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지난 낮에 한 일을 모른다

20.11.12(목)

by 어깨아빠

아내는 오늘도 많은 걸 했다. 끼니 때마다 애들 밥 차려서 먹이기(심지어 대충 때우는 게 아니라 그럴싸한 요리로), 서윤이 목욕 시키기, 애들 데리고 장 보기, 애들 데리고 놀이터 가기. 거기에 말 안 듣고 뺀질거리는 시윤이 보고 참기, 티격태격하는 소윤이와 시윤이 보고 참기 등등.


아내 입장에서는 애석하게도(?) 내가 퇴근할 무렵에는 이 모든 폭풍이 지나고, 잠잠해진다. 오늘은 소윤이와 시윤이가 ‘사이좋게’ 블록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서윤이는 유유자적 기어 다니며 마음에 드는 블록을 빨았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서로 너그럽게 블록을 양보하며 유쾌하고 평화로운 놀이를 이어갔다. 각자 만든 걸 나한테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저녁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아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별것도 아닌 말과 행동에 서로 얼굴을 보며 깔깔거렸다. 평소 같았으면 그만 웃고 얼른 저녁 먹으라고 했을 텐데, 사이좋게 웃는 걸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서 그대로 뒀다.


“여보. 좋지?”

“어?”

“애들이 사이좋게 노니까 좋지?”

“흐흐. 왜?”

“그래. 한 명이라도 좋은 것만 보면 됐지 뭐”


아내의 농담에는 아내가 굳이 꺼내어 보여 주지 않은 아내의 하루가 담겨 있었다. 아내가 해 낸 그 많은 일들 사이사이에 아내의 인내가 가득하겠지. 내가 의도하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난 좋은 것만 볼 때가 많다. 쉬지 않고 웃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보며 아내는 허탈함이 담긴 오묘한 웃음을 지으며 밥을 먹었다.


아내는 소윤이가, 아빠가 퇴근해도 아빠랑 노는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아쉽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소윤이의 그런 마음도 이해가 된다. 같이 저녁 먹는 것도 어려운 아빠들에 비하면 감사한 일이지만, 이전에 다니던 회사가 워낙 일찍 끝났다. 그때에 비하면 같이 보내는 시간이 짧아지긴 했다. 소윤이는 예전에 다니던 회사로 다시 가면 안 되냐고 얘기했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려면 포기해야 하는 게 있다는 걸 몰랐으면 좋겠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가 컸을 때는 포기하지 않아도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시대였으면 좋겠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고 나면, 삶 안에서 육아와 자유의 균형도 맞춰야 한다. 우리 애들이 워낙 일찍 일어나니까, 자는 것도 빨라서 다행이기도 하다. 늦게 일어나고 늦게 자는 아이들이었으면, 아내나 나나 엄청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퇴근하고 조금이라도 자유로운 시간이 확보되니까, 하루 종일 그렇게 지지고 볶느라 타버린 마음을 다시 닦아낼 여유도 생기는 거고. 그러니까 아내도 그렇게 피곤하다면서 기어코 나오는 거다.


“하, 잠 온다. 또 내가 먼저 잠들 거 같네”


아내는 잠을 이기고 부활했다.


아내는 돌변(?)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허탈과 억울함을 느꼈으면서도, 애들을 재우고 나오면 오늘 찍은 애들 사진을 보여 주기 바쁘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오늘 하루의 고초를 얘기하기도 하고.


사진 한 장 보여줄 때마다 두어 번씩 하품을 하던 아내는 일찍 방으로 들어갔다.


“여보. 얼른 자야겠다. 먼저 들어갈게”


그래, 또 내가 모르는 그대만의 하루를 살려면 충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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