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수)
아내는 오늘 파주(처가댁)에 간다고 했다. 장모님이 계속 애들을 보고 싶어 하셨기 때문에. 몇 번 집에 오시겠다고도 했는데 아내도 나름 바빠져서 그러지 못하셨고. 아내는 집안일을 부지런히 하고, 빨리 갔다 빨리 돌아오는 게 목표라고 했지만 지금껏 그랬던 적은 없었다. 아무튼 아내는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을 거다(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점심시간 직전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심상치 않은 전화는 아내가 첫 마디를 떼기 전에 들리는 숨소리부터 다르다. 시윤이가 너무 말을 안 들어서 ‘짜증’이 나고, 그 정도가 스스로 어떻게 하지 못할, 주체하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시윤이만 그러냐고 물었더니 소윤이도 뺀질 거리면서 말을 안 듣는다고 했다. 서윤이는 어떠냐고 했더니 “얘는 뭐, 괜찮지”라고 했다. 아무튼 아내에게서 흔히 느끼기 힘든 고밀도의 짜증과 분노였다. 아내 표현 그대로, 나한테 전화라도 하지 않으면 애들한테 분풀이를 할 것 같은 상태였다. 난 별 말을 보태지 않고 아내의 하소연(?)을 듣기만 했다.
점심 먹고 와서 아내에게 짧은 편지(카카오 톡으로)를 썼다. 아내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내용과 함께 성경 말씀(고린도전서 13장)을 보냈다.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드러나는 내 안의 모든 좋지 않은 감정을 이겨내는 건, 결국 사랑이다. 그게 가만히 있어도 샘솟는 본능의 사랑이든, 의지를 발휘하고 노력을 더해서 쥐어짜 낸 사랑이든. 감사하게도 보통의 사람은, 그 사랑이 완전히 꺼지지는 않는다. 잠시 약해지거나 흔들리거나 희미해지기는 해도, 완전히 꺼지지는 않는다. 아내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잠시 약해졌을 뿐, 금세 또 타오를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아내는 파주에 가서 나의 카톡을 확인하고, 오히려 일하는데 전화해서 괜히 신경 쓰이게 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아내는 ‘못 참고’라는 표현을 썼다. 나한테 전화하는 걸 못 참을 정도였다는 말이다. 아내도 참 고생이다.
아내는 예상대로 엄청 늦게, 오히려 평소보다 훨씬 늦게 집에서 출발했다. 당연히 집에도 늦게 올 하고 갔다. 난 축구를 하러 가는 날이었고, 육아에 쫓기지 않아 부담 없이 다녀왔다.
“여보. 누구를 위한 친정 방문이지?”
“누구긴. 장모님과 장인어른을 위해서지”
“아냐. 엄마도 엄청 피곤해 하셨어”
“아, 그래?”
“어. 물론 그렇다고 오지 않기를 원하는 건 아니겠지만, 같이 있으면 피곤하신 거지”
“그건 그렇지. 그럼 장인어른을 위한 방문이네”
“그런가”
아내가 친정에 가서도 쉬지 못한 지는 오래되었다. 오히려 가게 되면 집에도 늦게 오고 애들도 늦게 자니 그 여파가 만만치 않을 때도 많다. 물론 가면 밥도 차려 주시고, 애들하고도 놀아주시고, 어떻게든 딸의 고생과 수고는 덜어주고, 먹이고 채우려고 애를 쓰신다. 친정이 멀리 있는 사람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욕을 할지도 모른다. 정확한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는데, 애 셋이 되고 나서는 뭔가 완전한 쉼, 자유를 누리는 게 힘들어졌고, 영 어색하기도 하다. 아직 서윤이가 너무 어려서 그런가.
아내와 아이들은 엄청 늦게 집에 돌아왔다. 나보다는 빨리 왔지만 고작 30분이었다. 아내는 오늘도 엄청 피곤해 했다.
“어우, 여보. 너무 피곤하다. 왜 이렇게 피곤하지”
이유는 널려 있다. 잠도 못 자, 낮에는 소처럼 일해, 오늘은 퇴근도 못 해. 안 피곤한 게 이상한 거지.
아내는 피곤에 절었지만, 난 서윤이가 엄청 아른거렸다. 물론 소윤이와 시윤이도 보고 싶었지만, 오늘은 서윤이가 더 강력했다. 서윤이는 나를 기억하고 보고 싶어 할지도 궁금했다. 요즘은 퇴근해서 웃는 것만 보니까, 더 그리웠다.
빼빼로 데이다. 롯데에서 만든 상술에 불과하지만, 상술에 속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이게 줄 빼빼로와 초콜렛을 샀다. 아내 것도 샀다. 아내에게는 집에 가서 바로 줬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짧은 편지를 써서 식탁에 놨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보라고. 며칠 전 아내가 인스타그램에 소윤이가 준 편지 선물을 올리면서 ‘소윤이의 사랑의 언어는 선물인가 보다’라고 썼는데, 그게 계속 마음에 남았다. 지난 주일에 축구장에 따라갔을 때도, 소윤이는 어느 집사님이 주신 견과류를 다 먹고는 크랜베리 ‘한 개’를 남겼다.
“아빠. 이건 엄마 줄 거에여. 절대 버리면 안 된다여”
성경에 나오는 ‘과부의 두 렙돈’ 이야기처럼, 매우 보잘것없는 ‘마른 크랜베리 한 개’에 불과했지만 소윤이는 진심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런 일이 많다. 참 이것저것 선물을 많이 한다. 아까 낮에도, 아내가 감정을 추스르느라 방에 들어가 있었는데 거실이 너무 조용하길래 나와 봤더니, 소윤이가 빨래를 개고 있었다고 했다. 소윤이는 아는 거다. 꽤 정밀하게. 자기가 뭘 하면 엄마의 수고를 덜어주는 '선물'이 되는지. 소윤이의 그 마음이 참 귀하게 느껴지길래, 상술을 빌려 보답을 하기로 한 거다. 소윤이에게는 ‘첫째 딸’, 시윤이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고 쓰며 편지(메모)를 시작했다.
얘들아 빼빼로 맛있게 먹어. 아빠 마음은 더 맛있게 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