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기동력과 추진력

20.11.13(금)

by 어깨아빠

밤새 온 가족의 잠을 방해한 서윤이가 아침에도 제일 먼저 일어났다. 하긴 서윤이한테는 아침의 개념이 없겠구나. 아내와 서윤이가 일어났을 때, 난 이미 집에 없었다. 밤새 하도 잠을 설쳐서 피곤했다. 회사 근처에 차를 대고 눈을 좀 붙이려고 일찍 출발했다.


아내가 새벽같이 보내준 사진 속 서윤이는 그냥 맑았다. 그런 얼굴로 밤마다 어쩜 그렇게 만행을 저지르는지. 불행(?) 중 다행인지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것보다는 좀 더 늦게 일어났다. 페이스톡으로 막 잠에서 깬 아이들의 모습을 봤다. 자연의 빛으로 밝아진 방 안에서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내복 차림으로 이리저리 뒹굴며 웃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모습. 볼 때마다 나도 거기 끼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거기 있는 아내는 나를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아내는 어제 자기 전에, 갑작스럽게 오늘 일정이 잡혔다. 원래 계획되어 있다가 어떤 이유로 취소되었는데, 다시 잡혔다. 애 셋을 데리고 움직여야 하는 아내는, 그게 어디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많이 확보하고 싶어 한다. 오늘처럼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꼭 나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굉장한 부담을 느끼고. 그래도 잘 갔다 왔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잘 못 갔다 온 적은 없다. 아내는 고수니까. 프로니까.


집에 오면서 근처의 작은 공원에 들러서 바람도 쐬고 왔다고 했다. 바람을 쐬었다고 하니 너무 낭만이 넘치는구나. 바람을 맞았다고 해야 할까. 도착하자마자 오줌이 마렵다는 소윤이 덕분에 화장실을 찾아 헤맸지만, 공원에는 화장실이 없었다(공원이기는 한데 공원은 아니 뭐 그런 곳이라 없을만하다). 근처 가게에 들어가 부탁해서 해결했다고 했다. 공원, 그러니까 사방이 뻥 뚫리고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부는 곳에서 서윤이 수유까지 하고.


나도 누가 물어보면, 차라리 셋이 더 편하다고 말할 때가 대부분이다. 사실 정신과 마음의 영역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내려놓는 것도 많아지고, 포기하는 것도 많아지고, 그러려니 하는 것도 많아지고. 셋이 더 힘든 건, 대체로 몸(?)의 영역이다. 한 번만 해도 될 일을 세 번이나 해야 하고, 가끔은 동시에 처리해야 하고. 손과 팔이 모자랄 정도의 짐과 아이들을 챙겨야 하고. 나도 벅찬데 아내는 오죽할까.


오늘도 철야 예배에 가지 않아도 됐지만, 지난주처럼 외출을 감행하지는 않았다. 완급 조절의 차원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신호 대기를 하다가 출발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차 하부에서 ‘투두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뒤에서 부딪혔나 하고 봤는데 그건 아니었다. 다시 출발하려고 하는데 차가 안 나갔다. 내려서 보니 왼쪽 바퀴가 틀어져 있었다. 핸들을 움직여도 오른쪽 바퀴만 움직이고 왼쪽 바퀴는 그대로였다.


보험사에 전화해서 견인차를 불렀다. 퇴근 시간에 상습 정체 구간이라 교통경찰분이 나와서 통제를 하고 있었다. 우리(회사 동료와 함께였다)에게 다가와서 무슨 일이지 묻고는 신속한 처리를 부탁했다. 아내에게도 전화를 했다.


“여보”

“어, 여보”

“여보. 난 차가 퍼졌어”

“진짜? 그래서?”

“일단 보험사에 전화했지. 10km 이내까지는 무료고, 그 이후로는 추가 요금 있다더라”

“그럼 어떻게 해?”

