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핑계고, 바람이나 쐬자고

20.11.14(토)

by 어깨아빠

요즘 일기에 서윤이 얘기를 안 쓰려야 안 쓸 수가 없다. 서윤이는 오늘도 무시무시했다. 서윤이 우는소리, 아내의 앓는 소리, 소윤이와 시윤이의 뒤척이는 소리, 나 자신의 잠꼬대 소리를 모두 들었다. 어제 늦게 자서 매우 피곤했지만, 감히 게으름을 피울 수 없었다. 고생의 끝판왕, 아내도 일어나서 움직였으니까.


산뜻하게 서윤이의 똥을 치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나마 똥 닦아줄 때는 가만히 있어서 다행이다. 오히려 좋아한다. 살에 물 닿으면 다 좋아한다. 게으르지 않지만 본의 아니게 게으른 것처럼 된, 엄마와 아빠가 목욕을 너무 안 시켜줘서 그렇지 물을 엄청 좋아한다. 세면대에 물을 틀고 서윤이 엉덩이를 들이밀은 뒤 미끄덩한 감촉을 느끼며 슥슥 문지르면 카레 아니 노란 물이 흐른다. 슬픈 건, 이제 서윤이의 그것도 점점 맡기 어려운 냄새를 풍긴다는 거다.


애들은 어제 먹고 남은 짜장밥을 줬다. 밥이 다 떨어져서 아내는 요거트에 시리얼과 그래놀라를 넣어서 줬다. 물론 소윤이와 시윤이도 먹었다. 후식으로. 서윤이도 먹었다.


“여보. 그거 줘도 괜찮아?”

“어, 조금인데 뭐”


나는 사실 이론으로는 거의 모른다. 언제 뭘 먹이고, 언제 뭘 하고, 언제 뭐가 변하는지. 아내가 하면 ‘아, 때가 됐나 보다’하고 실전에 최선을 다할 뿐. 그래서 자주 놀란다. 벌써 요거트를 먹어도 되는지 몰랐다. 물론 아내 말대로 그냥 한 번 주는 거니까 아무 상관없겠지만. 사실 뭐든 이것저것 먹여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먹이고 나서 그 반응을 보는 재미란, 아이 키우는 사람이면 모두 공감할 거다. 아내가 선수쳐 주면 고맙다.


서윤이는 요거트를 신나게 받아먹었다. 난생처음 보는 표정을 지으면서. 처음 보는 표정이었지만, 누가 봐도 ‘신 걸 먹었구나’라고 생각할 표정이었다. 덕분에 엄청 웃었다. 모두. 일기에 기록하지 않는 이런 소소한(즐거운) 일상이, 육아의 고단함을 버티게 하는 근원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건 아직 육아를 하지 않는 이들에게 생생하게 전하기가 어렵다. 아니지. 꼭 육아가 아니어도 어떤 영역이든 남이 모르는 자기만의 작은 행복으로 버티며 사는 거지. 아무튼 아내와 나, 특히 아내도 그럴 거다. 밤에 그 고초를 당하고도, 이리저리 기어 다니는 서윤이를 보며 1호와 2호의 눈을 피해 너무 귀엽다고 무언의 난리를 피우는 걸 보면.


지난주 토요일처럼, 아침을 먹고 나서 각자 해야 할 일에 매진했다. 아내는 졸린 서윤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고, 소윤이는 식탁에 앉았다. 요즘은 책상이 너무 작아서 식탁을 책상 대신 쓴다. 소윤이는 성경을 읽었고, 난 소윤이 앞에서 필사를 했다. 시윤이가 애매했다. 이제 막 ‘ㄱ’, ‘1’ 을 배우기 시작해서 스스로 공부하는 건 불가능했다. 처치홈스쿨만의 진도와 규칙이 있는데 그건 내가 아내만큼 숙지하지 못해서, 내가 알려주기도 어려웠다. 아내가 나오기 전까지, 시윤이는 그냥 혼자 놀았다.


“시윤아. 시윤이도 아빠 옆에 앉아서 뭐 할래?”

“아니여. 저는 그냥 여기 있을래여”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래 앉아 있는 걸 힘들어하기 때문에,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름 만족하는 듯했다. 대신 중간중간에 계속 시윤이한테 말을 걸었다. ‘넌 혼자 방치되는 게 아니다’라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마음은 절대 방치가 아닌데 상황은 방치 같고, 시윤이가 혹시나 자기는 아무도 신경을 안 쓴다고 생각할까 봐 엄청 신경이 쓰였다.


