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5(주일)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장은 묵을수록 맛이 깊어지고, 서윤이는 날이 갈수록 잠꼬장 아니 잠투정이 심해진다고 했던가. 오늘은 더 심했다. 몇 번이나 깬 건 물론이고, 우는 서윤이를 안고 아내가 거실로 나가는 게 느껴졌다. 거실로 나간다는 건 수유를 하고 나서도 자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자꾸 깨는 것도 힘든데, 깨서 다시 자지도 않다니.
아침에 만난 아내는, 정신은 어디 가고 몸만 남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 와중에 애들 아침을 차리려고 하길래, 얼른 일어나서 말렸다.
“여보. 내가 할게. 여보는 들어가서 조금이라도 더 자”
“아니야, 그럼 못 일어날 거 같아”
아내는 5분 뒤 다시 얘기했다.
“여보. 그럼 나 30분만 잘게. 알람 맞춰 놓고”
“그래, 알았어”
30분 후 방에서 알람 소리가 들렸지만 아내는 나오지 않았다. 깨우지 않고 그대로 뒀다. 그 사이 애들 아침 먹이고 설거지하고 옷을 갈아입혔다. 옷 갈아입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애들 옷이 도대체 어디 숨어 있는지 찾기가 어려웠다.
“아, 소윤이는 이거 입히면 되겠다”
“아빠. 그건 시윤이 옷이잖아여”
“아, 그래?”
“그럼 이건?”
“그것두여”
입히고 싶은 옷이 머릿속에는 떠오르는데, 그 옷이 어디 있는지 찾는 게 어려웠다. 결국 찾고 찾다 못 찾아서, 시윤이는 윗옷만, 소윤이는 바지만 입혔다.
“나머지는 엄마 일어나시면 그때 입자”
서윤이 옷은 생각보다 금방 찾았는데, 내복을 입히고 겉옷을 입히는 건지 벗기고 입히는 건지 헷갈렸다. 내복을 입히면 옷이 너무 두꺼워져서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이었고, 벗기면 너무 추운 건 아닐까 걱정이었다. 불편한 게 추운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서 그냥 겹겹이 입혔다. 허무하게도 시윤이의 바지는 화장실 앞에(어제 입고 벗어 놓은 그 자리에), 시윤이 옷은 작은방에 있었다.
이 땅의 수많은 육아 엄마들이여. 애들 옷 못 찾는 아빠들을 너무 구박하지 마오. 옷을 찰떡같이 찾는 아빠로 만들려면 생각보다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일단 무슨 옷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걸 주입식 교육으로 알려주는 건 불가능하니, 자연스럽게 체득해야 하는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직접 옷을 사는 방법. 이건 아이 옷과 쇼핑이라는 두 가지 영역 모두에 흥미가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직접 빨래를 개면 된다. 그러면서 이건 누구 옷, 이건 누구 옷 알려주고. 무슨 옷이 있는지 알았으니 그게 ‘어디’ 있는지까지 알려면 갠 빨래를 직접 옷장이나 옷걸이에 넣고 걸어야 한다. 그걸 수차례 반복하면 대충 ‘아, 누구 옷은 여기, 누구 옷은 저기 있구나’라는 감이 잡힐 거다. 이런 과정 없이 ‘왜 옷 하나도 알아서 못 찾고 나를 부르느냐. 그러니까 평소에 관심 좀 가져라’라고 구박하는 건(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상황 타개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 귀에 경을 읽어주고 그 소가 한 글자라도 따라 하길 기대하는 게 차라리 더 나을지도 모른다. 내 의견이지만, 굳이 AI를 기대하지 말고 차라리 오작동 없는 리모컨으로 강화시키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아내는 꽤 늦게까지 잤다. 불쌍하고 또 불쌍한 아내.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자도 모자랐을 거다.
시윤이는 오늘도 새싹꿈나무 예배에 안 가겠다고 했다. 지난주에는 갈 거라고 그러더니. 물론 예상은 했다. 오늘도 그냥 어른 예배를 함께 드릴까 했는데, 소윤이가 시윤이를 데리고 가고 싶어 했다. 나는 몰랐는데 지난주에 시윤이 없이 예배를 드려서 조금 슬프고 울 뻔했다고, 아내에게 얘기했다고 했다. 겨우 설득해서 누나 옆에서 떨어지지 않는 조건(예배가 끝나고 나이별로 장소를 옮겨서 2부 활동을 하는 시간이 있다. 시윤이는 그때 누나랑 떨어지는 게 싫다고 했다)으로 새싹꿈나무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티격태격하는 것 같아도, 둘이 점점 끈끈해지고 있다. 흐뭇하다.
서윤이는 예배 시간 중간쯤부터 소리를 냈다. 울음소리를. 아기띠를 집에 놓고 오는 바람에 안고 있어야 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힘들다. 아기띠로 안으면 오래 안을 수 있는 대신 나중에 허리에 후폭풍이 오고, 팔로 안으면 오래 못 안는 데다가 팔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안 그래도 체력이 바닥났을 아내에게 서윤이를 넘기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안겠다고 했다. 사실 아내도 나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이미 울음이 터지고 기분이 나빠진 서윤이를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물론 나도 포함이다)이 달래 본 적이 없다. 무조건 아내만 찾으니까. 호기롭게 서윤이를 안았지만, 1분 만에 아내에게 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일단 서윤이를 안고 로비로 나갔다. 다행히 엄청 크게 울지는 않고 ‘히잉 히잉’ 정도의 작은 울음만 계속됐다. 꽤 오래 안고 있었더니 한 번씩 고개를 내 어깨에 파묻고 엄지손가락을 빨기도 했다. 입질이었다. 부드럽게 서윤이 등을 토닥이고 얼굴을 쓰다듬는 척하면서 눈을 감도록 유도했다. 맙소사. 서윤이가 잠들었다. 이미 언짢아진 서윤이를 재우다니. 자신감을 획득했다.