“글쎄 카센터 찾아봐야지”


지인에게 전화를 해서 멀지 않은 곳에서 카센터를 운영하시는 또 다른 지인분을 소개받았다(사실 교회에서 뵌 적이 있었다). 견인차가 도착했고 기사님은 나의 차를 견인 장치에 고정시키셨다. 그게 엄청 신기했다.


‘우와. 저거 우리 시윤이가 보면 진짜 좋아하겠다’


그때 왜 영상 찍어서 보여줄 생각을 못 했을까. 다시 경험하기 힘든 일일 텐데. 아무튼 태어나서 처음으로 견인차에 타 봤다. 내 차를 뒤에 걸고. 같이 탄 회사 동료의 집이, 카센터 가는 길 중간에 있어서 내려줬다. 생각해 보니, 정말 위험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멈춰 있을 때 그래서 다행이지, 만약에 달리다가 그랬으면 어땠을까 싶다.


차는 맡기긴 했는데 수리는 내일 하신다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나를 데리러 왔다. 먼 곳은 아니었다. 교회 근처였다.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려면 1시간이 넘게 걸리고, 차로는 20-30분 정도 거리였다. 시간에 비하면 거리는 있는 편이라 택시비는 꽤 나오겠지만, 그래도 방법이 없으니 택시를 탈 생각이었다.


“여보. 내가 데리러 갈게”

“애들 다 데리고?”

“그래야지 뭐”

“하긴. 택시비가 아깝긴 하지”


아내는 애들 밥도 먹이고 씻기는 것까지 다 끝냈다고 했다. 이럴 때는 마음의 준비 따위 필요없다는 듯, 추진력이 굉장하다. 사실 나에게도 어느덧, 익숙한 일(아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혼자 셋을 데리고 돌아다니는)이 되었는데 주변에서 아내를 보면, 종종 "우와. 어떻게 그래요"라고 놀라는 걸 보면, 역시 마냥 흔하고 쉬운 일은 아닌 거 같다.


카페 ‘윌’하고도 가까웠다. 윌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렸다. 아내가 도착하고 나서 아내 것도 시켰다. 시윤이는 잠들었고, 서윤이는 자다가 깼다.


“강서윤 안녕”


뚱한 표정으로 있던 서윤이가 눈웃음으로 대답했다. 소윤이는 안 잤다. 졸려 보이긴 했는데, 역시 버틴 거다.


“소윤아. 덕분에 바람을 다 쐬네”

“아빠. 갑자기 차가 왜 고장 난 거에여?”

“그러게. 그래도 멈춰 있을 때 그래서 다행이었어. 달릴 때 그랬으면 얼마나 위험했겠어”

“아빠. 그리고 내일이 토요일인 것도 감사하져. 안 그랬으면 아빠가 회사 갈 때 이걸 가지고 가야 하고, 그럼 엄마랑 우리가 차를 못 타 잖아여”

“맞네. 소윤아. 진짜 그러네. 그것도 감사하네. 토요일이라 내일 또 같이 차 찾으러 갈 수도 있고”

“맞아여. 만약에 화요일이나 목요일이었으면 어떻게 해여. 우리 처치홈스쿨도 가야 되는데”


애들은 다 씻고 내복 차림으로 나온 거라 손만 씻고 그대로 누우면 됐다. 시윤이는 주차장에 도착해서도 깨지 않아서 집까지 안고 갔다. 서윤이 안는 것도 만만하지 않은데, 시윤이라니. 쌀쌀한 날씨였지만 땀이 삐질 흘렀다.


세 아이를 무사히 눕히고 재운 뒤, 그제서야 아내하고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눴다.


“와, 여보. 금요일이네. 이번 주도 열심히 살았다”

“그러게”


그러고 아내와 영화를 봤다. 이게 아내와 나의 작은 재미다. 평일의 수고를 위로하는 우리만의 여가 생활이랄까. 아내가 잠들지만 않으면 거의 항상 영화를 본다. 물론 서윤이가 자꾸 깨서 방해를 하기도 하지만(‘라라랜드’의 결말은 아직도 모른다) 그래도 매력적이다. 금요일의 이 시간이.


게다가 오늘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서윤이가 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