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숲 나들이

20.11.16(월)

by 어깨아빠

언제나 달콤한, 그 어떤 초콜렛보다 달콤한 연차 휴가. 당연히 밤새 잠을 설쳤다. 날이 밝고 나서도 지난밤의 피로를 떨쳐내느라 한참 이불 속에 있었다. ‘그래 봐야 아직 8시도 안 됐겠지’라고 생각하며 시계를 봤는데, 9시였다. 물론 푹 잤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이 시간까지 아내와 함께 이불 속에 있는 게 얼마 만인지. 아내는 조금 더 늦게까지 잤다.


거실에서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길래 나갔다. 언니, 오빠랑 잘 놀다가 갑자기 엄마와 아빠가 없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내가 나갔더니 배는 바닥에 붙이고 양 팔과 다리를 띄워, 스카이다이빙 자세를 하며 파닥거렸다. 물론 엄청 웃으면서. 꺄학 꺄학 이런 소리를 내면서. 아내는 아직 방에 있을 때였다. 서윤이는 나만 보고도 그렇게 좋아했다. 셋째지만, 이런 순간은 언제나 짜릿하다.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약간 멀리. 화담숲에 가기로 했다. 점점 심해지는 코로나 사태에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오히려 또 한동안 외출이 쉽지 않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뻥 뚫린 숲이라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준비했다.


늦게 일어나기도 했고 하루 종일 밖에 있어야 하니 아침밥은 따로 하지 않았다. 마침 어제 형님(아내 오빠)에게 받은 떡이 있어서 떡과 과일로 아침을 대신했다. 소윤이는 아침을 먹으며 말했다.


“아, 오늘이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

“왜?”

“왜냐하면 그래야 아빠랑 오래 노니까여”


이럴 때마다 ‘그래도 아직 잘 살고 있구나’라고 안심한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정확히 어디를 가는지 몰랐다. 화담숲이라고 얘기는 해 줬지만, 그곳의 정확한 정체성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눈치였다. 그저 ‘공원’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아내와 나는 ‘많이 걸어야 하는 곳’이라고 귀띔을 해 줬다. 사실 아내와 나도 처음 가 보는 곳이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가 얼마나 걸을지, 서윤이는 또 얼마나 덜 힘들게 할지, 아무것도 예측 가능한 건 없었다. 아내와 나는 단단히 각오를 했다.


평일 낮이라 오래 안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가는 길에 잠이 들었다. 시윤이는 푹 잤고, 소윤이는 안 자려고 버티다가 마지막에 조금 잤다. 서윤이도 잤고. 다행히(?) 아내는 자지 않아서, 고요하지만 심심하지 않은 여행길이었다.


화담숲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아침이 부실해서 그랬는지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릇째 들고 마실 정도로 잘 먹었다. 사골 국수와 밥, 만두까지 골고루 싹싹 비웠다. 아내와 나도 엄청 배불리 먹었다. 서윤이가 아기 의자에 있어줘서 평화를 유지했다. 이제 호기심도 많아지고 손을 움직이는 능력치도 상승해서 여간 손을 뻗는 게 아니지만, 울지 않고 앉아만 있어준다면 그 정도쯤이야.


화담숲 주차장에서 매표소까지 가는 길부터 꽤 힘들었다. 경사가 좀 있는 데다가 서윤이까지 안고 가려니 숨이 차 올랐다. 유모차를 가지고 갈지 말지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다. 유모차를 끌기 어려운 길이 많거나, 길이 좋아도 서윤이가 안 타면 그저 짐일 뿐이니까. 고민 끝에 가지고 내렸는데, 이게 올 하반기 가장 탁월한 결정이었다.


아내는 도착하자마자 수유를 했다. 입구 쪽에 다람쥐와 앵무새 우리가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일단 흥미를 보였다. 어른인 내가 봐도 신기했다. 다람쥐와 앵무새 덕분에 ‘화담숲’에 마음을 활짝 연 소윤이, 시윤이와 함께 산책을 시작했다. 배를 든든히 채운 서윤이도 순순히 유모차에 앉았다.