소윤이에게는 많이 읽지 않아도 되고, 빨리 읽지 않아도 되니 천천히 읽으면서 의미를 이해하고 생각을 정리(흔한 기독교 용어로는 ‘묵상’이라고 한다)해 보라고 했다. 내가 느끼기에 속도가 느려지고 그러지는 않았다. 몇 가지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니, 소윤이가 나름대로 노력했다는 게 느껴졌다. 기특한 녀석.


아내가 서윤이를 재우고 나온 뒤에는 아내에게 맡겼다. 그때부터는 학습의 시간이었다. 시윤이도 아내 옆에 앉았는데, 불 위에 오른 말린 오징어인 줄 알았다. 어찌나 몸을 꼬고 꼬물락꼬물락 하는지. 난 작은방에 앉아 컴퓨터를 했는데, 아내는 몇 번이나 내 쪽을 보며 어금니를 꽉 물고 화를 삼키는 몸짓을 보여줬다. 홈스쿨 하는 부모들의 숙명이다. 내 아이의 공부하는 모습과 태도를 보고 화내지 않는 것.


서윤이는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작은방에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눈동자가 안 보이고, 보조개가 푹 패일 정도로 깊은 웃음을 건넸다. 서윤이도 한 번씩 자기가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울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잽싸게 가서 안아주고 놀아줬다. 마찬가지로, ‘너는 방치된 게 아니다’라는 느낌을 주려고. 그렇게 한 5분 정도 놀아주고 다시 눕혀 놓으면 한동안은 괜찮았다.


오후에는 어제 수리 맡긴 차를 찾으러 가야 했다. 바람도 쐴 겸 온 가족이 나섰다. 비록 미세 먼지는 굉장했지만, 이 맑은 토요일에 나 혼자 나가는 것도 이상하다. 차를 핑계로 나가서 커피도 마시고 그러는 거지 뭐. 차 찾는 건 5분도 안 걸렸다. 바로 집에 들어가는 건 아쉬우니, 아내가 저번에 형님(아내 오빠)이랑 갔는데 좋았다던 카페로 갔다. 넓은 정원이 있어서 애들이 뛰어놀기 좋은 곳이었다. 앉아서 커피 좀 마시려고 하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자꾸 나를 불러냈다.


“아빠. 아빠도 같이 하자여”

“너네끼리 해. 재밌게 하네”

“그래두여. 아빠도 같이 하면 더 재밌단 말이에여”

“아빠 커피 좀 마시게”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러니 또 괜히 미안했다. 미안할 게 없는데 왜 미안한지 모르겠는데 자꾸 미안하다. 부모란 이런 존재인가. 결국 일어나서 합류했다. 무궁화 꽃 몇 번 같이 피우고, 오랜만에 힘 좀 썼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안고 하늘 높이 던졌다가 받는 걸 해줬다. 물론 둘 다 엄청 좋아했다. 내 어깨와 팔은 비명을 질렀고. 그래도 아직 시윤이는 좀 던진다는 느낌이 날 정도는 가능한데, 소윤이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던진다기보다 잠시 손에서 떨어졌다는 느낌이랄까.


저녁은 외식의 내식화였다. 돈까스와 생면 국수, 소불고기 낙지 덮밥을 포장해서 집에서 먹었다. 다른 날보다 저녁이 좀 일렀나 보다. 식사를 다 마치고 시계를 봤는데, 생각보다 이른 시간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다 함께 찬양을 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처치홈스쿨 영상 예배를 드리는데 다음 주 찬양 담당이 아내(와 소윤이, 시윤이)라고 했다. 주말이라 나도 있으니 같이 하기로 했다. 나의 기타 반주에 여러 곡을 찬양하며 영상을 찍었다. 뭔가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단순히 감정의 흥분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숨은 공로자는 서윤이었다. 칭얼대지 않고 바닥을 열심히 기어 다니고, 아내와 나에게 와서 애교도 부렸다.


“여보. 토요일 밤마다 이렇게 찬양하면 좋겠는데?”

“그러니까. 되게 좋겠다”


물론 오늘은 상황이 좋았다. 밤 9시나 되어서야 ‘재우기 전까지의 상태’에 도달했다면, 오늘 같은 여유는 힘들었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능하다면, 매주 토요일 밤마다 이런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토요일 밤이 지니 가고 있었지만, 난 여유로웠다. 아내도. 월요일에 연차를 냈다. 하하하하. 내일은 주일이지만, 토요일인 이 느낌. 오래 간직하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