점심으로는 토스트를 사서 먹었다. 아침을 굶은 아내와 나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차 안에서 먹었다.
“엄마. 왜 엄마랑 아빠는 차에서 먹어여?”
“엄마, 아빠는 아침 못 먹었잖아”
“우리도 차에서 먹고 싶은데”
“너네는 집에 가서 편하게 먹으면 되지”
다소 이중 잣대인 면이 없지 않지만, 사실이었다. 너무 배가 고팠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커다란 토스트를 ‘알아서’ 엄청 잘 먹었다.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 가면서, 포장 종이는 잘 걷어내면서. 소윤이는 뭐 워낙 어려서부터 손이 야무졌지만, 시윤이가 그러는 게 새삼 신기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먹여줘야 했던 것 같은데, 이제 흘리지도 않고 혼자서 잘 먹었다.
소윤이가 오늘은 축구장에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다. 아마 지난주에 너무 춥기만 하고 재미도 없어서 고생했던 기억이 남았나 보다. 아내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애들이 안 따라가겠다고 하면 나도 축구하러 가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마음을 먹어 보니 맛이 없었다. 소윤이를 설득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소윤아. 이제 추워지면 가고 싶어도 못 가.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
“오늘은 날씨도 따뜻하네. 지난주처럼 춥지가 않네”
“소윤아. 우리가 가야 엄마도 좀 쉬시지”
결국 소윤이는 마음을 바꿨다.
축구장에 데리고 가긴 해도, 사람이 없으면 계속 뛰어야 하니까 애들이랑 못 놀아줄 때가 많다. 그런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메워보고자 여러 간식을 준비했다. 특별히 따뜻한 코코아까지 타서 텀블러에 담아 갔다. 봤지? 아빠의 축구 열정?
오늘은 소윤이와 시윤이 또래의 남매 한 쌍도 있었다. 같이 놀라고 했더니 이내 잘 어울렸다. 게다가 같이 축구하는 분이 여자친구인 분이 애들을 봐 주셨다. 그냥 지켜만 주신 게 아니라 놀이터에도 데리고 가시고, 애들이랑 같이 놀아주셨다. 덕분에 편하게 축구했다. 너무 고마우신 생명 아니 축구의 은인.
“아, 아빠. 오늘 안 왔으면 어쩔 뻔 했어여”
소윤이의 한 줄 평. 잘 놀아서 그런지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기분이 엄청 좋았다.
서윤이는 소윤이와 시윤이, 내가 나가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아내 말에 의하면 상황 파악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다 함께 있을 때는 배고프거나 졸리지 않으면 울지 않았는데, 혼자 있을 때는 그런 이유가 아니어도 울고, 아내가 보기에 심심해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하긴 서윤이도 언니, 오빠와 떨어진 시간이 거의 없다. 그래도 서윤이가 낮잠 잘 때 아내도 같이 조금 잤다고 했다. 애들을 데리고 나간 보람을 조금이라도 느꼈다.
아무래도 저녁 먹는 시간이 많이 늦었다. 아내는 ‘간단하게’ 새우볶음밥을 준비했는데, 칵테일 새우가 아닌 진짜(?) 새우를 넣다 보니, 새우 손질하는 게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고 했다. 덕분에 아내의 체력은 바닥을 파고들어 지하까지 내려갔다.
역시나 아내는 재우러 들어가서 귀환하지 못했다. 오늘도 이대로 안녕인가 보다 싶을 때쯤, 아내가 안방 문을 열고 나왔다. 매우 놀란 표정과 함께.
“하아, 어떡해”
“왜?”
“문 열고 나오는데 눈 마주쳤어”
“서윤이랑?”
“어”
그러면서 문을 닫았는데 곧바로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내는, 1시간 동안 쌓은 도미노 블록을 실수로 쳐서 쓰러뜨린 사람이 짓는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여보. 내가 들어가서 재워볼까?”
“여보가? 안 될 거 같은데?”
“안 되면 뭐 여보가 재우고”
일단 내가 들어갔다. 서윤이는 어둠 속에서 고개를 들어 상대의 신원을 파악했다. 서윤이의 손짓과 몸짓이 엄마로 오해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정직하게 나의 음성을 들려줬다.
“서윤아. 아빠야. 괜찮아. 자자”
나긋함이 무색하게, 곧바로 거친 울음으로 응수했다. 그래도 계속 안고 있었다. 등을 토닥이고 이리저리 오가면서. 물론 소윤이와 시윤이도 같은 방에서 자고 있었다. 그렇게 한 10분쯤 있었더니, 마치 아까 낮에 교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경추에 힘을 빼고 고개를 내 어깨에 떨궜다. 어두워서 눈도 감은 건지 확인이 안 되니, 손가락으로 눈꺼풀의 위치를 탐지했다. 눈은 감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잠들기 전에 자리에 눕혔다. 맙소사. 성공했다. 낮에 교회에서도 그렇고 밤에도 그렇고. 이제 나도 재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더 많이 얻었다. ‘나도 재울 수 있게 된 것이 진정 나에게 좋은 일인가’하는 불경스러운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지만, 더 이상 끌어모을 체력도 없는 아내를 떠올리며 물리쳤다.
물론 서윤이는 아내와 내가 자발적으로 자러 가기 전에 깨서 아내를 호출했다. 설마 2년, 3년 내내 이러지는 않겠지. 뭐 돌 지나고 그러면 사람답게 자겠지. 그렇지? 서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