아내도 나도,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요즘 가면 엄청 좋더라’라는 감상평만 들었을 뿐, 시간이나 거리에 관한 정보 수집은 하지 않았다. 막상 가 보니 필요가 없었다. 자연의 경치와 풍경이 정말 좋았다. 내가 언제부터 풀과 나무를 보면 스트레스가 풀렸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야말로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깊은숨을 마음껏 들이켤 수 없다는 게 유일한 오점이었다.


“소윤아, 시윤아. 봐봐. 엄청 멋있지? 저기 나무 봐봐. 색깔이 진짜 예쁘지?”


이 좋은걸, 소윤이와 시윤이도 한껏 즐기길 바랐다. 물론 인공미가 많이 가미된 곳이지만, 그래도 아파트 숲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즐거워 보이긴 했다. 물론 소윤이가 아직 조금 더 주도적이고 능동적이긴 하다.


“아빠. 이거 봐여. 이 나무 봐여. 엄청 신기하게 생겼어여”

“아빠아. 이거 바여어. 엄통 딘기해여어”


이런 흐름일 때가 많다.


꽤 한참 걸었는데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둘 다 다리도 아프고 힘들다고는 했는데, 딱 그뿐이었다. 잠깐 쉬면 또 열심히 달리고 걷고 그랬다. 구불구불하고 완만한 길이기는 해도 어쨌든 약간 오르막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꽤 벅찼을지도 모르는데 끝까지 잘 걸었다. 마지막 30분 정도부터 시윤이는, 한 5분에 한 번씩


“아빠아. 왜 이더케 많이 걸으는 거에여. 언데까지 거더여어. 네에?”


라고 말을 했다. 그럴 만했다. 거의 2시간 가까이 걸었다. 힘들다고 짜증 내거나 징징대는 건 없었다. 동네에서 산책하면 소윤이가 꼭 물어보는 게 있다.


“아빠. 우리 어디 가는 거에여?”

“어디 가는 거 아니야. 그냥 한 바퀴 도는 거야. 바람 쐬면서”


오늘도 비슷한 질문을 했다.


“아빠. 우리 어디까지 가야 돼여?”

“그런 거 없는데? 그냥 나무 보고 자연 보고 바람 쐬러 온 건데”

“몇 시까지 가야 되고 그런 게 아니라?”

“어. 그냥 우리가 가고 싶을 때 가면 되는 거야”


한적하고 완만한 등산로나 산책로에 자주 나가야겠다.


마지막에는 모노레일도 탔다.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소윤이와 시윤이의 최대 관심사였다. 이름은 뭔지, 어떻게 가는 건지, 어떻게 타는 건지. 그중 가장 큰 관심은 ‘우리도 탈 것인지’였다. 막상 타면 별거 없고 싱겁겠지만, 그래도 안 타면 서운하니까. 사실 아내랑 나도 어렸을 때 롯데월드에서 모노레일 타 본 것 말고는 처음이었다.


2시간 정도 걸렸다. 더 천천히 걸었으면 더 오래 걸렸을지도 모른다. 중간중간에 ‘왜 그리 서두르십니까. 천천히 자연을 구경하세요’ 이런 푯말이 보였다. 다음에 비슷한 곳에 또 가게 되면 더 느긋해져도 좋겠다.


다시 차로 돌아왔을 때는, 무척 피곤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물론이고 서윤이도 흠잡을 데 없이 협조적이었음에도, 힘들기는 했다. 다르게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감정의 낭비 없이 온전히 즐기고 느꼈으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출발할 때보다 더 막혔다. 다 잤다. 서윤이부터 아내까지. 나는 홀로 사투를 벌이며 왔다. 오랜만에 장거리(?) 당일치기였는데, 역시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마음에 계속 꽉 차는 행복함이 느껴졌다.


저녁은 밖에서 먹자니 번잡스럽고, 집에서 먹자니 그것도 성가시고. 진퇴양난이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아내와 나는 수제 버거를 포장해서 먹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밥과 소시지를 김에 싸서 먹이기로 했다.


