내가 피곤해 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기 때문에, 깨우지 않고 그대로 뒀다. 아내는 꽤 한참 자다가 깨서 나왔다.
“여보. 일부러 안 깨웠어. 여보 너무 피곤해 하길래”
“어, 고마워”
잠깐이지만 잤더니 극한의 피로는 좀 풀렸는지, 나와서는 나랑 수다를 제법 떨었다.
서윤이는 요즘 12시 무렵에, 꼭 깬다. 보통 아내는 서윤이 울음소리가 들리면 양치도 하고, 화장실도 가고, 잘 준비를 한다. 거의 항상 그러니 미리 준비하고 있으면 될 텐데, 아내도 참 일관된 사람이다. 아무튼 아내가 잘 준비를 하는 동안, 난 서윤이를 방에서 데리고 나와서 안고 있는다. 물론 서윤이는 나에게 안겨 있으려 하지 않는다. 엄마가 안 보이면 울고, 엄마가 보이면 그쪽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몸을 비튼다. 이것도 나름의 발전이다. 불과 얼마 전, 내 느낌에는 퇴근하면 항상 아내에게 업혀 있을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깨면 아무리 엄마가 보여도 엄마에게 안기기 전에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요즘은 엄마가 보이기만 하면, 내가 안고 있어도 울지 않으니 그게 어딘가. 물론 나를 그저 운송 수단 정도로 여기는 듯하지만. 소윤이도 그랬고, 시윤이도 그랬다. 엄마와 애착 형성이 잘 된 아빠의 비애다.
서윤이는 엄마를 너무 오래 기다려서 (실제로는 매우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윤이 스스로의 기준에 의하면 길었나 보다) 막 울려고 했다. 시간은 거의 1시였고. 잘 준비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간 아내는 샤워기를 들더니 화장실 바닥과 변기에 물을 뿌리며 간이 청소(?)를 했다.
“여보. 지금 1시야”
“알아. 물 뿌리는 거 얼마 안 걸리잖아”
아내 말이 맞다. 그래 봐야 뭐 한 3분 되려나. 그래도 그냥 “알았어”라고 대답해 주지 않는 아내의 반응과 잔소리하지 말라는 생각이 읽히는 표정과 말투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않은 내 잘못과 아침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쉴 틈 없이 피곤한 아내를 의지적으로 떠올리며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입을 닫았다. 물론 내가 기분이 상한 것도 티가 났겠지만.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이 ‘화장실 청소기’나 ‘화장실 청소 로봇’ 같은 건 못 만드나’하는 생각을 하며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