“아빠. 왜 엄마랑 아빠는 밖에서 사 먹어여?”

“음, 그냥. 너희는 집에서 밥 먹으면 되니까”


“아빠아. 햄버거는 몸에 안 도아여어?”

“어, 그렇지. 좋은 음식은 아니지”

“엄마당 아빠는 왜 머거여어?”

“어, 그러게. 너희는 아직 어리니까 안 먹는 게 좋아서”

“엄마당 아빠는 어든이니까 괜탆고오?”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야. 엄마랑 아빠도 안 먹는 게 좋긴 하지”


내 생각에, 내년만 돼도 소윤이 앞에서는 이런 허접한 논리, 아니 논리도 아니지. 억지는 부리지 못할 것 같다.


밥 먹기 전에 애들을 씻기려고 했는데 어디서 구리구리한 냄새가 풍겼다. 순간, 나한테서 나는 냄새인가 싶었다. 하루 종일 많이 걷고 땀도 많이 흘렸으니까. 왠지 내 냄새가 아닌 느낌이었다.


“시윤아. 똥 쌌어?”

“아니여어”

“그래? 이게 무슨 냄새지?”


시윤이와 거리가 좁혀질수록 냄새가 진해졌다. 시윤이의 바지와 팬티를 내려보니.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다. 시윤이는 몰랐다고 했다. 이게 결백인지는 몰라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는 표정이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많이 당황했지만, 마음을 잘 지켰다. 화담숲에서 얻은 맑고 순수한 마음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그 사건에 대해 시윤이에게 조금도 마음의 부담을 주지 않았다. 시윤이의 똥 팬티를 처리할 때마다, ‘똥오줌 다 받아낸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깨닫는다.


아내는 애들을 재우러 들어가서 꽤 한참을 있다가 나왔다. 아마 먼저 잠들었을 거다. 그러다 깨서 나왔는데 그때까지도 소윤이와 시윤이가 안 잤다고 했다. 이해는 됐다. 낮잠도 아니고 저녁잠을 잤으니 잠이 올 리가 없지.


서윤이는 오늘도 깼다. 이 녀석, 따지고 보면 하루에 3시간 이상 연달아 자는 시간이 없다. 낮이든 밤이든 2-3시간에 한 번씩 깨는 거다. 도대체 왜 그러니. 왜. 흑흑. 오늘도 11시 30분쯤 깼길래 들어가서 데리고 나왔다. 아내가 소파에 앉아 안았는데도 울었다. 정확히 말하면 울음을 가장한 고성이었다. 가짜 울음. 눈만 잔뜩 찡그리고 눈물은 나지 않는, 소리만 고래고래 지르는 울음.


“강서윤. 이놈. 누가 가짜로 울어”


나름 무서운 표정과 목소리로 해봤는데, 서윤이는 곧바로 울음을 멈추더니 갑자기 전형적인 아기의 옹알이 소리를 내며 눈웃음을 지었 아니 쳤다. 와, 이 영악한 녀석 좀 보소. 아내도 나도 감탄했다. 과대 해석이 아니라 그야말로 처세였다. 그 뒤로는 울지도 않고 계속 애교만 부렸다.


그렇게 기분이 좋을 때 아내가 다시 데리고 들어가서 수유를 했다. 수유를 했는데도 자지 않고 울었다. 아내가 안고 있어도 울었다. 서서 안으라는 소리 같기는 했는데, 그럼 계속 그래야 하니까 서서 안지는 않았다.


“여보. 오늘은 그냥 울더라도 눕혀서 재워보자. 애들 깨더라도”

“그럴까”


물론 그것도 아내 몫이었다. 아내는 서윤이 옆에 누워서 가슴과 등을 토닥였다. 난 매트리스 위에 누워서 소리로 상황을 감지했다. 감지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서윤이가 워낙 대차게 울었으니까. 조금씩 울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기는 했다.